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흑인 유모가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의 코르셋을 조여주며 잔소리를 하고 있는 장면. 영화는 흑인 노예인 유모와 주인 스칼렛이 인간적인 유대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그린다. 유튜브 갈무리
1939년 개봉한 미국 고전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미국 흑인 사망과 인종차별에 대한 항의 시위 여파로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에서 잠시 제외된다.
<에이피>(AP) 통신 등은 미국 워너미디어의 스트리밍 서비스 ‘에이치비오(HBO) 맥스’가 9일(현지시각)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보유 콘텐츠 목록에서 잠시 삭제했다고 보도했다. 에이치비오 맥스는 이 영화의 인종차별적 내용에 역사적 맥락 등 설명을 붙여 다시 콘텐츠 목록에 넣을 예정이다.
마거릿 미첼의 동명 소설이 원작인 이 영화는 미국 남북전쟁 당시 남부를 무대로 스칼렛 오하라라는 여성이 겪는 인생 역정을 그렸다. 비비안 리와 클라크 케이블이 주연을 맡았고, 최우수 작품상을 포함해 1940년 제12회 아카데미 상을 8개나 수상하는 등 미국 영화의 고전으로 꼽힌다. 그러나 흑인 노예들을 행복하게 묘사하는 등 미국 노예제를 미화하고 낭만화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에이치비오 맥스는 이날 성명을 통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그 시대의 산물이며 불행히도 당시 미국 사회에 흔했던 윤리적, 인종적 편견이 일부 묘사돼 있다”며 “이런 인종 차별적 묘사는 당시에나 지금이나 틀린 것이며, 이에 대한 규탄과 설명 없이 해당 영화를 방영 목록에 두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번 조처는 영화 <노예 12년>의 각본을 쓴 존 리들리가 전날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 기고문을 보내 이 영화를 에이치비오 맥스에서 삭제할 것을 공개적으로 촉구한 데 따른 것이다. 리들리는 “이 영화는 남북 전쟁 이전의 남부를 미화하고, 노예제의 잔악성은 무시한다”며 “노예제도와 남부연합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다른 영화들과 함께 에이치비오 맥스 플랫폼에 다시 올려줄 것을 요청한다”고 주장했다. 리들리가 제작한 영화 <노예 12년>은 자유 신분이었다가 납치돼 12년 동안 노예 생활을 했던 흑인 솔로먼 노섭의 자전적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이 영화는 2014년 86회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다.
최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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