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7일 저녁 델라웨어주 윌밍턴 체이스센터에서 승리 선언 연설을 하고 있다. 윌밍턴/EPA 연합뉴스
“나라를 단합시키는 대통령이 되겠다.” “이제 미국을 치유할 시간이다.”
조 바이든(78)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7일 저녁 8시39분(현지시각) 자택이 있는 델라웨어주 윌밍턴 체이스센터 야외무대에서 대선 승리를 선언했다. 대선이 치러진 지 나흘째, 다섯번째 연설에서 나온 승리 선언이었다.
16분 동안 이어진 연설에서 바이든 당선자는 치유와 통합을 가장 많이 얘기했다. 지난 4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분열 행보와는 다른 길을 가겠다고 강조한 것이다.
짙은 남색 양복에 푸른색 넥타이를 매고 무대 뒤편부터 단상까지 경쾌하게 뛰어 올라온 바이든 당선자는 먼저 무대에 오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당선자와 인사한 뒤 승리 연설을 시작했다. 그는 “여러분의 신뢰에 감사한다. 여러분은 우리에게 분명한 확정적인 승리를 안겨줬다”며 “저는 붉은 주(공화당 지지주)와 푸른 주(민주당 지지주)를 보지 않고, 오직 미국만 보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했다.
바이든 당선자는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을 향해 “오늘 밤 실망했을 것이다. 나도 두번 그랬다”며 “감정을 식히고 서로의 말을 듣자. 상대 세력을 적으로 취급하는 것을 중단하자”고 화해 메시지를 건넸다. 그는 이어 구약성경 전도서의 한 구절을 인용해 “성경에 수확할 시간, 파종할 시간 등 모든 것은 때가 있다고 했다”며 “지금은 치유할 시간, 미국을 치유할 때”라고 말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7일(현지시간) 부인 질 바이든 여사,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부부와 함께 델라웨어주 윌밍턴에서 열린 당선 축하행사의 무대에 나린히 서서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윌밍턴 AP/연합뉴스
바이든 당선자는 코로나19 사태와 경기침체, 인종차별 등 구체적 과제들을 거론하며 해결을 약속했다. 그는 “우리 시대의 큰 전투에서 과학과 희망의 힘을 총동원하겠다”며 “바이러스와의 전투, 번영을 위한 전투, 건강보험을 지키는 전투, 인종차별과의 전투, 기후변화를 통제해 지구를 구하는 전투에 정정당당하게 임하겠다”고 말했다.
바이든 당선자는 우선적 과제로 코로나19 사태 대응을 들었다. 그는 “우리는 일단 코로나19 사태 억제부터 시작한다. (그것 없이는) 경제를 회복할 수 없고, 활력을 되찾을 수 없다”며 “월요일(9일)에 전문가와 과학자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요직에 임명하고, (대통령 취임일인) 내년 1월20일부터 새로운 청사진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당선자는 이날 라틴계 이주민, 동성애자, 아메리카 원주민 등 여러 지지세력들에 감사 인사를 한 뒤, 특히 흑인에 대한 특별한 감사의 뜻을 밝혔다. 그는 “우리 선거운동이 가장 저조했던 순간, 흑인 커뮤니티가 나를 위해 다시 일어섰다”며 “당신들이 항상 나를 지지했듯이 내가 당신들을 지지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5월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으로 인종차별 문제가 부상한 뒤 흑인들은 대거 바이든 지지에 나섰다.
이날 승리 연설 행사는 애초 저녁 8시로 예고됐으나, 다소 늦은 8시27분 카멀라 해리스(56) 부통령 당선자의 연설로 시작됐다. 해리스 당선자는 “(바이든은) 치유자이자, 통합자, 경험 많고 안정된 일꾼”이라며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트럼프 대통령이 아닌 조 바이든을 택한 것은 희망과 단합, 예의, 과학 그리고 진실을 택한 것”이라고 치켜세웠다.
연설장에는 바이든 지지자 수천명이 모여 차량 경적을 누르고 미국기인 성조기를 흔들며 환호했다. 미국과 각국 언론 등이 몰려 이들의 연설 장면을 생중계했다.
연설이 끝난 뒤 부인인 질 바이든 등 대통령 당선자 가족과 해리스 부통령 당선자의 가족이 직접 무대에 올라 지지자들과 함께 기쁨을 나눴다. 무대에는 2015년 뇌암으로 숨진 바이든 당선자의 아들 보 바이든이 좋아했던 음악으로 알려진 그룹 콜드플레이의 ‘별이 가득한 하늘’(Sky Full of Stars)의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조 바이든 당선자의 대선 승리가 확정된 7일 밤 워싱턴 ‘비엘엠(BLM·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광장’에서 바이든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이날 밤새 미국 전역에서 4년 만의 정권 교체를 축하하는 행사가 열렸다. 대선 승리가 선언된 델라웨어에서 180㎞ 떨어진 워싱턴 백악관 근처 ‘비엘엠(BLM·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광장’에는 수천명의 시민들이 모여 승리의 기쁨을 나눴다. 이들은 트럼프가 <엔비시>(NBC) 방송의 ‘어프렌티스’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사용해 유명해진 “넌 해고야”라는 문구를 백악관 앞 철제 울타리의 맨 꼭대기에 걸어 놓는 등 트럼프 대통령의 퇴장을 기념했다.
이날 밤 광장에서 만난 카를로 알스트(45)는 “도널드 트럼프 4년 끝에 똑똑하고 마음씨 좋고 모든 미국인을 위해 일할 수 있는 대통령을 갖게 돼 정말로 기쁘다”고 말했다. 흑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여성 조애나 브라운(32)은 들뜬 얼굴로 “나처럼 여성이면서 혼혈인 부통령을 갖게 됐다”며 “카멀라 해리스가 오늘 유리천장을 부쉈다. 나 같은 사람들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고 말했다.
최현준 기자,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haoju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