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으로 디자인된 네덜란드 담뱃갑. ‘당신의 연기는 자녀, 가족, 친구에게 해롭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담배규제기본협약(FCTC) 누리집 갈무리
“50년 전 생일축하 파티 때, 탁자 위에는 담배가 가득 놓여 있었다. (중략) 2040년 아이들은 담배 연기가 어떤 냄새인지 더 이상 모를 것이다.”
지난해 6월 네덜란드 정부가 ‘국가예방협정’ 보고서를 내놓으면서 했던 얘기다. 흡연·비만·과도한 음주 등 3가지 예방 분야를 다룬 협정에서, 네덜란드 정부는 20년 뒤 담배를 모르는 이른바 ‘금연 세대’를 배출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계획은 착착 진행되고 있다. 20일(현지시각) 네덜란드 보건부는 슈퍼마켓에서 담배와 관련된 제품의 판매를 금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네덜란드 슈퍼마켓에서는 담배 진열이 금지돼 있는데, 한발 더 나아가 아예 판매 자체를 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슈퍼마켓은 현재 네덜란드 담배 판매의 55%를 차지하고 있다.
앞서 네덜란드는 2022년부터 자동판매기를 통한 담배 판매도 금지하기로 했다. 두 조처가 함께 이뤄질 경우 네덜란드의 담배 판매 장소 1만6천여 곳 가운데 1만1천여 곳이 사라지게 된다. 담배 접근성이 3분의 1로 줄어드는 것이다. 파울 블로퀴스 보건부 차관은 “이를 통해 많은 불필요한 죽음과 의료적 고통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에는 네덜란드에서 판매되는 모든 담뱃갑을 회색 계열로만 디자인하도록 하는 방안이 실행됐다. 하양, 파랑, 빨강 등 형형색색으로 디자인돼 젊은 층을 자극했던 담뱃갑 모양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담뱃갑에는 크고 분명하게 건강 경고 표시를 해야 하고, 담배 제조사와 담배 타입에 관한 정보만 표시할 수 있다. 이런 조처는 2022년부터 전자 담배에도 적용된다. 한국도 2022년부터 이런 무채색 담뱃갑을 도입할 예정이다.
1970년대부터 대마를 비범죄화할 정도로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네덜란드가 흡연에 대해 이렇게 엄격한 대응에 나선 것은 문제가 그만큼 심각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국립보건환경연구소 자료를 보면, 인구 1700만명인 네덜란드에서 간접 흡연을 포함해 흡연으로 인해 사망하는 인구는 매년 2만명 이상이다. 해마다 질병으로 인한 비용 부담의 9.4%가 흡연으로 인해 발생하며, 24억 유로 상당의 의료 비용이 발생한다. 특히 하루 75명꼴, 매주 수백명의 청소년들이 흡연에 중독되며, 이들의 흡연으로 인한 사망률은 그렇지 않을 때보다 절반 이상 높다. 그만큼 흡연을 줄일 경우 의료 비용 등을 줄일 수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네덜란드 정부는 단기적으로 지난해 20.4%였던 흡연율을 올해 20% 미만으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한다. 장기적으로는 20년 뒤인 2040년까지 성인 흡연율을 5%까지 낮추고, 청소년과 임산부 흡연율은 0%로 낮추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 구매처 축소, 가격인상, 흡연장소 제한 등의 방법으로 담배 접근성을 낮출 계획이다. 슈퍼마켓을 제외하는 등 담배 구매처를 축소한 데 이어, 현재 6~7유로 수준인 담배값도 2023년까지 10유로(1만3천원)로 올릴 예정이다. 또 올해부터 학교 운동장과 동물원, 놀이터, 보육시설 등을 금연 시설로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 최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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