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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바이든 정부, 북 대화 끌어내려면 선제적 양보 해야”

등록 2020-11-20 04:59수정 2020-11-24 08:27

미 한반도 전문가 5명 ‘바이든 대북정책’ 설문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왼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오른쪽). 로이터,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왼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오른쪽). 로이터,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내년 1월20일 출범할 조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목표를 그대로 유지면서도 핵 동결이나 군축과 같은 현실적 접근도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북-미 대화 재개를 위해서는 북한이 핵·미사일 실험 등 도발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하고, 미국 또한 양보할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한겨레>는 지난 8~17일, 빌 클린턴 정부에서 북-미 실무협상을 이끌었던 에번스 리비어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전 국무부 동아태 수석부차관보) 등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 5명에게 바이든 정부의 대북 정책과 한국 정부의 갈 길에 대해 물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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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적 인내’와 ‘완전한 비핵화’

바이든 정부가 대북 정책에서 버락 오바마 시절의 ‘전략적 인내’로 되돌아갈 것이라는 관측이 있다. 북한이 먼저 핵·미사일을 포기하지 않는 한 대화에 나서지 않는, 사실상의 방조로 회귀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러나 리비어 선임연구원은 “그 길로 다시 갈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말했다. 그는 “오바마 정부 초기의 전략적 인내 접근법은 실패였고, 바이든 정부에서 정책을 만들고 관리할 사람들은 대체로 그 실패를 직접 목격한 사람들”이라며 “바이든 정부의 접근은 제재·압박에 의존하고 핵무기 추구에 대한 비용을 더 높이려 한 오바마 정부 막판 2년과 더 유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바마 정부에서 국무부 부장관을 지내고 바이든 정부에서도 외교안보 중책을 맡을 것으로 예상되는 토니 블링컨 등이 북한을 방치하지 않고 오히려 압박을 높여 대화로 유도하려 할 것이라는 얘기다.

북-미 대화 교착과 관련해, 미국이 북한에 요구하는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 등 ‘완전한 비핵화’가 비현실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전문가들은 바이든 정부가 완전한 비핵화 목표를 그대로 유지해야 하고, 그렇게 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CVID는 미국의 협상 입장일 뿐만 아니라 11개의 유엔 결의안에 담긴 것”이라며 바이든 정부는 이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오바마 정부에서 국방장관 선임보좌관을 지낸 프랭크 엄 미국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바이든 캠프 참모들은 완전한 비핵화가 아닌 군축이 더 현실적이라는 점도 내비쳐왔다”고 지적했다. 바이든 정부 초대 국무장관 후보로 거명되는 수전 라이스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2017년 <뉴욕 타임스> 기고에서 “북한을 핵 국가로 정당화할 수는 없지만,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이 무기를 정권 생존에 필수적인 것으로 보기 때문에 무기고의 상당량을 포기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점 또한 우리는 알고 있다”고 밝혔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당선자는 지난해 외교협회(CFR)에 “단순히 완전한 비핵화만 요구하는 것은 실패로 가는 길”이라며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줄이면 일부 제재를 완화하는 방안을 고려하겠다고 답한 바 있다. 바이든 당선자도 지난달 대선 후보 토론에서 “핵 능력 축소에 동의하는 조건으로” 김 위원장을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바이든 정부가 ‘완전한 비핵화’와 ‘모든 제재 해제’의 맞교환이라는 달성 어려운 공식을 맨앞에 두기보다는 단계적·동시적 접근법을 취할 가능성도 내비친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 담당 국가정보분석관(NIO) 출신인 마커스 갈라우스카스 애틀랜틱카운슬 선임연구원은 “바이든 정부는 완전한 비핵화 목표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한 차례 임기 안에 이룰 수 있는 정책 목표를 세우는 데 있어서 더 현실적인 접근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켄 고스 해군분석센터 적성국분석국장은 “완전한 비핵화 요구보다는 핵 동결이 낫다고 본다”며 “그러나 이는 북한을 핵 국가로 인정하는 것이다. 바이든 정부가 그걸 기꺼이 용인할지 지켜봐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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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은 도발 말고, 미국도 양보해야”

전문가들은 바이든 정부가 북한과 대화에 나서려면 출범 뒤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엄 선임연구원은 “바이든 정부의 북한 정책 검토에 늦은 봄까지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검토 결과 북한과의 관여가 중요하고 필요하다고 판단하더라도, (대화를 하는 데) 핵심은 바이든 정부가 북한의 셈법을 바꿀 무언가를 내놓을 것이냐의 문제”라고 말했다.

북한의 행동도 ‘북-미 대화 재개냐, 충돌이냐’를 가를 중요 변수다. 설문에 응한 전문가들은 모두 북한이 바이든 정부 초기에 도발 행동을 할 것으로 내다봤다. 리비어 선임연구원은 “새 정부는 북한이 오바마 정부 초기에 핵·미사일 실험을 한 것을 기억할 것”이라며 “취임 첫날부터 북한에 예민하게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클링너 선임연구원은 “바이든은 초기에 외교 문제보다는 코로나19 등 국내 문제에 우선순위를 둘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북한은 바이든이 반응하도록 긴장 고조를 모색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 때문에 북-미 대화 재개를 위해서는 양쪽 모두 대화 의지를 갖고 성의를 보이는 게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했다. 갈라우스카스 선임연구원은 “북한이 늦어도 내년 초에는 탄도미사일 등 전략무기 실험을 재개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강력한 신호들이 많다”며 “대화 재개 환경을 조성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이 탄도미사일이나 핵실험, 또는 사이버 공격 등 도발적 행동을 하지 않도록 막는 것”이라고 말했다.

리비어 선임연구원은 “가장 중요한 단 한 가지는 핵무기 프로그램 종결에 관해 미국과 대화하려는 북한의 의지다. 북한이 그런 대화를 할 의지가 있다면 적대 종식, 관계 정상화, 제재 해제, 평화조약 완성, 그리고 북한 인민들에 미국의 지원 제공 등을 포함해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클링너 선임연구원은 “대화에서 첫 걸음은 양쪽이 관여할 의지를 갖도록 하는 것”이라며 “미국이나 한국은 단지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다시 끌어내기 위해 대북 유엔제재 이행을 줄이거나 혜택을 제공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미국이 먼저 움직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엄 선임연구원은 “진전을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모든 당사자들이 더 유연해져야 한다”면서도 “미국이 먼저 조처를 취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2018년에 핵·미사일 시험 중단, 풍계리 핵실험장과 동창리 미사일 발사시험장 폐쇄, 미군 유해 송환 등을 했지만 미국은 상응 조처를 하지 않았고 배신감을 느낄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고스 국장도 “북한이 핵 프로그램에서 먼저 양보할 것으로 기대하지 말라”며 “미국이 제재 완화를 테이블에 올리는 등 먼저 양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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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가 할 일은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가 바이든 정부와 긴밀하게 조율해서 움직여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었다. 리버어 선임연구원은 “바이든 정부가 정책 검토를 하는 동안 한국이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하기를 바란다. 바이든 정부는 분명히 정책 검토 기간과 그 이후에도 한국과 긴밀하게 상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남북관계 개선에서는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엄 선임연구원은 바이든 행정부 출범 초기 북한이 도발적 행동을 해서 국제 사회가 제재로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문재인 정부는 잔여 임기 1년여를 잃어버리게 된다면서, “한국 정부는 국가 안보이익에 맞는 최선의 정책이라고 여기는 것을 최대한 공격적으로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남북관계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이미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있어서 추가로 할 수 있는 공간이 많지 않다”며 “결실을 맺기 더 좋은 분야인 북-미 관계에서 바이든 정부가 얼마나 진지한지를 문재인 정부가 시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고스 국장은 “문재인 정부는 바이든과 그 참모들에 가능한 빨리 관여해서, 미 정권 이양기에 북한이 조용히 있도록 하는 방안으로 남북대화를 하는 것을 수용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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