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2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화상으로 열린 기후정상회의에 참석해 연설을 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온건한 얼굴로, 요란 떨지 않고 다양한 일들을 해냈다.’
오는 29일(현지시각)로 취임 100일을 맞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국정수행을 두고 미 언론은 이런 평가를 하고 있다. 취임사에서 미국 내부 통합과 글로벌 리더십 재건을 핵심 과제로 내건 바이든 대통령이 나름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얘기다.
바이든 대통령이 1월20일 취임하고 국내적으로 가장 큰 에너지를 쏟은 것은 코로나19 대응과 경제 회복, 사회 통합이었다. 이 가운데 특히 코로나19와 관련해 바이든 대통령은 마스크 착용 등 방역수칙 준수를 강조하고 백신 공급과 접종에 속도전을 펴며 강력한 리더십을 과시했다.
그는 애초 ‘취임 100일 안에 백신 1억회분 접종’을 목표로 제시했으나, 취임 92일째인 지난 21일 이미 2억회분 접종을 마쳤다고 선언했다. 미국 인구의 최소 40% 이상이 백신을 최소 1회 맞았고, 바이든 대통령 취임 직전 하루 20만명에 이르던 코로나19 확진자는 최근 6만명 이하로 줄었다. 미국인들이 바이든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주는 것도 코로나19 대응이다. <워싱턴 포스트>와 <에이비시>(ABC) 방송이 18~21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4%가 바이든 대통령의 코로나19 대응을 지지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공황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공격적 재정 정책으로 경제 회복에 연료를 붓고 있다. 그는 대부분의 미국 성인에게 1400달러 현금 지급 등을 포함한 1조9000억달러 부양안을 관철한 데 이어, 2조2500억달러 규모의 사회기반시설(인프라) 투자를 추진하고 있다. 28일 첫 상·하원 합동연설에서는 교육·복지 지원 등을 담은 1조8000억달러 규모의 ‘미국 가족 계획’을 추가로 제시할 예정이다. 이같은 확장 재정에 힘입어 미국의 경제 회복 속도는 빨라지고 있다. 지난해 4월 14.8%까지 치솟았던 미국 실업률은 지난 3월 6.0%로 내려왔고, 이달초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미국 경제성장률을 지난 1월 전망치보다 1.3%포인트 올린 6.4%로 예측했다.
이같은 ‘큰 정부’ 시도는 중도성향인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 내 진보진영을 하나로 뭉치게 하고 있다. 민주당 내 대표적 진보 인사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하원의원은 바이든 대통령의 대규모 코로나19 부양안을 언급하면서 “바이든 대통령은 진보진영의 기대를 초과했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2일 주재한 기후정상회의에서 미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2005년 대비 절반 수준으로 줄이겠다는 공격적 목표를 제시하는 등 다양한 진보적 의제들 이행에도 적극적이다. 인종 불평등과 관련해서도 그는 지난해 흑인 조지 플로이드의 목을 무릎으로 짓눌러 숨지게 한 전 경찰관 데릭 쇼빈에 대한 지난 20일 유죄 평결 직후 “미국의 조직적인 인종주의에 맞서야 한다”고 말하며 전임자(도널드 트럼프)와 극명한 대비를 이뤘다. 그는 취임 직후 인종 불평등 해소를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다양한 의제들을 동시에 밀어부치는 것을 두고 <에이피> 통신은 25일 “바이든이 직전 대통령(트럼프)의 거슬리는 요란함이나 그 직전 대통령(버락 오바마) 같은 카리스마 없이 해내고 있다”며 “말은 적게, 행동은 더 많이”라고 표현했다. <엘에이 타임스>는 온건하고 초당적인 바이든 대통령의 ‘엉클 조’ 이미지가 여러가지 진보적 의제들을 당파적 긴장을 낮추면서 해낼 수 있게 하는 비결이라고 꼽았다.
하지만 장애물들도 놓여있다. 미 주요 언론사들이 바이든 대통령 취임 100일을 맞아 실시한 조사에서 그의 지지율은 52%(워싱턴 포스트)~54%(폭스뉴스) 수준이다. <워싱턴 포스트> 조사를 기준으로 볼 때, 이는 취임 첫해 비슷한 시기 조사로 트럼프 전 대통령(42%)보다는 높지만 최근 약 40년 사이 60~70%대를 기록했던 다른 대통령들보다는 낮은 수치다. 그만큼 미국 사회의 분열이 심하다는 의미다. 미 의회 또한 상원은 민주당과 공화당이 50석씩으로 팽팽하게 양분돼 있어, 바이든 대통령이 지속적으로 정책을 밀고 가기에는 한계가 있다. <워싱턴 포스트>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0%가 ‘바이든 대통령이 공화당의 지지를 얻기 위해 정책에서 큰 변화를 줘야 한다’고 답해, 공화당과 협력 필요성에 공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외정책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초점은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를 탈피해 동맹을 복원하고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는 취임 첫날 트럼프가 탈퇴했던 파리기후협약과 세계보건기구(WHO) 복귀 행정명령을 내리며 다자주의로의 귀환을 선언했다. 그는 인권과 민주주의, 법치 등의 ‘가치 외교’를 내걸어 동맹, 우방과 연대·협력을 강화하려 한다.
이같은 전략은 중국 견제로 모아진다.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을 ‘가장 심각한 경쟁 상대’로 규정하고 무역·기술·안보 등 전방위적 분야에서 중국과 겨루고 있다. 인도·일본·오스트레일리아와 함께 하는 4자 협력체인 ‘쿼드’ 또한 중국 견제 연대체로 평가된다. 중국에 대한 강경 노선은 바이든 정부가 트럼프의 기조 가운데 드물게 계승하겠다고 밝힌 분야다.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에 대해, 야권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에 대한 독살 시도와 관련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살인자”라고 부르는 등 트럼프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가 20세기 초 오스만 제국의 아르메니아인 학살을 최근 ‘집단학살’로 인정한 것은 인권 등 가치 외교의 재확인이자 중국·러시아에 대한 간접적 압력으로 볼 수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다만 기후변화나 코로나19 대응에서는 중국·러시아 등 긴장 국가들과도 협력하겠다고 강조한다. 중동에서 그는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을 올해 9월11일까지 완전히 철수하겠다고 밝혀, 20년 지속돼온 미국의 최장기 전쟁의 종식을 예고했다.
한-미 동맹은 바이든 대통령 취임 뒤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타결지어 1년 이상 지속돼온 걸림돌을 치웠다. 그러나 중국·북한 대응을 둘러싼 한국과 미국, 일본의 입장 차이는 한-미 관계에서 긴장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바이든 정부가 검토 마무리 중인 대북정책의 내용에 따라 한반도 정세가 영향받을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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