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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8년간 260명 희생…‘톨레랑스 나라’ 프랑스에 무슬림 테러 잦은 까닭은

등록 2020-10-28 17:44수정 2020-10-28 17:59

최현준의 DB_Deep
‘무함마드 풍자 만화’ 교사 피살 사건에
표현의 자유 vs 신성모독 논란 재점화
“세속주의 중요”·“이슬람 혐오” 맞서

북아프리카 이민 2·3세 사회·경제적 소외
‘테러와의 전쟁’ 와중 자생적 테러 급증
프랑스 파리 시민들이 21일(현지시각) 교사 사뮈엘 파티가 테러로 사망한 거리에서 그의 장례식에 참석해 추모하고 있다. 파리/로이터 연합뉴스
프랑스 파리 시민들이 21일(현지시각) 교사 사뮈엘 파티가 테러로 사망한 거리에서 그의 장례식에 참석해 추모하고 있다. 파리/로이터 연합뉴스

이슬람 선지자 무함마드를 풍자한 만평이 또다시 프랑스를 혼란에 몰아넣었다. 이달 초 중학교 교사가 ‘표현의 자유’를 가르치면서 무함마드 만평을 사례로 쓴 게 계기였다. 체첸계 무슬림 난민 청년이 교사를 찾아가 거리에서 그의 목을 베는 테러를 저질렀고, 프랑스 사회는 충격과 분노로 들끓고 있다. 2015년 1월 무함마드 만평을 잡지에 실었다가 17명이 목숨을 잃은 이른바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을 기억하는 프랑스 시민들은 5년 동안 상황이 나아진 게 없다고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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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성모독’이 보호해야 할 자유? 오랜 논쟁 재점화

중학교 교사 참수 테러를 계기로 2015년에 이어 ‘신성모독의 자유’ 논쟁이 다시 떠올랐다. 무함마드를 저속하게 그리는 만평이 보호해야 할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는지를 놓고 프랑스 사회와 이슬람권이 맞붙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를 “표현의 자유”라고 옹호하고, 터키와 파키스탄 등 이슬람권은 “혐오 표현”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프랑스는 헌법 1조에 정교(정치-종교) 분리를 적시할 정도로 ‘라이시테’(세속주의)의 문화가 강하다. 종교를 풍자하거나 조롱하는 신성모독 행위도 표현의 자유로 인정한다. 세속주의와 신성모독의 자유를 통해 역사적으로 잦았던 종교 간 다툼과 같은 큰 갈등을 막을 수 있다고 본다.

교사 사뮈엘 파티가 사망한 프랑스 파리 북부 콩플랑 생트오노린 거리에 그의 사진과 그를 추모하는 촛불이 놓여 있다. 파리/로이터 연합뉴스
교사 사뮈엘 파티가 사망한 프랑스 파리 북부 콩플랑 생트오노린 거리에 그의 사진과 그를 추모하는 촛불이 놓여 있다. 파리/로이터 연합뉴스

그러나 선지자 무함마드의 형체를 그리는 것조차 금기시하는 무슬림 입장에서는 신성모독은 자유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 온건한 무슬림조차 본인들이 섬기는 대상을 조롱하는 것은 불필요한 자극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프랑스의 무슬림들이 사회적 약자이며, 그들이 믿는 종교를 모독하는 것은 강자에 대한 ‘풍자’가 아닌 약자에 대한 ‘조롱’과 ‘억압’일 수 있다는 주장이 더해지면 판단이 더욱 어려워진다. 최근 희생된 교사 사뮈엘 파티(47)도 이런 딜레마를 설명하기 위해 무함마드 만평을 수업에 활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0년대 들어 이슬람 관련 테러가 빈번해지면서, 프랑스 사회에서도 신성모독의 자유를 반대하는 여론이 적지 않게 존재한다. 프랑스 여론조사기관(IFOP)이 지난달 1일 발표한 조사 결과(8월6~17일, 1020명 대상)를 보면, 응답자의 59%가 ‘표현의 자유에 따라 무함마드 만평을 게재할 수 있다’고 했지만, 31%는 ‘불필요한 선동을 일으킨다’며 게재에 반대했다.

지난 21일 프랑스 몽펠리에의 한 호텔 건물 외벽에 빔 프로젝터로 프랑스 주간지 &lt;샤를리 에브도&gt;에 실렸던 이슬람 선지자 무함마드 풍자 만평이 투사되고 있다. 몽펠리에/EPA 연합뉴스
지난 21일 프랑스 몽펠리에의 한 호텔 건물 외벽에 빔 프로젝터로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에 실렸던 이슬람 선지자 무함마드 풍자 만평이 투사되고 있다. 몽펠리에/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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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이후 무슬림 테러 급증…260명 이상 목숨 잃어

프랑스에는 인구의 10%인 약 600만명의 무슬림이 사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슬람 관련 테러로 사망한 이는 2012년 이후 260명 이상이라고 <워싱턴 포스트>가 집계했다. 해마다 30여명에 이른다.

알제리 이민 가정 출신 모하메드 메라(23)는 2012년 3월 남부 툴르즈의 유대교 학교 등에서 7명을 연쇄 살해했다. 2001년 9·11 테러로 서방과 이슬람 간 갈등이 격화된 이후 프랑스에서 벌어진 첫 이슬람 테러였다.

가난한 기계수리공으로 전과 전력이 많았던 메라는 감옥에서 이슬람을 접한 뒤 파키스탄에서 군사훈련을 받았다. 스스로 급진적 무슬림 단체 일원이라고 했던 메라는 프랑스군의 아프가니스탄전 참전과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팔레스타인 아이들이 많이 숨진 것에 분노해 단독 테러에 나섰다고 주장했다. 테러 전문가들은 그를 두고 “이슬람 무장단체 웹사이트의 선동에 따라 단독 테러에 나서는 새로운 이슬람 테러리스트 세대가 등장했다”고 평했다. 교사의 목을 베어 죽인 체첸계 청년 압둘라 안조로프(18)의 출현을 미리 예고한 셈이다.

이 사건 뒤 프랑스에서는 무슬림의 테러가 종종 발생했고, 2015년 1월 <샤를리 에브도> 테러에 이어, 그해 11월 파리에서 프랑스 역사상 최대의 테러 사건이 발생한다. 파리 축구장과 극장 등 6곳에서 동시 다발적 테러로 시민 130명이 사망한 것이다.

테러범들은 이슬람 극단주의에 빠진 프랑스와 벨기에 청년들로, 테러 집단인 이슬람국가(IS)의 배후 조종을 받았다. 7명의 범인이 현장에서 사살됐지만, 핵심 용의자는 아직 붙잡히지 않고 있다. 테러 당일 프랑스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고, 2년이 지나서야 평시로 전환했다.

이듬해 7월14일 프랑스 대혁명 기념일에는 남부 지중해 휴양도시 니스에서 19톤짜리 트럭이 군중을 덮치는 사건이 발생했다. 84명의 목숨을 뺏은 튀니지계 프랑스인 모하메드 라후아이즈 부흘렐(31)은 당시 “급진적 지하드 운동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 정부는 2015년 11월 테러 이후 무장한 군인 수천 명을 공공장소에 배치하는 ‘파수꾼 작전’(오페라시옹 상티넬)을 펴며 테러 대응에 나섰으나, 오히려 이들이 공격 대상이 되는 등 테러가 그치지 않고 있다.

2015년 11월13일 프랑스 파리의 10번 구역에서 구조대원들이 테러 피해자들을 구조하고 있다. 이날 파리 전역에서 동시 다발 테러가 일어나 프랑스 시민 130명이 죽었다. 파리/AP 연합뉴스
2015년 11월13일 프랑스 파리의 10번 구역에서 구조대원들이 테러 피해자들을 구조하고 있다. 이날 파리 전역에서 동시 다발 테러가 일어나 프랑스 시민 130명이 죽었다. 파리/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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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슬림 2·3세 사회·경제적 소외 시달려…자생적 테러리스트로

1980~90년대 타국인들이 명확한 정치적 이유로 프랑스를 대상으로 테러했다면, 2000년대 이후에는 프랑스 국적의 무슬림들이 자생적 테러리스트가 돼 목적이 불분명한 공격을 감행한다. 프랑스 사회에 이런 무슬림 테러가 끊이지 않는 것은 역사·문화적 배경에서 찾을 수 있다.

프랑스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노동력 충당을 위해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무슬림 이민자들을 많이 받아들였다. 상당수가 돌아갔지만 프랑스 사회에 정착한 이들이 늘고, 이들의 2·3세도 많아졌다. 프랑스인이 아니었던 1세대와 달리 2·3세들은 날 때부터 프랑스인이었지만, 곧 불평등한 상황에 눈을 뜨게 된다.

무슬림 이민자들은 도시 외곽을 뜻하는 ‘방리유’에 주로 산다. 치안이 좋지 않고 경제적으로 낙후된 곳이다. 이곳에서 질 낮은 교육을 받은 무슬림 2·3세들은 좋은 직장을 잡지 못하고 높은 실업률에 시달린다. 30세 미만 실업률을 보면, 북아프리카계 이민 2세들이 전체 평균의 2배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관용’을 외치는 프랑스가 실제 이민자에 대해서는 ‘동화’를 요구하는 것도 이런 불평등의 바탕이 됐다. 국방정책연구원이 2018년 펴낸 ‘프랑스 내 자생적 테러리즘 원인 분석을 통한 정책적 제안’ 논문(서다빈, 엄정식)을 보면 “프랑스의 공화주의 이념은 포용적이고 관용적 문화의 원칙을 갖고 있으나, 동시에 프랑스 공화국 내에 별도의 민족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동화주의 이민정책을 표방”한다. 프랑스는 한발 더 나아가 1872년부터 인구 통계에서 종교와 인종 등을 밝히는 조사를 금지했는데, 이로 인해 국가 차원에서 소수자를 우대하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단체는 열악한 상황에 있는 무슬림 이민 2·3세를 공략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은밀하게 무슬림 청년에게 접근해서 문화적 정체성과 지적 체계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급진주의 운동에 끌어들인다. 수직적 체계를 갖춘 조직이 아니라 온라인상에서 느슨하게 유지되는 수평적 조직을 통해 실체를 파악하기 힘든 ‘외로운 늑대’(자생적 테러리스트)를 길러내는 것이다. 2015년 1월 <샤를리 에브도> 테러와 11월 파리 연쇄 테러의 용의자들이 대부분 알제리와 모로코 이민 2세대들이었다.

25일 터키 이스탄불에서 한 청년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얼굴에 구두발자국이 찍힌 사진을 들고 있다. 이스탄불/AP 연합뉴스
25일 터키 이스탄불에서 한 청년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얼굴에 구두발자국이 찍힌 사진을 들고 있다. 이스탄불/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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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명의 충돌…서방-이슬람 국가간 갈등으로 번져

무슬림을 둘러싼 프랑스 내부 갈등은 국제적 갈등으로 확산하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이 이달 초 이슬람 극단주의와 싸우겠다며 강화된 ‘반분리주의 법안’을 예고한 데 이어 중순에는 ‘교사 참수’ 테러 사건에 대해 이슬람에 대한 강경 발언과 대응책을 내놓은 것이 계기였다.

마크롱 대통령은 무함마드 만평이 표현의 자유 영역에 속한다고 옹호했고, 이달 초에는 “자신들의 법이 공화국의 법보다 우위에 있다고 주장하는 사상이 문제”라며 극단주의 무슬림을 비판했다. 그는 이슬람 극단주의 교육을 하지 못하게 한다며 무슬림의 홈스쿨링을 제한하는 법안 등을 추진 중이다.

이에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마크롱 대통령이 정신과 치료가 필요하다”고 연일 비판하고, 이슬람권의 프랑스 제품 불매운동을 호소하고 나섰다. 쿠웨이트와 카타르, 요르단 등이 이에 호응해 일부 상점에서 프랑스 제품을 진열대에서 치웠고,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 등 아시아권 이슬람 국가에서도 항의 시위가 벌어지는 등 반프랑스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

반면, 독일과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들은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발언을 비판하면서 프랑스를 편들고 있다.

유럽과 이슬람의 정치 지도자들이 불붙은 국민적 분노를 완화하려 하기보다 더 자극해 키우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무슬림 테러 뒤 무슬림에 대한 통제가 강화되고, 이런 조처가 무슬림을 자극해 또다시 테러가 발생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더 촘촘해지고 더 굵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슬람 극단주의와 폭력의 뿌리로 지적받는 프랑스 무슬림에 대한 소외를 얘기하지 않은 채, 전 세계 20억명이 믿는 1400년 역사의 종교에 영향을 미치려 드는 것은 이상한 해결책”이라고 <워싱턴 포스트>는 전했다.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기보다 눈앞에 불을 끄는 즉자적 대응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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