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각) 오클라호마주 털사의 BOK센터에서 석달여 만에 대선 유세를 하고 있다. 객석 2층에 빈자리가 눈에 띈다. 털사/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각) 코로나19 재확산 우려 속에 석달여 만에 대선 유세를 재개했다. 하지만 유세장에 나타난 지지자들 규모는 캠프에서 예고한 것에 훨씬 못 미쳐, 오히려 트럼프 재선에 부정적 전망을 키웠다.
트럼프는 이날 저녁 오클라호마주 털사에 있는 비오케이(BOK·뱅크 오브 오클라호마)센터에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유세를 했다. 코로나19로 지난 3월 초 유세를 중단한 지 석달 남짓 만에 지지자들 앞에서 미국의 경제활동 정상화를 과시하고 선거운동의 모멘텀을 살리려 한 것이다. 그는 최근 민주당 대선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에게 여론조사에서 전국은 물론 주요 경합주에서도 크게 밀리고 있다.
트럼프는 유세에서 “나는 오늘 침묵하는 다수가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하다고 선언하고자 여러분 앞에 섰다”며 “5개월 뒤 우리는 졸린 조 바이든을 이길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유세에서 눈길을 끈 것은 행사장의 빈자리들이었다. 트럼프 캠프는 이날 행사를 앞두고 10만명이 넘게 참가 신청을 했다며 엄청난 인파를 예고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비오케이센터 1만9000석 가운데 최소 3분의 1이 비었다고 <뉴욕 타임스>는 전했다. 트럼프와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행사장에 못 들어올 초과인원을 위한 별도의 장외 연설까지 준비했다가 취소했다. 오클라호마주는 전통적인 공화당 강세지역으로, 2016년 대선 때 트럼프는 이곳에서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에 65% 대 29%로 압승했다. 트럼프로서는 당황스러웠을 유세다.
<시엔엔>(CNN) 방송은 이 유세를 앞두고 매리 조 라웁이라는 아이오와주 거주 할머니가 틱톡(짧은 동영상 공유 플랫폼)에 ‘트럼프 유세에 등록을 하고, 참석하지 말자’고 제안해 호응을 얻었다고 전했다. 라웁은 트럼프가 애초 노예해방 기념일인 6월19일(준틴스 데이)에 털사에서 유세하려던 것에 분개했고, 특히 소셜미디어에서 영향력이 큰 케이(K)-팝 팬들에게 동참을 호소했다고 한다.
이날 유세는 코로나19 재확산 우려를 키웠다. 이 유세를 준비하던 트럼프 캠프 관계자 6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사실이 이날 행사 직전에 보도됐다. 또 이날은 털사에서 코로나19 신규 환자가 최고치인 136명으로 집계된 날이기도 하다. <시엔엔>은 전날 오클라호마주를 비롯해 8개주에서 일일 평균 신규 코로나19 환자 수가 최고수준이라고 보도했다. 그럼에도 이날 유세에 참석한 이들은 대부분 마스크를 쓰지 않았고, 거리두기도 하지 않았다.
트럼프는 오히려 자신의 코로나19 대응을 “경이적”이라고 자찬했다. 그는 검사를 많이 할수록 환자 수도 증가하게 돼있다면서 “(참모들에게) ‘제발 검사 좀 천천히 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또 “중국 바이러스”, “쿵 플루”라는 비하적 표현도 썼다.
이날 유세는 지난달 백인 경찰관의 무릎에 목을 짓눌려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숨진 일로 미 전역에 인종차별과 경찰폭력에 대한 각성이 일고 있는 가운데 열렸다. 노예해방 기념일 이튿날이기도 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해법이나 통합의 메시지는 내놓지 않은 채, “정신 나간 좌파 무리가 우리의 역사를 파괴하고, 아름다운 기념비들을 훼손하고, 동상들을 허물려고 한다”고 일부의 폭력을 비난했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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