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각) 취임 뒤 처음으로 연방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뒷쪽은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왼쪽)과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워싱턴/AP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8일(현지시각) 취임 뒤 첫 연방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에서 약 4조달러 규모의 초대형 투자 계획을 설명하고 의회에 처리를 촉구했다. 코로나19 위기 속 ‘큰 정부’ 기조를 강화하고 있다. 그는 대외정책 관련해서는 “동맹과 함께”를 거듭 강조하면서 중국에는 견제구를 던졌다.
“낙수효과는 작동 안 해”…대규모 투자와 부자증세로 ‘큰 정부’
바이든 대통령은 초대형 인프라 투자안과 이를 충당할 ‘부자 증세’ 계획을 내놨다.
그는 보육·교육 분야의 인프라 투자안인 1조8000억달러(1992조원) 규모의 ‘미국 가족계획’을 공개하고 의회에 협조를 요청했다. 이 예산안은 이달초 제시한 2조2500억달러(2490조원) 규모의 도로·다리 등 인프라 투자안인 ‘미국 일자리계획’에 뒤이은 것이다. 두 개의 인프라 투자안을 합치면 4조500억달러 규모다. ‘미국 가족계획’은 3~4살 아동 유치원 무상교육, 커뮤니티 컬리지 2년간 무상교육, 보육 지원, 최대 12주까지 유급 가족·의료 휴가, 아동 세액공제 2025년 말까지 연장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같은 대규모 인프라 투자를 “적자를 늘리지 않고 할 수 있다”며 ‘부자 증세’ 방안을 재원 조달 방안으로 함께 제시했다. 연소득 40만달러 이상인 상위 1%가 적용받는 연방소득세 최고 과세구간 세율을 27%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 취임 당시의 39.6%로 올리는 방안이 들어갔다. 바이든 대통령은 자본이득세 최고세율을 현행 20%에서 39.6%로 인상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그는 “국세청은 세금을 속이는 부자들을 단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국세청 인력확충과 시스템 개선 등에 800억달러를 투입할 예정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중산층은 이미 충분히 세금을 내고 있다”며 “연 40만달러 이하 소득자들에겐 어떤 세금 인상도 부과하지 않을 것이다. 재계와 상위 1% 부자들이 공평한 몫을 내야할 때”라고 말했다. 그는 팬데믹 와중에 미국인 2000만명이 실직한 반면, 억만장자 650명은 1조달러 이상의 순자산 증가를 봤다며 “낙수효과는 결코 작동한 적 없다. 경제를 바닥에서 위로, 중심에서 바깥쪽으로 성장시킬 때가 됐다”고 말했다.
<더 힐>은 4조달러가 넘는 바이든 대통령의 초대형 인프라 투자 계획을 두고 “바이든이 ‘큰 정부’가 돌아왔다는 데에 내기를 걸고 있다”고 짚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이후 미국에서 40여년 지속돼온 ‘작은 정부’ 기조를 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공화당은 대규모 지출은 재정을 악화하고 증세는 투자 감소를 가져올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어, 의회에서 통과되려면 진통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은 두 개의 인프라 투자안에 앞서 지난달 의회를 통과해 집행에 들어간 1조9000억달러 규모의 코로나19 경기부양안인 ‘미국 구조계획’에 힘입어 2억2000만회분의 백신을 접종하고 130만개의 신규 일자리가 생기는 등 성과가 났다고 설명했다. 그는 1월 취임할 때 마주한 주요 위기로 팬데믹(전염병 대유행), 경제 위기, 1월6일 의사당 난입으로 인한 민주주의 공격을 꼽고 “100일이 된 지금, 나는 국민들 앞에 ‘미국이 다시 움직이고 있다’고 보고드릴 수 있다”고 말했다.
“돌아온 미국은 계속 있을 것”…중국 강력 견제
바이든 대통령은 연설 곳곳에서 중국을 겨냥했다. 그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지난 2월 두 시간 동안 통화했다며 “우리는 유럽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하고 있듯이 충돌을 시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막기 위해서 인도·태평양에서 강력한 군대를 유지할 것이라고 시 주석에게 말했다”고 밝혔다. 그는 “시 주석에게 경쟁은 환영하지만 충돌을 추구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는 점도 덧붙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불공적 무역관행과 기술 및 지식재산권 탈취, 인권 탄압 등에 맞서겠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그는 “책임 있는 어떤 미국 대통령도 기본적인 인권이 침해됐을 때 침묵하고 있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연설에서 직접 입에 올리지는 않았으나 신장 위구르나 홍콩 등에서의 인권 문제를 겨눈 것으로 풀이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 미국의 적국들이 의사당 난입사태를 미국 민주주의의 태양이 저무는 증거로 보고 있다며 “하지만 그들은 틀렸다”, “독재자들은 미래를 얻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북한과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미국과 세계의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우리는 두 나라가 제기하는 위협을 외교와 엄격한 억지력을 통해 다루기 위해 우리의 동맹들과 긴밀하게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북 문제에서 동맹과 협력하고 대화·압박을 병행한다는 기본 원칙을 재확인한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혼자가 아니라 동맹과 함께 이끌겠다”는 점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세계 지도자들과 대화에서 가장 자주 듣는 말이 ‘미국이 돌아온 게 보인다. 그런데 언제까지?’라는 것”이라며 “우리는 돌아왔을 뿐 아니라 여기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어떤 나라도 테러리즘, 핵확산, 대규모 이민, 사이버안보, 기후변화, 팬데믹 등 우리 시대 모든 위기를 혼자서 다룰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우리의 (코로나19) 백신 공급이 수요에 맞춰감에 따라, 우리는 2차 세계대전 때 민주주의의 무기고였듯이 다른 나라들을 위한 백신의 무기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다른 나라들과 백신 공유를 늘려가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미국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6000만회분을 다른 나라들에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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