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볼린주 루츠크에서 인질극 범인이 경찰에 의해 제압당해 엎드려있다. 루츠크/EPA 연합뉴스
우크라이나에서 21일(현지시각) 발생한 버스 인질극이 12시간 만에 별다른 희생 없이 종료됐다. 범인은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모두 <지구생명체>(다큐영화)를 보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자, 대치를 끝내고 항복했다.
<비비시>(BBC) 등은 이날 밤 우크라이나 볼린주 루츠크에서 승객 13명이 탄 버스를 탈취해 인질극을 벌이던 40대 남성 막심 크리보슈가 스스로 항복했다고 보도했다. 이날 오전 9시께 인질극을 시작한 지 12시간 만이다.
밖에서 대기하던 경찰은 인질이 버스 밖으로 나오자, 달려가 그를 땅바닥에 엎드리게 한 채 제압했다.
범인이 선선히 투항한 것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협상을 한 뒤였다. 인질범은 젤렌스키 대통령과 직접 통화하면서 미국의 동물권 다큐멘터리 <지구생명체>(Earthlings)를 보라는 글을 대통령의 페이스북 계정에 올리라고 요구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 요구를 들어줬다.
<지구생명체>는 2005년 제작된 다큐 영화로, 동물보호단체 대변인이기도 한 배우 호아킨 피닉스가 내레이션을 맡았다. 개생산공장, 모피산업, 투우 등 인간 이외 생명체가 인간에 의해 고통받는 내용을 담았다.
아르센 아바코프 내무장관은 트위터에 올린 글을 통해 “인질범은 정신 이상 증세가 있는 사람”이라며 “풀려난 인질들은 모두 안전하고 건강하다”고 말했다. 범인은 시내 다른 곳에 폭발물을 설치했다고 했지만, 발견되지 않았다. 또 다른도시에 있던 공범 1명도 체포됐다.
이번 인질극은 이날 아침 루츠크에서 버스에 탄 한 남성이 버스를 탈취하면서 벌어졌다. 수류탄과 총 등으로 무장한 인질범은 승객들을 인질로 붙잡고 경찰과 대치했다.
그는 경찰에게 분명한 요구 조건을 제시하지 않았으나, 본인 유튜브 계정을 통해 사법부와 정부 기관, 검찰, 의회, 교회 수장들이 스스로 합법적 테러리스트들이라고 인정하는 글을 유튜브에 올리라고 요구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그는 “24명의 입에서 나온 진실이 수백명의 목숨을 구할 것”이라며 자신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모두 폭사할 것이라고 협박했다.
범인은 경찰을 향해 총을 쏘고 수류탄을 던지기도 했으나 수류탄은 불발됐다고 현지 언론은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인질극이 벌어지는 주변 지역을 봉쇄하고 범인과 장시간 협상을 벌였다.
경찰은 범인이 강도·사기·갈취 등 범죄로 약 10년 동안 두 차례 복역했다고 전했다. 복역 중 국가의 범죄에 대해 분석한 <범죄자의 철학>이라는 책을 썼고, 강제로 정신병원 치료를 받은 전력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다큐 영화 <지구생명체> 포스터. 누리집 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