5월1일 노동절 행사에서 카네이션을 들고 있는 그리스의 여성 노동자. 실업자를 대상으로 한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에서 복지 효과는 확인됐으나 고용 촉진 효과는 확인되지 않았다. 아테네/AP 연합뉴스
핀란드 사회보장국(KELA·켈라)이 2017~2018년 세계 최초로 정부 차원에서 실시한 기본소득 실험을 분석한 결과가 나왔다. 2년 전 국내외 언론이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이 실패로 끝났다”고 보도했으나, 제도 설계와 실행을 맡은 사회보장국의 올리 캉가스 국장이 2018년 5월4일치 <한겨레> 단독 인터뷰에서 “가짜뉴스”라고 해명했던 실험의 “진짜 결과”가 이제야 나왔다.
핀란드 사회보장국이 6일(현지시각) 인터넷에 190여쪽의 보고서를 공개했다. 이 실험은 2016년 11월 당시 실업 상태였던 25~58살의 노동자 가운데 무작위로 2000명을 골라 조건 없이 2년 동안 매달 560유로(약 73만원)를 지급했다. 사회보장국은 이 실험군과 일반 실업자 17만3천명을 대조군으로 비교해 기본소득의 고용 유발 효과, 복지 효과, 현재와 장래 삶에 끼치는 효과 등을 분석했다.
전세계의 주목을 받은 이 실험의 핵심 목표는 한국 등 각국에서 제기되는 사회복지 차원이 아니라, 실업자의 고용 촉진 효과를 분석한다는 한계가 뚜렷했다. 더욱이 표본 수가 적고 실험 중간에 강력한 ‘설계 변경’이 이뤄졌다. 핀란드 정부는 실험 2년차인 2018년 구직 노력이 없거나 직업훈련에 참여하지 않는 실업자에게 불이익(실업급여의 4.65% 몰수)을 주는 ‘활성화 모델’을 도입했다. 이런 정책은 실업자들로 하여금 다른 유인책이 없더라도 더 적극적으로 일자리를 찾게 만들 수 있어 기본소득의 고용 효과를 분석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 박선미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사무국장은 7일 <한겨레>에 “긍정·부정 어떤 쪽으로든 의미를 침소봉대하기 어려운 결과”라면서도 “코로나19로 인해 연대의 가치가 더욱 중요해진 시대에 기본소득이 개인의 행복감과 사회에 대한 신뢰를 높여준다는 교훈을 준 실험이었다”고 평가했다.
보고서는 기본소득이 수령자들의 복지에 끼치는 효과는 분명했다고 밝혔다. 기본소득 수령자 586명과 대조군인 일반 실업자 1047명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기본소득 수령자들이 느끼는 정신적 스트레스나 우울감, 외로움 등이 일반 실업자보다 적었고 인지 능력은 더 양호했다. 기본소득 수령자의 생활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7.3점인 반면 일반 실업자는 6.8점이었다. 특히 만족도가 9점 이상이라고 응답한 비율에서 두 집단의 격차가 컸다. 건강 상태도 기본소득 수령자의 58.5%가 좋거나 아주 좋다고 응답한 반면 대조군에서는 이 비율이 51.4%였다. 기본소득 수령자들은 재정적 스트레스가 훨씬 적다는 반응을 보였다. 특히 사회복지, 사법체계, 경찰, 의회, 정당과 정치인 등 사회 전반에 대한 신뢰도가 일반 실업자들보다 더 높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보고서는 기본소득을 받은 이들이 2017년 11월부터 2018년 10월까지 비교 대상 집단보다 평균 6일 정도 더 일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또 2017년 1~10월의 경우는 두 집단 간 노동시간 차이가 없었다고 덧붙였다. 자녀가 있는 기본소득 수령 가족의 경우 실험 1, 2년차 모두 고용률이 개선되는 등 서로 다른 집단에서 약간 상이한 효과들을 보였으나, 확정적인 결론으로 이어지긴 어렵다.
핀란드 공영방송 <윌레>(yle)는 실험을 공동 진행한 정부경제연구소(VATT)의 카리 하말라이넨 책임 연구자의 말을 인용해 “2년차의 고용 유발 효과는 정부의 ‘활성화 모델’ 고용 정책과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사회보장국은 실험 참가자 가운데 81명을 심층 인터뷰해 기본소득이 실업자의 개인적 배경이나 직업적 능력 등에 따른 격차를 완화하는 데는 역부족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일부 참가자는 기본소득이 자신들의 노동 활동에 크게 영향을 줬다고 답한 반면 일부는 미미한 영향만 끼쳤다고 답했다. 또 기본소득을 받은 덕분에 비공식적 돌봄 활동처럼 돈벌이와 무관한 활동에 적극 나설 수 있었다고 밝힌 응답자들도 있었다. 어떤 이들은 돈벌이와 무관한 활동도 일종의 노동으로 인식했으며, 실험 기간동안 자신의 사회적 지위가 바뀌지 않은 것을 ‘개인적 실패’로 여기는 응답자들도 있었다.
핀란드 사회보장국의 보고서는 핀란드인의 46%가 기본소득을 정식 사회복지 제도로 도입하는 데 찬성했다는 일반인 여론조사도 함께 공개했다. 신기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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