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잉글리시와 더글러스 엥겔바트가 1963년 만든 초기 형태의 마우스. 위키백과
컴퓨터의 입력장치 중 하나인 ‘마우스’를 1963년 공동 개발한 미국인 엔지니어 윌리엄 커크 잉글리시(빌 잉글리시)가 지난달 별세했다. 향년 91살.
<비비시>(BBC) 방송은 3일(현지시각) 잉글리시가 지난달 26일 미국 캘리포니아 산라파엘 의료시설에서 호흡부전으로 숨졌다고 보도했다.
■ 엥겔바트 구상 바탕…1963년 ‘갈색상자’ 만들어
엔지니어이자 발명가였던 잉글리시는 1929년 미 켄터키주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공부했다. 미 해군에 입대한 뒤, 1950년대 말 미국의 3대 싱크탱크 중 하나로 캘리포니아주 팰로알토에 있던 비영리연구소 스탠퍼드연구소(SRI)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이곳에서 마우스를 처음 구상한 더글러스 엥겔바트를 만났다. 마우스는 평면인 2차원에서의 움직임을 컴퓨터에 전송해 주는 장치로, 키보드와 함께 컴퓨터의 대표적인 입력장치 중 하나다.
잉글리시는 1963년 엥겔바트의 구상을 바탕으로 처음 마우스를 만든다. 갈색나무 통에 빨간 색 버튼이 달렸고, 바닥에는 두 개의 바퀴가 달린 형태였다. 잉글리시는 1999년 컴퓨터역사박물관에 “우리는 문서 편집을 하고 있었다. 목표는 철자와 단어를 골라낼 수 있는 기계였다”고 술회했다.
마우스가 대중에게 처음 공개된 것은 1968년 12월9일 인터넷의 원형 아파넷(ARPANET)의 기반이 된 온라인시스템(NLS·oN Line System) 시연 때다. 당시 마우스와 함께 영상 회의, 문서 작성 등이 함께 공개됐다. 잉글리시는 콘퍼런스의 기술 부분을 감독했고, 엥겔바트는 “그것(마우스)을 위, 아래, 양옆으로 움직이면, 추적 지점도 따라 움직인다”고 관중들에게 설명했다.
당시 마우스를 비롯해 지금의 컴퓨터와 인터넷에 사용되는 기술과 장비들이 대거 소개돼, 이때의 시연을 ‘모든 시연의 어머니’라 부르기도 한다.
마우스라는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는 크기와 전기선이 ‘쥐’처럼 보였기 때문이라는 설명과 당시 ‘커서’를 고양이라고 불러, 이를 움직이는 새 기계를 마우스로 지었다는 설명 등이 있다. 잉글리시는 누가 처음 마우스라는 이름을 붙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며, 처음에는 ‘작동되지 않는 버튼들이 달린 갈색 상자’라고 불렀다고 말했다.
■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GUI) 핵심으로…잡스와 만나다
잉글리시는 1971년 제록스가 운영하는 팰로앨토 연구소(PARC)로 자리를 옮겨 바퀴가 아닌 ‘구’ 형태의 볼 마우스를 디자인했다. 다만 볼마우스는 독일의 텔레풍켄이란 회사가 먼저 시험 중인 상황이어서 이 회사가 개발사로 꼽힌다.
잉글리시는 팰로앨토연구소에서 그래픽 기반으로 컴퓨터를 움직이는 ‘구이(GUI·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최초로 적용된 컴퓨터인 알토컴퓨터 개발을 지원했고, 여기에 마우스가 사용됐다.
이곳에서 또 하나의 역사적 만남이 이뤄진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1979년 2월 제록스의 애플 투자를 계기로 팰로앨토 연구소를 방문한 것이다. 잡스는 이곳에서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보고 큰 감명을 받았고, 이를 개선해 애플의 컴퓨터와 시스템에 도입했다. 그는 쓰기 편한 마우스 개발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잡스는 자신의 전기를 쓴 월터 아이작슨에게 팰로앨토 연구소 방문 경험에 대해 “눈앞을 가리던 장막이 환하게 걷힌 기분이었다”며 “역사에 등장하는 최고의 아이디어를 찾아내 자신이 하는 일에 접목해 활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사건은 정보통신 업계에서 ‘가장 의미심장한 도둑질’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잉글리시와 엥겔바트는 컴퓨터의 필수품인 마우스를 개발하고도 큰 돈을 벌진 못했다. 마우스 특허가 스탠퍼드연구소의 소유였기 때문이다. 잉글리시는 2013년 앵겔바트가 사망했을 때 “앵겔바트가 마우스로 번 돈은 제록스 팰로알토 연구소로부터 받은 라이센스비 5만달러가 전부”라며 “애플은 단 한 푼도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