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시대, 미-중 관계 전망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자(오른쪽)가 부통령 시절인 2015년 9월24일 미국을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메릴랜드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맞이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자(오른쪽)가 부통령 시절인 2015년 9월24일 미국을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메릴랜드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맞이하고 있다. AP 연합뉴스](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697/508/imgdb/original/2020/1123/20201123503782.jpg)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자(오른쪽)가 부통령 시절인 2015년 9월24일 미국을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메릴랜드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맞이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바이든, 2001년 중 WTO 가입 도우며 ‘국제사회 통합’ 기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자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꽤 오랜 친분이 있다. 바이든 당선자가 부통령이던 시절, 시 주석은 집권을 앞둔 부주석 신분이었다. 지난 2011년 초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이후 18개월여에 걸쳐 8차례 만났고, 모두 25시간을 통역만 대동한 채 얘기를 나눈 경험이 있다. 내년 1월20일 바이든 당선자가 제46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하면, 지난 4년여 사상 최악으로 치달았던 미-중 관계는 달라질 수 있을까? “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중국을 영원히 국제사회에서 배제할 순 없다. … 중국이 변하지 않는 한 세계는 결코 안전할 수 없다. 그러니 우리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선에서 중국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목표가 돼야 한다.”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967년 10월 외교안보 전문매체 <포린 어페어스>에 기고한 ‘베트남 이후의 아시아’란 글에서 이렇게 썼다. 실제 닉슨 전 대통령은 대중국 봉쇄정책의 역사를 마감하고, 미-중 수교를 추진해 이른바 ‘죽의 장막’을 걷어냈다. 중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지위를 회복했고, 개혁·개방의 길로 나아갔다. 이후 미국의 역대 행정부는 닉슨 전 대통령이 제시한 대중국 외교의 원칙을 충실히 따랐다. 경제·외교·문화적 유대를 통해 중국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정책의 근간이었다. 미국의 국력과 패권적 지위가 중국을 미국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낼 수 있다고 자신했다.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국방부 차관보를 지내며 동아시아 정책을 입안했던 국제정치학자 조셉 나이의 말이 이런 미국의 분위기를 대표한다. “중국을 적으로 대한다면, 미래에 반드시 적을 만나게 될 것이다. 중국을 친구로 대한다면? 미래에 친구가 될 것이라고 장담할 순 없지만, 보다 나은 결과를 만나게 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어둘 수 있다.” 세월이 흘렀다. 미국도, 중국도 달라졌다. 지난 22일 막을 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는 달라진 양국의 관계를 극명히 보여준 상징적 사건으로 외교사에 기록될 만하다. 퇴임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회의 도중, 그것도 코로나19 방역 협력방안을 논의하는 시간에 자신이 소유한 골프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미국의 부재 속에 시진핑 주석은 세계를 무대로 야심찬 연설을 내놨다. 이전의 발언과는 사뭇 다른 목소리였다. 지난해 9월3일 시 주석은 공산당 중앙당교(국가행정원) 가을 학기 개강식에서 연설을 했다. 관영 <신화통신>은 시 주석이 젊은 당 간부를 상대로 한 이날 연설에서 ‘투쟁’이란 표현을 모두 58차례 사용했다고 전했다. 신중국 건국 70주년 기념일을 한달 남짓 앞둔 시점이었다. 미-중 무역전쟁은 불을 뿜고 있었고, 홍콩 시위 장기화 속에 국제사회의 비난이 중국으로 쏠리고 있었다. 시 주석은 “위대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선 반드시 위대한 투쟁을 벌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행정부 들어 미-중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기 시작할 때부터, 중국은 “싸움을 원치 않지만, 피하지도 않겠다”는 말을 대미국 정책의 기조로 삼아왔다. 시 주석의 중앙당교 연설도 맥을 같이 한다. 하지만 올 들어 조금 달라졌다. 코로나19 사태로 휘청이던 중국은 극단적인 봉쇄와 국가자원 총동원을 통해 효과적으로 전염을 차단했다. 미국과 유럽이 혼돈으로 빨려들 무렵인 지난 5월부터 경제활동도 사실상 정상화됐다. 코노나19 방역과 경기 회복은 2020년 연말을 앞둔 지구촌 공통의 화두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중국은 자신감이 넘친다. 지난달 23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 인민지원군 항미원조 출국작전(한국전쟁) 70주년 대회’에서 시 주석은 그 자신감을 숨기지 않았다. “항미원조 전쟁은 교전 쌍방의 역량이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조건에서 진행된 현대화 전쟁이었다. … 그럼에도 간고한 전투 끝에 중무장한 적수를 물리치고, 미군의 불패 신화를 깨뜨렸다.” 시 주석은 21일 주요 20개국 정상회의 연설에서 한걸음 더 나아갔다. 먼저 그는 ‘포스트 코로나19 시대’ 국제질서의 열쇳말로 다원주의, 개방과 포용, 호혜협력 등을 내세웠다. 이어 “중국은 세계평화의 건설자, 지구촌 발전의 기여자, 국제질서의 수호자로서의 역할을 지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의 부재를 대신할 새로운 다자주의의 기수임을 자처하고 나선 셈이다. 실제 그는 이날 중국이 방역을 위해 도입한 ‘코로나19 건강코드’를 새로운 국제 방역표준으로 제안했다. 모바일 기기를 활용한 위치추적에 기반한 시스템으로, 지난 3월 도입 당시부터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사생활 침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이어 시 주석은 당나라의 시인 류위시(유우석)의 싯구를 인용해 “침몰하는 배 옆으로 수천 척의 배가 지나가고, 병든 나무 앞에서 온갖 나무가 봄을 맞는다”고 말했다. ‘침몰하는 배’와 ’병든 나무’는 무너진 과거의 질서를 가리킨다. 국제사회의 반응은, 중국의 기대와는 많이 다른 것 같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지난 4년여,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미국의 부재가 도드라졌던 올해가 중국으로선 천금같은 기회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중국은 각국과 불화하며, 기회를 살리는데 실패했다. 히말라야 고산 국경지대에선 인도와 유혈충돌을 벌였다. 메콩강 유역 개발 문제를 두고 동남아 각국과 갈등했다. 지난해 송환법 시위 기간 내내 인권침해 논란을 불렀던 홍콩에선 아예 입법회를 무시하고 보안법을 시행했고, 뒤이어 선거를 통해 선출된 입법의원의 자격마저 박탈했다. 캐나다와 오스트레일리아 등에 대해선 외교적 앙금을 경제적 보복으로 되갚았다. 일본·베트남 등과도 동·남중국해에서 영유권 분쟁을 이어갔다. 무엇보다 올 하반기 들어선 지속적인 대규모 군사훈련과 잦은 방공식별구역(ADIZ) 침범으로 대만을 겨냥해 흡사 ‘저강도 전쟁’이라도 벌이는 모양새다. 트럼프 행정부의 과도한 중국 때리기에도 중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응이 싸늘하기만 한 이유일 게다. 중국은 달라졌다. 더이상 덩샤오핑 시절 ‘도광양회’(재능을 숨기고 인내하며 때를 기다림)하던 중국이 아니다. 중국이 달라졌으니, 미-중 관계도 과거로 돌아갈 수 없음은 자명하다. 바이든의 미국은 어떨까? 중국에 대한 바이든 당선자의 인식도 과거에는 ‘닉슨의 주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는 미-중 수교를 불과 8개월 남긴 지난 1979년 4월 신중국 성립 이후 첫 미 의회대표단의 일원으로 중국을 방문했다. 중국의 폭발적 경제성장의 계기가 된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도 당시 상원 외교위원장이었던 바이든 당선자의 힘이 컸다. 그는 그해 8월 중국 방문해 “세계무대에 통합된 번영하는 중국을 환영한다. 국제사회의 기준에 부합해 행동하는 중국이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중국은 미국이 원하는 쪽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이른바 ‘중국 특색 사회주의’는 미국과 서구에서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다른 가치체계에 따라 작동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지난 7월23일 닉슨 기념도서관 연설에서 “중국이 번영을 누리고 개방의 폭을 넓히면 국내적으로 보다 자유롭고, 대외적으로 덜 위협적이고 우호적으로 바뀔 것으로 기대했지만 허사였다. 닉슨 대통령이 바랬던 변화는 오지 않고, 부활한 중국은 도움을 준 국제사회의 손을 물어뜯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바이든 당선자의 대중국 인식이 달라진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거의 모든 측면에서 미국의 신뢰도와 영향력은 2017년 1월20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내가 백악관을 떠난 이후 크게 위축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동맹과 우방을 위축시켰고, 관계를 손상시켰으며, 어떤 경우엔 아예 저버리기까지 했다. 적성국을 대담하게 만들었으며, 국가안보 위협을 대처할 수 있는 지렛대를 낭비했고….”
![2012년 2월 미국 캘리포니아 사우스게이트의 한 국제학교를 방문한 시진핑 중국 당시 부주석(왼쪽)과 조 바이든 부통령이 ‘미국과 중국 간 친선을 조성하자’고 양국 언어로 쓰여진 티셔츠를 들어올리고 있다. 사우스게이트/AP연합뉴스 2012년 2월 미국 캘리포니아 사우스게이트의 한 국제학교를 방문한 시진핑 중국 당시 부주석(왼쪽)과 조 바이든 부통령이 ‘미국과 중국 간 친선을 조성하자’고 양국 언어로 쓰여진 티셔츠를 들어올리고 있다. 사우스게이트/AP연합뉴스](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757/504/imgdb/original/2020/1123/20201123503781.jpg)
2012년 2월 미국 캘리포니아 사우스게이트의 한 국제학교를 방문한 시진핑 중국 당시 부주석(왼쪽)과 조 바이든 부통령이 ‘미국과 중국 간 친선을 조성하자’고 양국 언어로 쓰여진 티셔츠를 들어올리고 있다. 사우스게이트/AP연합뉴스
중, ‘변화시켜야 할 대상’서 ‘패권 경쟁하는 대상’으로 급성장 바이든 당선자는 지난 3·4월호 <포린 어페어스>에 기고한 ‘왜 미국이 다시 지도력을 발휘해야 하는가’란 글에서 이렇게 썼다. 그는 미국이 기초한 자유주의적 국제질서 회복과 동맹 복원, 미-중관계 재조정을 차기 행정부 외교정책의 핵심으로 제시했다. 자유주의의 대척점에는 중국이 대표하는 ‘반자유주의·권위주의’가 있다. 그는 “기후변화와 북핵 포함한 비확산, 코로나19 방역 등 공중보건 분야 등에선 중국과 선택적 협력이 가능하다”면서도, 인권·노동·환경·무역·외교 등에서 국제기준 지키기 위해선 “중국에 강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바이든 당선자는 ‘중산층을 위한 외교정책’을 내걸었다. 중산층은 미국의 근간이며, 이들이 흔들리면 미국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결국 그의 대외정책은 흔들리는 미국의 국내외 역량을 강화하는 데서 출발한다. ‘미국의 힘’을 과신해 좌충우돌했던 트럼프 행정부와는 결이 다르다. 중국을 압박을 통해 변화시킬 수 있는 수동적인 대상이 아닌, 일부 측면에선 이미 미국을 추월한 위협적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행정부가 심어놓은 반중정책과 초당적 반중정서란 유산도 물려받게 된다. 대선 불복이란 초유의 사태가 낳은 극단적인 여론 분열상까지 고려하면, 국내 정치적 측면 때문이라도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 정책은 트럼프 행정부의 기조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은 구조다. 대만 문제, 동·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신장·티벳·홍콩 인권문제 등 3대 핵심 현안만 놓고 봐도, 중국은 “내정이자, 침해할 수 없는 주권의 문제”라고 주장한다. 바이든의 미국은 대만에 대한 안전보장 철회할 수 있을까? 동·남중국해에서 중국의 영유권 주장을 인정할 수 있을까? 신장·티벳·홍콩 인권문제를 내정이라고 외면할 수 있을까? 그럴 순 없을 것이다. 적어도 동아시아 차원에서 중국의 패권을 인정하는 꼴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_______
대중국 강경론은 워싱턴 정가 초당적 인식 이런 측면을 고려하면, 지난 1월 말 미국안보센터(CNAS)가 의회에 제출한 대중국 정책 보고서는 바이든 행정부 대중국 정책의 앞날을 내다보는 데 유용해 보인다. 이 단체는 바이든 행정부 초대 국방장관이자 사상 첫 여성 국방장관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미셸 플러노이가 지난 2007년 민주당 계열 싱크탱크로 창설했지만, 이후 공화당 쪽 유력 인사들도 가담하면서 초당적 싱크탱크로 탈바꿈했다. 커트 켐벨, 엘리 래트너 등 바이든 당선자의 대중국 정책을 보좌하고 있는 인물들이 다수 참여하고 있는 이 단체는 초당적 대중국 강경론의 집산지다. 이 단체는 보고서에서 무엇보다 중국을 단순히 ‘변화시켜야 할 대상’이 아닌, 미국과 패권을 놓고 ‘경쟁하는 대상’으로 여긴다. 동아시아에선 중국의 재래식 군사력이 미국에 앞서거나 최소 비슷한 수준까지 이르렀으며, 5세대 이동통신(5G)과 인공지능(AI) 등 일부 첨단산업 분야에서도 중국의 기술력 미국을 앞질렀다고 본다. 대응책은 명확하다. 보고서는 미국의 자체 능력을 강화하는 게 정책의 출발점이라고 강조. 이는 “미국내 민주주의 복원을 통해 동맹을 재결집시키겠다”는 바이든 당선자의 구상과 논리적으로 맥을 같이 한다. 이어 보고서는 △재래식 군사적 억지력 유지 △첨단 기술분야 미국 기술 우위 유지 △미국 경제력·국제무대 지도력 강화 △동맹 복원 통한 미국 외교력 강화 △자유주의 대 반자유주의 이념 담론 경쟁 등을 분야별 정책 권고안으로 제시했다. 흥미로운 점은 트럼프 행정부의 국무부가 지난 18일 공개한 74쪽 분량의 대중국 정책 보고서가 이 단체의 보고서와 흡사하다는 점이다. 국무부 보고서는 “중국은 미국이 정립한 국제질서 속에서 우월적 지위에 오르는 게 목표가 아니라, 국제질서에 근본적으로 변경을 가해 패권국가가 되려 한다”고 강조했다. 제시한 정책 대안도 △동맹 복원 △규칙에 기반한 국제질서 강화 △미 국내 헌정질서·시민사회 역량 제고 △세계 최강 군사력 유지 등으로 유사하다. 트럼프 행정부까지 포괄하는 워싱턴 정가의 초당적 인식이란 뜻이다. 4년여의 공백을 딛고, 달라진 미국이 국제무대 귀환을 준비하고 있다. 바뀐 것은 중국도 마찬가지다. 그래서다. 바이든 행정부의 등장은 미-중 체제경쟁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릴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지난 4년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격전이 펼쳐질 것이란 뜻이다. 베이징/정인환 특파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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