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명 사망·3700명 부상 집계…사상자 계속 늘듯 레바논 총리 “항구 창고에 질산암모늄 2750톤 보관”
4일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대규모 폭발이 발생해 4천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항구의 창고 근처에 사람들이 모여있다. 베이루트/EPA 연합뉴스
지중해 연안 중동 국가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서 4일(현지시각) 대규모 폭발이 벌어져 4천명에 가까운 사상자가 발생했다. <아에프페>(AFP) 통신 등은 이날 밤 11시까지 최소 73명이 숨지고 3천700명이 부상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보도했다.
이날 폭발은 오후 6시 조금 넘어 베이루트의 항구에서 진한 회색 연기가 피어오르며 시작됐다. 소셜네트워크(SNS)로 유포된 동영상들은 항구의 한 창고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다가 순식간에 엄청난 폭발이 발생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원자폭탄이 터진 것처럼 구형의 흰 구름이 순식간에 부풀어 올라 상승기류를 타고 버섯 모양으로 하늘로 치솟았고, 폭발의 충격파는 초고속으로 베이루트 시내를 삼켜버렸다. 요르단 지진관측소는 이날 폭발이 규모 4.5의 지진과 맞먹는다고 추정했다.
현지 보도와 SNS로 전달된 사진, 동영상에는 단 몇 초 만에 초토화된 베이루트 시내 중심가의 모습이 담겼다. 충격파와 열파 탓에 타버린 자동차는 뒤집혔고 붕괴한 건물도 셀 수 없을 정도였다. 초강력 충격파에 10㎞ 거리에 있는 건물의 유리창까지 박살이 났다고 현지 언론들은 보도했다.
하마드 하산 레바논 보건장관은 이날 밤 늦게 “현재까지 73명이 숨졌고 3700명이 부상한 것으로 파악됐다”면서 “어떻게 보더라도 재앙이었다”고 밝혔다. 실종자 수색에 나선 한 군인은 “현장 상황은 재앙과도 같았다”면서 “땅에 시체가 널려있었고 아직 시신을 수습하고 있다”고 말했다.
4일 레바논 베이루트의 대규모 폭발 직후 폐허로 변한 거리에서 사람들이 대피하고 있다. 베이루트/AP 연합뉴스
창고 안에 강한 강력한 폭발력을 지닌 인화성 물질이 대량으로 저장됐다는 걸 짐작하게 하는 동영상들이 공개된 이후 하산 디아브 레바논 총리는 “베이루트 폭발 현장에 질산암모늄 2750t이 있었다”고 밝혔다. 디아브 총리는 “대규모 질산암모늄이 아무런 안전 조처없이 6년동안 창고에 보관되어 있었다”며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농업용 비료인 질산암모늄은 가연성 물질과 닿으면 쉽게 폭발하는 성질을 갖고 있어 화약 등 무기제조의 기본원료로도 사용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연 코로나19 관련 기자회견에서 베이루트 대규모 폭발이 “끔찍한 공격(terrible attack)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장군들이 말하기를 이번 폭발은 제조 관련 폭발사고가 아니라 일종의 폭탄 공격 같다고 한다”고 말했다. 더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는 않았다.
이스라엘 관리들은 베이루트의 폭발이 이스라엘과 관련이 없다고 부인했다. 이스라엘군과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 정파인 헤즈볼라는 최근 국경지역에서 총격전을 벌이는 등 긴장이 고조된 상태다.
미셸 아운 레바논 대통령은 5일 트위터를 통해 전날 오후 두차례의 대규모 폭발이 일어난 베이루트에 2주간의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비상 국무회의를 소집했다고 밝혔다.
레바논은 이슬람 수니파 및 시아파, 기독교계 마론파 등 18개 종파가 얽혀있는 국가이며 종파 간 갈등이 극심하다. 최근에는 경제적 어려움에도 시달리고 있다. 국가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170%에 이르고, 레바논 파운드화 가치 하락과 높은 실업률도 경제를 어렵게 하고 있다. 1975∼1990년 장기 내전 등으로 국토가 황폐해졌고 2011년 이후에는 내전 중인 시리아에서 난민이 대거 유입되어 부담을 가중시켰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