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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캄보디아 ‘킬링필드’ 주범 교도소장 사망

등록 2020-09-02 15:56수정 2020-09-03 02:36

카잉 구엑 에아브, 77살로 사망
고문·학살 주도 1만4천명 목숨 뺏어
카잉 구엑 에아브(가운데)가 지난 2008년 12월 캄보디아 프놈펜의 법정에 출석해 서 있다. 프놈펜/로이터 연합뉴스
카잉 구엑 에아브(가운데)가 지난 2008년 12월 캄보디아 프놈펜의 법정에 출석해 서 있다. 프놈펜/로이터 연합뉴스

100만명 이상 학살된 캄보디아 ‘킬링필드’의 주범 중 한 명인 당시 교도소장이 1일(현지시각) 사망했다.

1970년대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의 악명 높은 투올슬랭 교도소 소장이었던 카잉 구엑 에아브(77)가 프놈펜의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2일 보도했다. 급진 공산주의를 내세운 ‘크메르루즈’ 정권의 핵심 인물이었던 에아브는 교도소장을 맡아 고문과 학살을 지시·감독했고, 1만4천명 이상을 학살했다. 생존자들은 그가 철저하고 꼼꼼하게 교도소를 통제했다고 증언했다.

캄보디아에서는 1975년 4월 크메르루주가 집권한 뒤 ‘사회주의 세상을 건설한다’는 미명 아래 지식인과 부유층 등을 탄압해, 학살·굶주림·과로 등으로 100만~200만명이 사망했다. 1985년 영화 ‘킬링필드'가 개봉하면서 전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

‘에스(S)-21’로 불린 투올슬랭은 애초 학교였다가 교도소로 바뀌었고, 현재는 대학살 추모관으로 쓰인다. 크메르루주 정권은 반혁명 분자와 반역자 등 죄명을 붙여 수많은 사람을 이곳에 끌고 와 혹독한 고문을 해 죄를 자백하도록 했다. 어린이나 임신부까지 투올슬랭에 끌려왔다고 한다.

에아브는 크메르루주 정권이 몰락하고 도피 생활을 하다 1999년 체포됐고, 크메르루주 지도부 가운데 처음으로 2008년 기소됐다. 에아브는 2009년 재판 과정에서 감옥에서 진행된 고문과 학살에 대한 법적인 책임을 인정했지만, 자신은 명령에 따른 하급 관리였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법원은 애초 에아브에게 35년형을 선고했지만, 2012년 종신형으로 변경했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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