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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아르메니아인 집단학살’ 바이든 표현에 터키 강력 반발

등록 2021-04-25 12:28수정 2021-04-26 02:45

1915년 오스만제국이 벌인 150만명 학살 사건 추모
터키와 관계 고려해 전임자들이 꺼려온 표현 40년만에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제3자의 정치화” 강력 반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AP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AP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세기 초 오스만 제국(지금의 터키)이 저지른 아르메니아인 학살을 ‘집단학살’(genocide·제노사이드)이라고 인정했다. 미국 대통령들이 터키와의 관계를 고려해 꺼려온 이 표현을 바이든 대통령이 40년 만에 꺼내들자 터키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아르메니아인 집단학살 추모일인 24일(현지시각) 성명을 내어 “미국인들은 106년 전 오늘 시작된 집단학살에서 숨진 모든 아르메니아인을 기린다”며 “전세계 어디서도 잔혹 행위가 일어나지 못하게 막으려는 우리의 공통의 결의를 새롭게 하자. 그리고 세상 모든 이들을 위한 치유와 화해를 추구하자”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성명에 집단학살이라는 표현을 두 차례 썼다.

역사가들은 1915년부터 1923년까지 오스만 제국이 아르메니아인 및 다른 소수 민족을 학살해 150만명이 희생당했다고 추정한다. 1915년 4월24일 아르메니아인 지도자들과 지식인들 수백명이 오스만 제국에 붙잡혀가는 것을 시작으로 수많은 생명이 스러졌다. 기독교 아르메니아인들이 오스만의 적인 러시아와 손잡을 것이라는 우려에서 자행된 일이다. 터키는 그러나 터키인들과 아르메니아인 양쪽이 희생당했으며 집단학살이 아니었다고 부정해왔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매년 추모 메시지를 내왔으나, 1981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을 마지막으로 터키와의 관계 악화를 피하기 위해 집단학살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재임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세기 최악의 참사 중 하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세기 최악의 집단 잔혹 행위의 하나”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인권을 중시하는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대선 캠페인에서 아르메니아인 학살을 집단학살로 인정하겠다고 공약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전날인 23일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과 취임 뒤 처음으로 통화했는데, 이 자리에서 집단학살로 인정하겠다고 미리 알린 것으로 알려졌다.

터키는 미국과 함께 군사동맹체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이다. 두 나라는 냉전 시절 공동의 적 소련에 맞서 사이가 좋았으나, 최근에는 관계가 나빠지고 있다. 터키가 러시아의 S-400 지대공 미사일을 도입하고 시리아 북동부를 합동 순찰하는 등 친러시아 행보를 보이면서 미국뿐 아니라 북대서양조약기구의 다른 회원국들 또한 터키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 아르메니아인 집단학살을 인정하는 바이든 대통령의 추모 성명은 이같은 미-터키 관계 악화 속에 나왔다.

아르메니아계와 인권 단체 등은 바이든 대통령이 집단학살로 인정한 것을 환영했다. 미국아르메니아인의회의 브라이언 아더니 사무총장은 “(집단학살에 대한) 한 세기 동안의 부인에 단단하게 맞섬으로써 바이든 대통령은 역사의 새 경로를 열었다”고 말했다고 <워싱턴 포스트>는 전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AP 연합뉴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AP 연합뉴스

터키는 강력하게 반발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날 터키의 아르메니아 대주교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학살 사건을 “역사학자들이 다뤄야 할 논쟁”이라며 “제3자가 정치화하거나 터키에 대한 간섭의 도구로 이용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의 성명에 직접 반박해 내놓은 것은 아니지만, 이를 염두에 둔 발언이다.

터키 외무부는 성명을 내고 “미국 대통령의 성명을 강력히 거부하고 비판한다”며 “학문적·법적 근거가 없고 어떤 증거로도 뒷받침되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하다”고 비판했다. 외무부는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미국의 발언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며 “미국 대통령은 특정 정치 세력을 만족시키는 것 외에 아무런 목적도 없는 이 중대한 실수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터키 외무부는 이날 자국 주재 데이비드 새터필드 미국 대사를 불러 항의했다. 긴장이 높아지자 미 정부는 26~27일 터키에 있는 외교공관들의 업무를 중단하기로 했다.

미 정부는 터키와의 갈등 수위를 조절하려는 시도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추모 성명 전날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미리 알린 점이나, 성명에서 “우리는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과거에 일어난 일이 절대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 일을 한다”고 밝힌 점 등이 그것이다. 잘리나 포터 국무부 부대변인도 전날 바이든-에르도안 통화에 대한 언론 브리핑에서 “인권과 법치” 등 공동의 가치와 “오래된 나토 동맹”을 함께 강조했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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