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당한 이란 핵과학자 모흐센 파흐리자데의 지난해 1월 모습. AP 연합뉴스
이란의 핵 개발을 이끌었던 핵 과학자가 27일(현지시각) 테러 공격으로 사망했다. 2010~2012년 이란 핵과학자 4명이 잇달아 사망한 지 8년 만이다. 이란은 이스라엘을 테러 배후로 지목했다.
이란 국방부의 연구·혁신 기구 수장이자 핵 과학자인 모흐센 파흐리자데가 수도 테헤란 인근 도시 아브사르드에서 테러 공격을 받아 암살됐다고 이란 국영 <아이아르엔에이>(IRNA) 통신이 이날 보도했다. 통신은 폭발음이 들린 뒤 기관총 소리가 들렸다고 전했다. 파흐리자데는 부상당한 채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의료진이 치료에 실패했다고 이란 국방부는 밝혔다.
서구 정보기관은 파흐리자데가 민간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가장해 핵탄두를 개발하는 프로그램을 비밀리에 진행한 것으로 보고 있다. 1999년부터 2003년까지 이란이 진행한 핵무기 개발 계획인 ‘아마드 프로젝트’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1년 유엔 보고서는 그에 대해 이란의 핵무기 개발 기술 획득을 위해 노력했으며 여전히 그런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의심된다고 적었다. 이란은 이런 핵 프로그램이 매우 평화적인 목적으로 진행된다고 주장해 왔다.
이란의 오랜 적대국 이스라엘은 2018년 파흐리자데를 이란 핵무기 개발 책임자라고 주장한 바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그해 4월 자국 정보기관 모사드가 테헤란 남서부 슈러브드 지역의 비밀 시설을 급습해 확보한 핵 개발 관련 기밀 자료를 공개하면서 파흐리자데를 언급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아마드 프로젝트를 주도한 이란 핵과학자 파흐리자데가 2018년에도 에스피엔디(SPND)라는 핵무기를 개발하는 비밀 조직의 책임자”라고 주장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2018년 4월 텔아비브에서 이란 핵 관련 자료를 공개하면서 모센 파흐리자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텔아비브/로이터 연합뉴스
이란은 이스라엘을 파흐리자데 살해 배후로 보고 복수를 천명했다.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은 트위터를 통해 이스라엘이 파크리자데 살해에 관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스라엘의 역할을 암시하는 비겁함은 가해자들의 필사적인 전쟁 도발을 의미한다”며 “이란은 국제사회, 특히 유럽연합에 부끄러운 이중잣대를 버리고 이런 국가 테러를 비난할 것을 촉구한다”고 적었다.
모하마드 바게리 이란군 참모총장은 복수하겠다고 밝혔다. 바게리 총장은 파흐리자데의 죽음을 “비통하고 중대한 타격”이라며 “우리는 이번 일에 관계된 자들을 추적해 처벌할 때까지 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테러 조직과 그 지도자, 그리고 이 비겁한 시도의 가해자들은 엄중한 복수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은 파흐리자데 암살에 대해 아직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지난 2010~2012년 이란 핵과학자 4명이 각각 테러 공격으로 사망했고, 이란은 그 배후로 이스라엘을 지목했었다. 2010년 1월 테헤란대 교수인 핵 물리학자 마수드 알리 모하마디가 출근길에 폭탄 공격을 받고 숨졌고, 같은 해 11월 이란원자력기구의 멤버였던 마지드 샤흐리아리가 폭발 사건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듬해 7월에는 핵개발에 관여한 과학자 다르이시 레자에이가 테헤란에서 오토바이를 탄 괴한의 총격으로 숨졌고, 2012년 1월에는 핵 과학자 모스타파 아흐마디 로샨이 자신의 차에 부착된 폭탄이 터져 목숨을 잃었다.
이번 테러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대중동 외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바이든 당선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18년 탈퇴한 이란 핵협정(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 복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여러 국가의 안보가 걸린 민감한 문제에 큰 변수가 더해진 셈이다.
이란 핵협정은 2015년 미국 및 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독일이 이란과 맺은 협정으로, 이란은 핵 개발을 포기하고 서방은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를 해제한다는 내용이다. 이스라엘은 이란 핵협정을 꾸준히 반대해 왔는데, 이번 핵과학자 테러로 이란-이스라엘 간 긴장도가 크게 높아지게 됐다. 최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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