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모 플렉켄슈타인
런던정경대 사회정책학과 부교수
유럽은 코로나19 대유행의 피해를 한국보다 훨씬 크게 입었다. 오랫동안 단호한 조처를 하지 않다가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 뒤에야 대규모 봉쇄를 취했다. 유럽 공공 부문과 경제 영역이 정지됐고, 많은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한창 심각할 때 영국에서는 거의 1천만명이 정부지원 유급휴직에 들어갔고, 독일에서는 700만명 이상이 단기 근로수당을 받는 처지가 됐다.
일자리를 유지하는 사람들은 코로나19를 피해 도심 사무실이 아닌 집에서 일해야 했다. 영국 노동자의 거의 절반이 재택근무를 했고,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비율의 재택근무가 이뤄진 것으로 한 조사에서 나타났다. 코로나19 이전 정기적으로 재택근무를 하는 노동자가 20명 중 1명꼴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큰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유럽에서는 ‘사무실 근무’의 미래에 대해 활발한 토론이 벌어지고 있다. 고용주들은 원격근무가 생산성을 낮춰 기업에 피해를 줄 것이라며 회의적인 태도를 가졌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이뤄진 대규모 재택근무 실험은 이런 우려가 기우였고, 오히려 사무실 공간이 줄어 비용 절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노동자들은 재택근무에 푹 빠져, 이전 근무 방식으로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유럽 노동자 5명 중 4명은 계속 재택근무하기를 원하고, 일주일에 몇번이라도 집에서 일하고 싶어한다. 런던 시민들이 출퇴근에 하루 평균 74분을 쓴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반응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특히 어린 자녀가 있는 부모들은 회사일과 집안일을 조화시킬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재택근무를 선호한다.
현재의 위기는 일과 가정의 경계를 흐릿하게 했지만 ‘사무실 근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고, 일터를 혁신할 기회를 제공했다. 직원을 신뢰해 더 많은 자율성을 부여한 고용주는 더 높은 생산성으로 보답받게 될 것이다. 이제 일터를 고정적인 장소가 아니라 필요할 때 함께 일할 수 있고, 혁신에 필요한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허브로 다시 생각해야 한다.
이런 시도는 유럽뿐만 아니라, 전통적이고 계층적인 직장 문화가 혁신을 가로막고 있는 한국에서 더욱 필요하다. 한국은 연간 노동시간 약 2천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멕시코, 코스타리카에 이어 세번째로 길다. 독일보다는 연간 600시간이나 더 일한다. 게다가 서울 시민들은 날마다 출퇴근에 1시간30분 이상 소비한다. 이는 노동 생산성을 낮추고 시민들의 웰빙과 가정생활에도 해로운 영향을 끼친다. 이런 상태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현재 광범위하게 실시되는 재택근무는 이런 철 지난 한국의 ‘사무실 근무’를 바꿀 좋은 기회가 된다.
독일 연방노동부는 최근 노동자의 권리를 강화하고 일과 사생활이 섞이는 것을 막고자 더 확고한 재택근무 규정을 마련하기 위한 입법 작업을 시작했다. 노동자는 연간 24일 동안 재택 혹은 원격근무를 할 수 있고, 고용주들은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이를 거부할 수 없다. 회사에 재택근무 제도를 도입하고 규정을 확정할 때는 노동자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도록 ‘공동 결정’ 규칙을 거치도록 했다. 고용주와 노동조합은 직원이 언제 재택근무를 할지 등을 포함해, 회사 사정에 맞는 맞춤형 재택근무 규정에 합의할 것이다.
정부는 출퇴근 시간을 기록하는 전자기록기를 의무적으로 도입하길 원하는데, 재택근무 노동자가 더 오래 일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기 때문이다. 고용주들은 노동시간뿐만 아니라 휴식시간까지 확인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이를 어길 경우 3만유로(약 4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재택 노동자들은 사무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 훈련이나 경력 개발 기회를 놓치게 될 것이라는 우려를 해소할 수 있다. 한국은 독일 등의 재택근무 법제화를 면밀히 주시해,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노동 방식의 혁신을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이전 방식으로 돌아가는 것은 선택사항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