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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강대국 정치 ‘제물’ 된 홍콩

등록 2020-05-27 18:18수정 2020-05-28 09:54

홍콩 보안법에 미-중 대결 에너지 폭발할 조짐
중국, 코로나 틈타 해묵은 국제현안에 ‘강경책’
대미 갈등격화 불가피하다면 지금이 ‘보안법’ 적기
코로나로 코너 몰린 트럼프, ‘중국 때리기’ 대선 활용

미국과 중국의 대결이 ‘결정적인 변곡점’으로 치닫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출범 이후 미-중 무역전쟁, 지난해 홍콩 민주화 시위, 최근 코로나19 확산을 둘러싼 책임 전가 등으로 차곡차곡 쌓여온 양국의 대결 에너지가 ‘홍콩 국가보안법’(홍콩 보안법)을 계기로 폭발할 조짐이다.

중국은 홍콩 보안법을 강행해 홍콩에 대한 통제를 극적으로 강화하고, 미국은 중국에 제재를 가해 대결을 극대화할 것이다. 양국은 상대의 조처를 오히려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관철하는데 이용할 것이다. 19세기 중반 ‘영국의 중국 침략’ 상징이 된 홍콩은, 다시 강대국의 정치적 목적을 위한 ‘제물’이 될 처지다. 미-중 모두 지금 시점에서 대결이 불가피하고, 불리할 것도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위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발발은 지난해 홍콩의 반중시위를 잠재웠고, 모든 나라들이 발목 잡힌 상황이다. 중국은 이 위기를 틈타 나라 안팎에서 해묵은 현안에 강경대응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4월3일 중국은 베트남과 영유권 분쟁중인 남중국해 파라셸 군도(중국명 시사군도) 주변에서 해안경비대 함정을 동원해 베트남 어선을 침몰시켰다. 지난 5일 중국과 인도가 분할 통제하고 있는 라다크 판공호수 일대에서 양국 군대가 육박전을 벌였다. 9일에도 인도 북동부 시킴 지역에서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다. 국제적으로 주목을 끌 사안들이지만, 코로나19 확산 속에 묻혔다.

지난 4월 이후 홍콩의 상황은 중국의 의도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4월8일 81살의 홍콩 민주화 운동가이자 야당 지도자인 마틴 리와 14명의 야당 정치인, 변호사, 민주화 활동가들이 체포됐다. 홍콩의 민주당 창당자인 마틴 리는 지난 40년 홍콩 민주화 활동 기간에 한번도 체포를 당하지 않았다. 지난 1월 중앙인민정부 주 홍콩 연락판공실의 대표에 임명된 시진핑 주석의 측근이자 강경파인 뤄후이닝은 마틴 리 등의 체포 전에 문제의 홍콩 보안법 제정 필요성을 강조했다.

결국 지난 22일부터 열리는 중국 최대 정치행사인 양회(전국인민대표회의 및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 홍콩 보안법 초안이 올라왔다. 한국의 국가보안법과 비슷한 홍콩 보안법은 지난 2003년 홍콩 입법회의에서 논의됐으나, 거센 반대시위로 철회됐다. 이 보안법을 홍콩 입법회의가 아닌 중국의 전인대에서 직접 제정하겠다고 하니, 당연히 국내외에서 큰 파장이 일어나는 것이다.

둘째, 격화되는 미-중 대결의 불가피성이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미-중 대결의 에너지는 응축된 상태다. 중국이 홍콩 보안법을 제정하지 않아도 미-중 대결 격화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중국 입장에서는 미국과의 대결 격화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차제에 홍콩 보안법 하나를 더 상에 올리는 것에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어차피 미국의 반발은 상수이기 때문에, 중국 입장에서는 오히려 지금이 홍콩 통제를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보안법 제정의 ‘적기’라 할 수 있다. 오히려 미국을 향한 벼랑끝 전술이 미국 내 대중여론을 분열시키고 협상에 유리한 입지를 만들 수도 있다.

홍콩 시민들이 27일 시위 진압 경찰이 쏜 고추 스프레이를 우산으로 막으며 도망가고 있다. 홍콩/로이터 연합뉴스
홍콩 시민들이 27일 시위 진압 경찰이 쏜 고추 스프레이를 우산으로 막으며 도망가고 있다. 홍콩/로이터 연합뉴스

셋째, 트럼프의 중국 때리기 대선 전략 때문이다.

트럼프와 대중국 강경파 측근들은 이미 중국 때리기를 오는 11월 대선에서 최대 의제로 키우고 있었다. 코로나19 사태가 몰고온 파장이다.

애초 트럼프는 이번 대선에서 중국에게 양보를 받은 무역협정으로 미국에 큰 혜택을 줬다고 선전하려고 했다. 1월과 2월 트럼프는 트위터 등을 통해 시진핑 중국 주석이 코로나19에 “강력하고, 날카롭고, 강력히 집중하고 있다”고 극찬했다. 지난 3월27일까지도, 트위터에서 “우리는 함께 밀접히 일하고 있다. 많은 존경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다 태도가 돌변했다. 코로나19에 대한 늑장 대응과 실패로 미국이 최대 확산국이 되고, 경제는 문을 닫고 지난 4월에만 3천만명이 넘는 사상 최대의 신규 실업자가 발생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중국과의 무역협정도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경제가 ‘올스톱’ 되자, 중국이 미국에서 사주기로 한 농산물이나 공산품, 그리고 미국이 중국에서 얻을 각종 혜택들도 모두 정지됐다.

트럼프는 곧 익숙한 행태로 돌아갔다. 지난번 대선에서 트럼프는 멕시코를 희생양으로 삼았는데, 이번에는 중국이었다. 지난 대선 때 트럼프는 불법이민을 의제화하며, 이를 막는데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세울 것이고 멕시코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에는 코로나19가 중국에서 발원하고 이를 은폐하는 등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이로 인해 미국이 본 손해를 중국이 책임져야 한다고 공격하기 시작했다.

미국 백악관의 대중국 강경파인 래리 커들로 국가경제위원장은 지난 1일 <시엔비시>(CNBC)와의 회견에서 “중국이 코로나19 위기에 책임을 져야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로이터>와의 회견에서 중국에 대해 관세 부과나 채권 상각 등을 고려하고 있다며 “중국은 나를 대선에서 패배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어떤 일이라도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홍콩 보안법은 이미 타오르던 불에 기름을 부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지난 22일 중국의 홍콩 기본법은 홍콩의 자치에 “죽음의 조종이 될 것”이고 “일국양제 및 홍콩의 지위에 대한 우리의 평가에 불가피하게 영향을 줄 것이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홍콩 보안법이 제정되면, 중국이 세계에 약속한 ‘일국양제’에 기초한 홍콩 자치가 붕괴된다는 평가다. 미국이 1992년부터 홍콩 관련법에 따라 홍콩의 자치에 기초해 홍콩에 부여해온 관세면제 등 특별교역혜택들을 정지하겠다는 경고다. 중국 본토의 제품도 홍콩을 거치면 이런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24일 <엔비시>(NBC)와의 회견에서 “중국이 홍콩을 통한 외국자본 접근 기회를 잃게 되면 시진핑 주석과 공산당에 진짜 타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가 26일 이와 관련해 “이번 주 안에 뭔가 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커들로도 이날 “미-중 무역합의가 파기될 수 있다”고도 말했다. 중국 공산당은 국민당과의 내전에서 승리해 대륙을 석권한 1949년 자신들이 내건 반제·반식민주의의 상징인 영국령 홍콩 앞에서 진군을 멈췄다. 저우언라이가 말했던 ‘서방으로의 창’으로 홍콩을 남겨, 중국과 바깥 세계의 통로로 이용하려는 의도였다. 반환이 합의된 뒤에도 홍콩을 중국 개혁개방의 훌룡한 창구로 활용했다.

홍콩 주민의 90%가 ‘중국인’이 아니라 ‘홍콩인’으로 생각한다. 홍콩은 중국에게 이제 ‘동방의 진주’가 아니라 ‘하나의 중국’을 위협하는 교두보로 바뀌었다. 중국이 ‘하나의 중국’으로 표현되는 ‘핵심이익’보다 홍콩을 우선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건 영국도 마찬가지다. 지금 홍콩 민주화를 촉구하는 영국은 정작 중국에 홍콩 반환을 합의한 1984년이 돼서야 홍콩 민주화를 운운했다. 고작 18석의 입법의원만 직선으로 뽑는 개혁만으로 그치고, 중국에게 민주화 숙제를 넘겼다. 미국 역시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되거나, 압력을 넣을 때만 홍콩을 거론하고 있을뿐이다.

1949년 전후 홍콩을 배경으로 한 추억의 명화 <모정>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홍콩의 정체성과 위기를 지금 우리에게 말해준다. 벨기에 출신 어머니와 중국 출신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한수인의 자전적 소설이 원작이다. 제니퍼 존스가 분한 한수인은 남편이 전사해 홀로 살던 중 윌리엄 홀든이 분한 미국인 기자 유부남 마크와 사랑에 빠진다. 아내와 별거하던 마크와 한수인은 결혼하려 하나, ‘혼혈아’와 유부남의 불륜이라는 질시를 받는다. 종군기자로 한국전을 취재하던 마크는 사망하고, 중국과 서방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이방인 한수인에게는 마크와의 추억이 깃든 빅토리아 파크만이 남는다. 바람부는 빅토리아 파크를 한수인이 홀로 오르는 마지막 장면은 홍콩의 현 운명을 상징한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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