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각)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퍼스트레이디 질 바이든과 함께 존 로버츠 대법원장 앞에서 취임선서를 하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조 바이든(78) 전 부통령이 20일 정오(현지시각·한국시각 21일 오전 2시) 미국의 제46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혼돈과 분열의 도널드 트럼프 시대 4년을 끝내고 새 대통령에 오른 그는 취임사를 통해 통합을 강조했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와 결별하고 동맹 회복과 ‘미국의 귀환’을 내걸어온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으로 미 대내외 정책에 커다란 변화가 예상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오전 11시47분께 워싱턴 의사당 앞에 마련된 무대에서 존 로버츠 연방대법원장 앞에서 “미국 대통령의 직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최선을 다해 미국 헌법을 보존하고 보호할 것을 맹세한다”고 선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어진 취임사에서 트럼프의 대선 불복과 그 지지자들의 의사당 난입 사태를 염두에 둔 듯 “우리는 민주주의가 소중하고 깨지기 쉽다는 것을 다시 알게 됐다”며 “(그러나) 이 순간, 민주주의가 승리했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와 인종 불평등, 정치적 극단화, 백인우월주의, 국내 테러리즘 등 미국이 마주한 도전을 언급하고, “위기와 도전의 역사적 순간이다. 통합만이 성공을 향한 길”이라고 말했다. 그는 “통합 없이는 평화가 없다. 비통과 분노가 있을 뿐”이라면서 서로를 적이 아닌 이웃으로 바라보고 품위와 존경으로 대하며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할 것을 호소했다. 그는 “빨강 대 파랑, 농촌과 도시, 보수와 진보를 서로 적으로 만드는 이 야만의 전쟁을 끝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 “나는 모든 미국인을 위한 대통령이 될 것을 맹세한다”며 “나를 지지한 사람들을 위해서와 마찬가지로 나를 지지하지 않은 사람을 위해 열심히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폐기와 동맹 복원, 미국의 위상 회복도 약속했다. 그는 전세계를 향해 “우리는 동맹을 복원하고 다시 세계와 관여할 것”이라며 “평화와 발전, 안보의 강력하고 믿을 수 있는 파트너가 되겠다”고 말했다. 또 “우리는 단순히 힘의 과시가 아니라 모범의 힘으로 이끌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오후 백악관에 입성한 뒤 ‘100일간 마스크 착용’, 파리기후변화협약 재가입, 일부 이슬람 나라에 적용된 입국금지 철회 등 17개의 행정명령과 지시에 서명하며 ‘트럼프 지우기’에 본격 나섰다. 바이든 대통령은 국정 최우선 과제로 코로나19, 경기침체, 기후변화, 인종 불평등을 꼽고 앞으로 열흘 동안 관련 조처들을 쏟아낼 예정이다. 하지만 트럼프 시대에 극심해진 분열과 추락한 민주주의를 추스르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상원에서의 트럼프 탄핵심판이라는 정치적 과제도 놓여 있다.
바이든 시대의 변화 신호는 19일 새 정부 외교안보 수장들에 대한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이미 발신됐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지명자는 북한 문제에 대해 “나는 대북 정책과 접근법 전반을 점검할 생각이고, 점검해야 한다”며 “우리의 동맹과 파트너, 특히 한국과 일본 그리고 나머지와 긴밀히 상의하고 모든 권유를 살펴보는 것에서 출발하겠다”고 말했다. 동맹과의 협력을 경시하고 최고 지도자 간 톱다운(위에서 아래로) 방식으로 진행해온 트럼프의 대북 접근법을 재검토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 지명자는 이날 청문회에 제출한 서면답변서에서 장기간 교착 상태인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협상과 관련해 “인준받으면 조기에 마무리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한·미는 2020년도분 방위비 협상을 진행했으나 정부는 전년 대비 13% 인상을, 트럼프 정부는 50% 인상을 요구하면서 사실상 중단됐다. 오스틴 지명자는 한-미 동맹을 인도·태평양 지역 평화·안보의 린치핀(핵심축)이라고 재확인했다.
이날 취임식은 코로나19로 인해 참석 인원이 대폭 축소된 채로 진행됐다. 예전에 수십만명의 인파가 몰렸던 의사당 앞 내셔널몰은 약 19만1500여개의 성조기로 대신 채워졌다.
트럼프는 취임식에 참석하지 않은 채 이날 오전 8시20분께 백악관을 떠나 자택이 있는 플로리다주로 날아갔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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