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시민들이 부르카, 니캅 착용 등을 금지하는 법안에 대한 반대 행진을 하고 있다. 이들은 인종주의와 반 무슬림주의에 반대한다는 플래카드를 들었다. 취리히/EPA 연합뉴스
스위스가 식당과 대중교통 등 공공장소에서 니캅과 부르카를 착용하는 것을 금지하기로 했다.
<가디언> 등 보도를 보면, 7일(현지시각) 스위스는 국민투표에서 공공장소에서 얼굴을 모두 가리는 것을 금지하는 헌법 조항 도입에 투표자 51%가 찬성했다. 이를 어기면 최고 1만 스위스프랑(1200만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 다만, 예배 장소에서 얼굴을 가리는 것과 건강이나 공연, 보안 등의 이유로 가리는 것은 허용된다.
이번 법안으로 종교·사회적 이유로 얼굴을 가리는 니캅·부르카 착용이 금지돼 논란이 일고 있다. 니캅과 부르카는 이슬람권 일부에서 입는 의상으로 니캅은 눈을 가리지 않고 부르카는 눈까지 그물로 가린다. 특히 무슬림에 대한 편견을 강화한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스위스 무슬림 단체는 법안 도입을 비판했다. 무슬림 페미니스트 모임인 ‘보라색 스카프’의 이네스 엘시크는 “이것은 명백히 스위스 내 무슬림 사회에 대한 공격”이라며 “법안의 목표는 무슬림을 더욱 낙인찍고 소외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스위스 이슬람 산하기구 연맹도 성명을 통해 “이 상징적 정책은 무슬림 여성과 남성에 대한 것”이라며 “이 법안은 스위스 사회 전체에 타격을 주며, 스위스의 가치를 낮춘다”고 밝혔다. 스위스 내 무슬림 인구는 2018년 기준 5.3%로 추산된다.
베른과 제네바 등의 관광협회도 법안 도입으로 아랍 국가들의 방문자 수가 줄어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호텔스위스 산하기구의 니콜 브랜들 슐레겔도 “부르카 금지는 개방적이고 관영적인 관광지라는 우리의 명성에 타격을 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스위스 정부와 의회도 전국적인 금지에 반대 입장을 내면서, 신원 확인을 요청할 때 안면 가리개를 벗도록 하는 대체 입법을 제안하기도 했다. 스위스에서는 티치노와 장크트갈렌 등 일부 주에서 주민투표를 통해 부르카를 이미 금지했지만, 전국적인 차원의 도입은 번번이 좌절됐다.
법안 도입에 찬성하는 쪽은 공공안전을 위해 얼굴 전체를 가리는 것을 금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법안 자체에 부르카나 니캅이라는 단어가 없고, 부르카와 니캅이 여성을 억압하는 상징물이기도 하다고 주장했다. 찬성 캠페인을 주도했던 우파 스위스국민당은 홍보 포스터에 검은색 니캅 차림의 여성과 함께 ‘과격 이슬람주의는 그만’, ‘극단주의 그만’ 등의 구호를 적는 반 이슬람 정서를 적극 활용했다.
유럽에서는 지난 2011년 프랑스를 시작으로 오스트리아와 벨기에, 독일, 덴마크가 공공장소에서 얼굴 전체를 가리는 복장을 전면 또는 일부 금지하는 ‘부르카·니캅 금지법’을 시행하고 있다. 최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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