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가 ‘10만대 1’ 화폐개혁(리디노미네이션) 2년 만에 고액권 발행을 검토한다. 살인적인 물가 상승이 지속해 화폐개혁 효과가 사라진 탓이다. 10만 볼리바르 지폐가 발행되더라도, 그 가치는 한화 270원에 불과할 것으로 추산된다.
<블룸버그> 는 5일(현지시각)베네수엘라가 고액권 지폐 발행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베네수엘라 중앙은행은 10만 볼리바르를 시작으로 이전보다 액면가가 높은 신권 발행을 검토 중이다. 새 지폐 발행을 위해 베네수엘라 정부는 이탈리아 업체로부터 지폐용 보안 종이 71t을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10만 볼리바르 지폐는 베네수엘라 지폐 중 액면가 최고액이지만, 현재 환산 가치로 0.23달러, 약 270원에 불과하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이 때문에 100만 볼리바르, 1천만 볼리바르 지폐가 발행될 수 있다.
베네수엘라에서는 지난 2017년 10만 볼리바르 지폐를 발행했으나, 이듬해인 2018년 8월 10만대 1의 화폐개혁을 단행해 10만 볼리바르를 1볼리바르로 바꿨다. 당시 베네수엘라는 1볼리바르 동전과 2, 5, 10, 20, 50, 100, 200, 500볼리바르 지폐를 발행해 현재 사용 중이다.
베네수엘라 정부가 화폐개혁 2년 만에 고액권 발행 검토에 나선 것은 가파른 물가 상승 때문이다. 최근 1년 동안 물가 상승률이 2400%에 달해 간단한 장을 보기 위해 현금을 가방 가득 챙겨가야 하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베네수엘라에서는 자국 지폐보다 미국 달러가 거래에 더 널리 쓰이며, 약 60%의 거래가 달러로 이뤄진다는 추산도 있다.
베네수엘라는 앞서 2014년에도 연간 물가 상승률이 60%대로 세계 최고 수준이었고, 2015년 세자릿수로 뛰더니 2018년에는 백만 단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올해 상황도 낙관적이지 않다. 베네수엘라는 7년 연속 경기침체가 이어지고 있고, 코로나19에 따른 봉쇄와 석유 수입 감소가 겹쳐 올해 경제성장률은 -15%로 예상된다.
정치적 불안도 극심하다. 2013년 집권한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2018년 5월 재선에 성공했지만, 부정선거 시비로 이어져 지난해 1월 야권 지도자인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이 ‘임시 대통령’을 자처하고 나섰다. 미국 등 서구 국가들은 마두로 대통령을 베네수엘라 국가 수반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또 마두로 대통령은 올 초 미국에 의해 ’마약·테러’ 등 혐의로 1500만달러의 현상금이 걸리기도 했다.
최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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