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계 미국 흑인으로는 처음으로 25일(현지시각) 추기경에 임명된 윌턴 그레고리 워싱턴디시(DC) 대주교. 로이터 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25일(현지시각) 사상 처음으로 아프리카계 미국 흑인을 추기경으로 임명했다.
교황은 이날 주례한 일요 삼종기도에서 13명의 추기경 임명 사실을 깜짝 발표했다고 <로이터> 통신 등이 전했다. 이날 임명된 추기경 가운데는 윌턴 그레고리(72) 미국 워싱턴디시(DC) 대주교가 포함됐다. 아프리카계 미국 흑인으로는 처음 추기경이 된 그레고리 대주교는 지난 5월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 폭력으로 사망한 이후 인종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대화를 제안하면서 전국적인 주목을 받은 인물이다.
25살에 사제가 된 그레고리 신임 추기경은 가톨릭 교회내 학대 행위를 뿌리뽑는 데 앞장서왔다고 영국 <비비시>(BBC) 방송이 전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6월 교회와 가톨릭 성지를 잇따라 방문하며 종교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모습을 보이자 이를 “당혹스럽고 부끄러운 행위”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21일 이탈리아 로마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다큐멘터리에서 시민결합법을 통한 동성애자 권리 보호를 공개 지지하는 등 진보적인 행보를 강화하고 있다. 그레고리 대주교의 추기경 임명도 이런 행보의 하나로 보인다.
교황 다음으로 높은 성직자인 추기경에 이날 새로 임명된 13명 가운데 9명은 나이가 80살 미만이어서 차기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에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다. 투표권이 있는 신임 추기경 9명의 출신국은 이탈리아가 3명으로 가장 많고 미국·필리핀·몰타·칠레·르완다·브루나이가 1명씩이다. 이 가운데 아프리카 르완다와 동남아시아 브루나이에서 추기경을 뽑은 것은 가톨릭 교도가 극소수에 불과한 지역에 대한 교황의 배려와 관심을 반영한 것이라고 <로이터>는 지적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3년 즉위 이래 임명한 추기경 수는 128명으로 전체의 57%에 달한다고 통신은 전했다. 나머지 90여명은 전임 교황인 베네딕토 16세와 요한 바오로 2세 때 임명된 추기경들이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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