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 무히카 전 우루과이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각) 몬테비데오 의회에서 은퇴를 발표한 뒤 동료 의원들의 박수를 받고 있다. 몬테비데오/EPA 연합뉴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으로 사랑받던 호세 알베르토 무히카 코르다노(85) 전 우루과이 대통령이 정계에서 은퇴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상원의원 활동에 제약을 받는다는 이유였다.
무히카 전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각) 상원의원직을 내려놓고 정계에서 은퇴했다고 현지 언론 <엘파이스>가 전했다. 그는 이날 상원에서 “인생에는 올 때가 있고 갈 때가 있다”며 작별 인사를 했다. 2015년 대통령 퇴임 뒤 상원의원 활동을 해온 무히카는 코로나19 사태로 정계 은퇴를 결정했다. 그는 “상원의원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이곳저곳을 다녀야 한다. 사무실에서만 일할 수 없다”며 “코로나19가 나를 밀어내서 떠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좌익 게릴라 출신으로 2010∼2015년 대통령을 지낸 무히카는 경제 발전과 빈곤 감소 등에 성과를 냈지만 교육 개혁 등에는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진보적인 정책도 폈다. 남미 국가 중 두 번째로 동성결혼을 합법화했고, 낙태 처벌도 금지했다. 마약 유통을 줄이는 방편으로 마리화나를 합법화하기도 했다.
무히카는 특히 대통령답지 않은 청빈한 생활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대통령궁을 노숙자에게 내주고 본인은 원래 살던 농가에서 출퇴근했고, 대통령으로 재직하면서도 화초 키우는 일을 계속했다. 1987년식 폴크스바겐 비틀 자동차를 직접 몰고 다녔고, 대통령 월급의 90%를 기부했다.
이런 점들 때문에 그가 비록 ‘위대한 대통령’은 아닐지라도 ‘사랑받는 대통령’은 확실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2015년 3월 퇴임 당시 그의 지지율은 당선 때(52%)보다 높은 65%였다고 한다. 국내에서도 그의 철학과 활동을 담은 책들이 ‘호세 무히카 조용한 혁명’, ‘행복한 대통령 호세 무히카’ 등의 제목으로 5권 정도 출판돼 있다.
그는 명연설가로 기억되기도 한다. “우리는 더 많이 일합니다. 돈 나갈 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런저런 할부금을 다 갚을 때쯤이면, 인생이 이미 끝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앉아서 일하고 알약으로 불면증을 해소하고 전자기기로 외로움을 견디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계화를 막을 수 없는 것은 우리 생각이 지구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2012년 유엔 지속가능발전 정상회의와 2013년 유엔 총회 전원회의에서 한 그의 연설은 생태주의적 세계관이 잘 드러난 명연설로 평가받는다.
같은 날 우루과이의 또 다른 전직 대통령 훌리오 마리아 상기네티(84)도 상원의원직을 사임했다. 군부 독재 종식 직후인 1985∼1990년, 1995∼2000년 집권한 상기네티 전 대통령은 지난해 은퇴 결심을 했다고 했다. 같은 날 의회를 떠난 두 정치인은 이날 뜨거운 포옹을 나눴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2015년 국내 출간된 무히카 전 대통령 관련 책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