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루이즈 글릭의 2016년 모습. 워싱턴/EPA 연합뉴스
노벨문학상 수상 글릭, 퓰리처상·전미도서상 휩쓴 미 대표 시인
2020노벨문학상 수상자 루이즈 글릭
신화와 역사·고전 소재로
개인 경험과 상처 보편 문제로 확장
노벨 문학상이 여성과 시인, 미국 작가에게 야박했다는 평을 의식했던 것일까.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미국의 여성 시인 루이즈 글릭은 스웨덴 한림원이 자신들을 향한 여러 따가운 시선을 두루 고려한 선택처럼 보인다.
소설에 비해 상대적으로 대중성이 떨어지기 때문이겠지만, 루이즈 글릭은 적어도 한국 독자들에게는 생소한 이름이다. 그러나 그는 2003~2004년 미국 계관시인을 지냈으며 퓰리처상과 전미도서상 등 유수의 문학상을 수상한 미국 시단의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아킬레스의 승리>(1985)나 <아라라트>(1990) 같은 시집 제목에서 보다시피 그리스 신화와 성서를 비롯한 신화와 역사, 고전 등에서 소재를 취해 개인적 상실과 욕망을 명료하게 표현하는 시를 쓰는 시인이다. 그리고 그의 시에 동원된 개인적 경험과 상처는 인간 보편의 문제로 확장되고는 한다.
글릭은 1943년 미국 뉴욕시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그가 어릴 적부터 그리스 신화와 잔다르크 이야기 같은 고전들을 가르쳤고 그는 어린 나이에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는 고교 시절에 거식증을 앓았으며 그 때문에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정신분석 요법을 통한 치료에 집중했다. 그는 세라로런스대학과 컬럼비아대학의 시 창작반에 등록해 수업을 들었으며, 학교를 떠나서는 비서 업무로 생계를 해결했다.
글릭은 1968년에 첫 시집 <맏이>를 출간했고 이 책은 몇몇 긍정적인 평을 듣기도 했지만, 글릭 자신은 그 뒤 한동안 집필 불능 상태에 빠졌다가 1971년 버몬트의 고더드대학에서 시를 가르치는 일을 맡으면서 슬럼프에서 벗어났다. 1975년에 두번째 시집 <습지대>를 펴냈고, 이 작품은 많은 비평가들로부터 “뚜렷한 목소리의 발견”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그는 1992년에 낸 시집 <야생 붓꽃>으로 이듬해 퓰리처상을 받았고, 2014년에 낸 시집 <독실하고 고결한 밤>으로 전미도서상을 받았다. 2004년에는 2001년 9월11일 세계무역센터 테러를 다룬 장시 <10월>을 펴냈다. 이 작품에서 그는 고대 그리스 신화를 동원해 트라우마와 고통의 양상들을 탐구했다. 이해에 그는 예일대 상주 작가로 임명되었다.
글릭은 언어적 정확성과 엄정한 어조를 지닌 서정시를 쓰는 시인으로 평가된다. 그는 거의 각운을 사용하지 않는 대신 반복과 구 걸치기(enjambment) 등의 기법으로 리듬을 확보한다. 그의 시는 자주 일인칭 화자를 동원하고 시인 자신의 개인사에서 촉발된 내면적인 주제를 다루기 때문에 자전적이며 고백적인 시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허구적 장치라는 해석도 만만찮다. 주제 측면에서 글릭의 시는 죽음과 상실, 거절, 관계의 실패 같은 아픔과 치유 및 회복을 향한 시도를 노래한다. 그와 함께 사랑과 관심, 통찰, 그리고 진실을 전달하는 능력을 향한 갈망 역시 표현한다. 그의 시는 또한 자연에 대한 관심을 표나게 드러내는데, 가령 시집 <야생 붓꽃>에서는 정원의 꽃들이 지능과 감정을 지닌 주체들로 등장하기도 한다.
양균원 대진대학교 교수는 <현대영미시연구> 2009년 가을호에 실은 논문 ‘자아의 부재에서 목소리를 내다―루이스 그릭’에서 “그릭(글릭)의 목소리는 가장 개인적인 고통의 순간을 표현하면서도 그것이 보다 포괄적인 인간의 문제에로 확장하도록 하는 언어에 의해 종래의 서정시에 새 가능성을 제시한다”고 평가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신화와 역사·고전 소재로
개인 경험과 상처 보편 문제로 확장

2020노벨 문학상 수상자 르이즈 글릭.

2016년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전미 인문학 메달 수여식에 앞서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이 수상자인 루이즈 글릭을 감싸안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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