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국제 국제일반

“버마인은 필요할 때만 소수민족 찾아…전쟁, 자선사업 아니다”

등록 2021-05-10 04:59수정 2021-05-10 07:21

버마(미얀마) 쿠데타와 소수민족
외신들 흘려대는 ‘내전설’에 냉소
“60년 넘도록 내전인데 새삼스럽게”
소수민족해방군 ‘반군부-반쿠데타’
느슨한 합의일 뿐 실제 분위기 달라

소수민족해방군 진영 “더 지켜보자”
“아웅산수찌·민아웅흘라잉도 모두
우리한테는 같은 버마 사람들일 뿐”

샨주군이 샨주군 본부 로이따이렝에서 신병훈련을 받고 있다. 사진 정문태 제공
샨주군이 샨주군 본부 로이따이렝에서 신병훈련을 받고 있다. 사진 정문태 제공

※ 지난 2월1일 쿠데타를 일으킨 버마(미얀마) 군부가 시민불복종운동을 유혈 진압해 정치범지원연합(AAPP) 집계 기준 8일 현재 776명이 사망했다. 4월 출범한 임시정부는 소수민족 무장조직과 연대를 통한 반군부 투쟁을 선언했다. 버마-타이 국경 소수민족 진영 움직임을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가 전한다. 그는 1990년부터 타이를 발판 삼아 아프가니스탄·이라크·코소보를 비롯한 40여개 전선을 취재해왔고 최근 <국경일기: 타이·버마·라오스·캄보디아 편>을 펴냈다. -편집자주

화전 연기에 가린 잿빛 하늘, 찌는 더위에 말라붙은 땅, 두려움에 질린 눈동자, 코로나19에 막힌 길목, 버마-타이 국경 사람들은 숨이 넘어간다. 국경을 가르는 모에이강도 살윈강도 샨 산악도 스산한 기운을 뿜는다.

‘탄핀뗏렛맛야데.’ 버마 사람들이 즐겨 쓰는 속담인데, 우리말로 “야자나무에 오르면 더 많은 일거리만 얻는다”쯤 될 법하다. 요즘 버마 소수민족해방군 진영 낌새가 그렇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버마로 쳐들어온 일본 군인한테 야자열매를 따줬지만 대가는커녕 해코지만 당한 데서 비롯된 이 말은 괜스레 나선들 돌아오는 게 없다는 속뜻을 지녔다.

“흥분할 것도 놀랄 것도 없다. 우린 늘 겪어온 일이다. 소수민족 학살 군인정권 60년째다.” 소수민족 까레니 해방투쟁 줏대인 까레니군(KA)의 정치조직 까레니민족진보당(KNPP)을 이끌어온 에이벌 트윗은 “버마 시민이 보여주고, 국제사회가 나설 때 우리도 힘 보탤 수 있다. 버마 연방 바라보며 싸웠지만 버마 사람들이 돌려준 건 박해와 차별뿐이었다”며 섣부른 기대에 선을 긋는다.

달아오르는 버마, 미지근한 국경

지난 2월1일 땃마도(버마군) 최고사령관 민아웅흘라잉이 쿠데타로 정치판을 뒤엎고부터 버마 안팎에서 소수민족해방군을 부쩍 입에 올리지만 정작 국경 분위기는 그 기대와 사뭇 다르다.

“우리는 소수민족무장조직들과 함께 싸우고 함께 버마 연방 만들기로 뜻 모았다.”

쫓겨난 민족민주동맹(NLD)이 내건 연방의회대표위원회(CRPH)가 거듭 날려 온 성명서를 의심하는 까닭이다. 4월 초 소수민족무장조직(EAOs) 대변인 리안 사콩이 “우리는 연방의회대표위원회를 인정하고 전폭 지지한다”고 밝힌 성명서도 의문스럽긴 마찬가지다. 이 소수민족무장조직이란 건 2015년 버마 정부와 전국휴전협정에 서명한 까렌민족해방군(KNLA)을 비롯한 10개 소수민족해방군에다 현재 땃마도와 전쟁 중인 까친독립군(KIA)을 비롯한 9개 소수민족해방군을 모두 아우르는 느슨한 협의체다.

“우린 원칙 수준에서 한 말인데, 해석은 제각각이다.” 샨주군(SSA)의 정치조직 샨주복구회의(RCSS) 외무 책임자 사오욧마웅이나 “달리 우리가 더 말할 건 없다. 함부로 말하기도 힘들고”라는 까친독립군 대변인 나우부 대령이나 저마다 현실과 동떨어진 말잔치에 몸을 사린다. 지금 소수민족해방군 진영은 더 지켜보자는 입장이다. 달아오르는 버마 안팎과 달리 국경은 오히려 식어가는 느낌이고.

미지근한 국경 기운은 4월16일 연방의회대표위원회가 임시정부 꼴인 민족통합정부(NUG)를 띄울 때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날 연방의회대표위원회는 “소수정당, 소수민족 자문기구, 시민불복종운동(CDM), 소수민족무장조직으로 민족통합정부를 구성한다”고 밝혔다. 현재 감금 상태인 대통령 윈민과 국가고문 아웅산수찌를 내세운 이 민족통합정부는 내각 스물여섯 자리에 두와라쉬라(까친민족자문회의 의장)와 여성청년아동부 장관 나우흘라흘라수(까렌 여성운동가)를 비롯한 소수민족 출신 장차관 13명을 끼워 넣었다.

그러나 민족통합정부 출범에 환영사 하나 날린 소수민족무장조직이 없다. 굳이 따지자면 까렌민족해방군 제5여단이 환영사를 보낸 정치, 사회 조직에 이름 올린 게 다다. “그건 제5여단이 독자적으로 날렸다. 까렌민족해방군과 까렌민족연합(KNU) 공식 입장이 아니다.” 까렌민족연합 부의장 끄웨뚜윈의 말은 소수민족무장조직이 민족통합정부에 거리를 두고 있다는 뜻이다.

“60년째 내전인데 새삼스럽게”

4월 들어 국경은 발등에 떨어진 불로 버마 정치판을 걱정할 겨를도 없다. 북부전선은 쿠데타 뒤 더 뜨겁게 달아올랐다. 땃마도가 까친주 남부와 샨주 북부를 낀 까친독립군, 아라깐군(AA), 따앙민족해방군(TNLA) 지역을 무차별 공격하는 가운데, 지난 3월26일 까친독립군 제25연대와 제10연대가 땃마도 최대 전략지인 알로붐 고지를 점령했다. 알로붐 재탈환을 선언한 땃마도는 중국과 국경 맞댄 까친독립군 본부 라이자의 방어선인 마이자양까지 공습하며 긴장감을 높여왔다.

전국휴전협정 서명 그룹이 진 친 남부전선도 이미 전쟁판으로 빨려들었다. 지금 까렌민족연합 해방구는 전역으로 전선이 펼쳐지고 있다. 3월 말 땃마도가 제5여단 본부를 공습해 언저리 마을 주민 3만명이 타이 국경 살윈강 둑으로 쏟아져 나온 데 이어, 4월 중순부터 땃마도는 까렌민족해방군 본부 레이와가 자리 잡은 제7여단 쪽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4월27일엔 까렌민족해방군이 살윈강을 낀 토레따와 에이투따의 땃마도 고지 둘을 점령하며 맞불을 놓았다. 샨주군도 2월 중순부터 흐시빠우를 비롯한 곳곳에서 땃마도와 충돌해왔다. 2월1일 쿠데타 뒤 전국휴전협정 서명 그룹이 휴전 폐기를 선언한 결과가 전선 가열로 드러나는 셈이다.

사실은 이 휴전협정이란 것도 속을 들여다보면 그동안 휴지 쪼가리에 지나지 않았다. 2011년 개별 휴전협정과 2015년 전국휴전협정을 맺은 뒤에도 까렌과 샨과 까레니 전선은 오롯이 멈춘 적이 없었다. 바깥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걸핏하면 휴전협정을 위반한 땃마도와 소수민족해방군이 무력충돌해 왔으니. 하여 국경전선은 요즘 외신들이 흘려대는 ‘내전설’을 비웃는다. 땃마도에 맞설 만한 버마 내부 동력이 없는 현실에서 소수민족무장조직들한테 거는 안팎 기대가 그 내전설의 밑감일 텐데, 국경과 너무 멀리 떨어진 상상력이다. “60년째 내전 상태인 버마에서 새삼스레 내전은 무슨 내전?” 까레니군 사령관 비투는 “목숨 건 전쟁을 누가 부추긴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뭣보다 전쟁이란 건 남 위해 할 수 있는 자선사업이 아니다”라고 딱 잘라 말한다.

한마디로 국경 소수민족무장조직 진영과 버마 쿠데타 정국은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동상이몽에 가깝다. 소수민족무장조직을 버마 정국 해법으로 내세울 수 없는 까닭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버마 사람들은 필요할 때만 소수민족을 찾는다. 1948년 독립 때도, 1988년 민주항쟁 때도, 2015년 총선 때도 늘 그랬다. 지나고 나면 그뿐이었다. 아웅산수찌도 민아웅흘라잉도 우리한테는 다 버마 사람일 뿐이다.” 샨주군 사령관 욧석 장군이 쏟아낸 이 말은 소수민족들 가슴에 박힌 해묵은 배신감이고 불신감이다. 이건 욧석의 별난 독설도 무장조직의 정략도 아니다. 소수민족 사람들이 저마다 입에 달고 살아온 말이다. 소수민족이 대물림해온 버마인을 향한 심리적 반감을 버마 정국에 끼워 맞추기 힘들다는 뜻이다.

게다가 휴전협정이 깨지고 전선이 펼쳐지는 판에 당장 생존 문제가 걸린 소수민족해방군은 버마 정국에 매달릴 만큼 여유로운 형편도 아니다. 무엇보다 55만 대군을 거느린 땃마도에 맞서려면 당장 통일전선이 절박한 실정이다. 해서 요즘 소수민족해방군 진영의 화두는 동맹체다. “이름은 아직 정한 바 없고 논의 단계다”라며 욧석 장군이 밝힌 가칭 연방회의(FC)다. 그러나 이 연방회의가 연방의회대표위원회에 상응하는 소수민족판 정치결사체가 될지 실질적인 군사동맹체가 될지는 아직 또렷지 않다.

다만 연방회의는 전통적으로 동맹체를 이끌어온 까렌민족연합과 까친독립기구(KIO)에다 덩치 큰 샨주복구회의가 줏대 노릇을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소수민족해방군의 상호 불신과 분파주의라는 고질적 전통에다 복잡한 집안 사정들이 겹쳐 제대로 꾸려질지 지레 말하긴 힘들다. 예컨대 까렌민족연합은 이미 까렌민주불교군(DKBA)을 비롯한 네 조직으로 찢어진데다, 현재 일곱개 여단 가운데 남부 제6여단과 서부 제1여단, 제3여단은 거의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형편이다. 까렌은 지도력과 통합력 부재에 시달리며 그동안 쥐고 있던 소수민족해방군 주도권마저 흔들리는 실정이다.

까친독립기구도 사정은 다를 바 없다. 1989년과 1990년 내분 끝에 조직이 갈라진 데 이어 2001년과 2004년에는 쿠데타로 뒤집혔다. 2017년 벌인 내부 권력투쟁 불씨가 여전히 살아 있는 가운데 까친독립군은 따앙민족해방군을 비롯한 4개 소수민족무장조직과 함께 북부동맹(NA-B)을 만들어 땃마도와 전쟁 중이다. 새 동맹체에 매달릴 여력이 많지 않다는 뜻이다. 더구나 옥과 목재를 비롯한 막대한 천연자원에다 무기 공장까지 갖춘 까친독립기구는 남부 쪽 전국휴전협정 서명 그룹과 동맹체를 꾸려야 할 만한 절박함도 그리 크다고 보기 힘들고.

1996년 조직한 샨주군을 발판 삼아 2000년 창설한 샨주복구회의는 넉넉한 돈줄과 무장으로 소수민족해방군 진영에 참여한 젊은 강자인데, 마약왕 쿤사의 몽따이군(MTA) 유산을 물려받은 멍에와 비민주적 체제로 지도력이 의심받아 왔다. “몽따이군 출신인 그쪽은 정치보다 사업에 가깝다. 대의원대회마저 없는 조직을 과연 샨 사람들이 인정할까?” 여긴 소수민족해방군 지도부 사이에 나도는 곱잖은 눈길부터 걷어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이게 머잖아 태어날 동맹체를 아직은 조심스레 바라보는 까닭이다.

사실은 오래전부터 국경전선엔 동맹체가 있었다. 1975년 13개 소수민족무장조직이 결성한 민족민주전선(NDF), 1988년 21개 소수민족무장조직과 민주혁명조직이 함께 만든 버마민주동맹(DAB), 2011년 13개 소수민족무장조직이 참여한 연방연합군(FUA)이다. 국경은 이 동맹체들을 통해 시대적 상황에 맞섰지만 결국은 동맹 사이의 이기심과 불신감을 떨치지 못해 찢어지고 이젠 빛바랜 깃발만 남았다. 새 동맹체에 대한 기대 반 걱정 반은 그 경험 탓이다.

버마 정부군 공격을 받아 버마-타이 국경을 가르는 살윈강 둑으로 피신한 까렌 난민들. ⓒ 까렌정보센터(KIC)
버마 정부군 공격을 받아 버마-타이 국경을 가르는 살윈강 둑으로 피신한 까렌 난민들. ⓒ 까렌정보센터(KIC)

1988년 민주항쟁과 판박이인 2021년

2021년 4월 버마-타이 국경 소수민족해방군은 어디를 향하는지 알 수 없는 길을 정신없이 바쁘게 가고 있다. 다만, 그 길은 버마 안팎이 기대해온 쪽으로 뻗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 어렴풋이 집힌다. 국경은 자기보호본능으로 살아가는 곳이다.

‘반독재 민주화 운동, 쿠데타, 학살 진압, 국제사회의 비난과 제재, 버마 시민 국경으로 피신, 총선 결과 부정, 아웅산수찌 감금, 망명정부 구성, 소수민족해방군 동맹 결성, 그리고 망각과 군인들 세상….’

2021년 버마 정국을 말하는 게 아니다. 1988년 민주항쟁에 이어 2년 사이 버마에서 벌어졌던 일이다. 순서만 좀 바뀌었을 뿐, 1988년은 2021년에 판박이처럼 되살아났다. “버마도 국경 소수민족해방전선도 국제사회도 모두 1988년에서 배워야 한다. 그 역사 속에 모든 실수와 실패가 담겼다. 2021년 버마 정국의 해법도 대안도 모두 잃어버린 1988년의 기억에서 찾아낼 수 있다.” 1988년 민주항쟁 유산인 버마학생민주전선(ABSDF)을 이끌고 소수민족 해방구에 더부살이하며 국경 민주혁명전선을 달려온 의장 탄케 말을 귀담아들어볼 만하다. 뻔히 아는 것들을 잊고 산 까닭이다. 속절없이 흐르는 살윈강 너머로 땅거미가 진다. 33년 전과 다름없는 어둠을 예고하며.

버마-타이 국경 소수민족 해방구에서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필자의 요청으로 외래어 표기법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_______
까레니군 사령관 비투 “서로 생각도 현실도 달라…동맹도 한두번 아니었고”

까레니군 사령관 비투 장군. 사진 정문태
까레니군 사령관 비투 장군. 사진 정문태

―그새 안경 바뀌었네?

“눈이 더 침침해지는 게.”

올해 예순여섯, 전선 나이로 쉰을 채운 그는 30년 가까이 만나왔지만 한결같다. 꾸밈없고 무뚝뚝한 고집불통, 늘 독자적 길을 걸어온 까레니 정치를 빼닮았다. 까레니군은 땃마도와 개별 휴전협정을 맺었지만 11개항 독자 조건을 내걸고 끝내 전국휴전협정에 서명하지 않고 버텨온 유일한 무장조직이다.

―버마 어떻게 보나?

“단기간에 결판날 건 아니고 버마 시민이 한 2~3년 안 지친다면. 이번 봉기 마지막이야. 또 실패하면 다시는 일어설 수 없어.”

―까레니도 그만한 각오나 준비 돼 있다는 건가?

“우린 64년째 싸워왔어. 뭘 더 준비해.”

―이번 쿠데타 미리 내다봤는지?

“쿠데타 3주 전쯤 낌새 채고 1월18일 해방군 지도자 회의 약속 잡았는데 사정이 생겨 우리하고 까렌 둘만 만났어.”

―사정이란 건?

“코로나로 국경 막혔으니.”

―타이 정부가 그 모임 달갑잖게 여긴 탓은 아니고? (해방군은 땃마도에 막혀 타이 영내를 거쳐 교통한다.)

“그런 문제도 있었고. 요즘 국경은 예전 같지 않아.”

전통적으로 타이 정부는 버마 국경을 완충판 삼아 소수민족해방군 뒤를 받쳐왔으나, 2014년 쿠데타로 권력을 쥔 쁘라윳 짠오차 총리가 버마 군부와 밀월관계를 맺고부터 사정이 달라졌다.

―까레니 쪽 전선은 어떤가?

“여긴 아직 고요하다.”

―까레니 해방구로도 버마 시민 넘어오는가?

“한 400명. 공무원, 군인, 경찰 포함해서.”

―그들이 무장투쟁에 뛰어들 것 같나?

“일부는. 300여명이 원해서 25일짜리 기본 군사교육 시켜줬고.”

―까레니군 키울 기회겠구만?

“재원에다 무기에다 쉬운 일 아니다. 스파이인지 누군지 알 수 없는 판에 마구 받을 수도 없고. 지금은 피신처 마련해주고 밥 먹여주는 게 다지.”

―근데 소수민족해방군이 통일전선 꾸릴 가능성 있나? ‘연방회의’ 같은 말이 나오던데.

“우리 에이벌 트윗(의장)이 맨 먼저 제의한 거야. 한데 서로 생각도 현실도 달라서…. 동맹 한두번도 아니었고.”

비투는 소수민족해방군 사이의 해묵은 불신감을 에둘러 드러낸다. 사실은 그이 말을 다 옮기자면 적은 둘이 된다. 하나는 땃마도고 다른 하나는 소수민족 자신들이다. 배반과 증오의 버마 현대사, 소수민족해방군도 그 한 축이었으니. 버마 정국 앞에서 소수민족해방군들은 넘어야 할 산을 만났다. 그 산은 자신들이다. 버마 안팎의 기대를 짊어지고 넘기엔 너무 높은 산이 아닌가 싶고.

_______
끄웨뚜윈 까렌민족연합 부의장 “우린 꿈과 현실 헷갈릴 만큼 여유롭지 않다”

끄웨뚜윈 까렌민족연합 부의장. 사진 정문태
끄웨뚜윈 까렌민족연합 부의장. 사진 정문태

“얼마 만인가? 한 2년 못 본 것 같네.”

비상회의에 지친 끄웨투윈은 푸석한 얼굴로 인사를 건넨다.

―다들 힘들구만. 조니 장군(까렌민족해방군 사령관)은 편찮다더라. 목이 안 좋아 병원 신세 졌다고.

“종양인데 조직검사 결과 기다리지.”

―올해 까렌민족연합 대의원대회도 열어야 할 텐데 큰일이네?

“5년 후딱 지나는군. 6월로 계획은 잡아두었어.”

―까레니 쪽 에이벌 트윗은 올해 물러난다더라. 여기 무뚜새뿌 의장도 아흔 바라보는데, 이제 당신이 이어야지?

끄웨뚜윈은 너털웃음만 짓는다. 해방투쟁 2세대인 80대가 여전히 주름잡는 소수민족해방전선에서 끄웨투윈은 신세대 선두 주자로 꼽힌다. 신세대라 한들 예순여덟이지만, 아무튼. 이래저래 까렌민족연합은 뒤숭숭한 분위기다.

―3월27일부터 사나흘 동안 땃마도가 제5여단 본부 쪽 공습한 건 민아웅흘라잉 최고사령관 쿠데타를 비난한 무뚜새뿌 편지 탓이란 말이 있던데?

“그건 쿠데타와 상관없어. 휴전협정 위반하고 제5여단 침범한 정부군 여덟 날린 데 따른 보복으로 봐.”

―쿠데타 뒤 민아웅흘라잉이 소수민족무장조직한테 보내온 편지 내용은 뭔가?

“별거 없다. 휴전협정 계속 이어나가자는 거지.”

―지금도 땃마도와 선은 달고 있나?

“고위급 대화는 끊겼고, 연락사무소만 서로 열어둔 상태.”

―그럼 연방의회대표위원회와 소통은?

“그쪽도 마찬가지. 실무자 수준.”

―까렌은 연방의회대표위원회 전폭 지지하고 인정하나?

“조건부 인정이지.”

―그 조건은 뭔가?

“자결권과 연방군 창설 담은 연방헌법 아니겠어.”

―이미 3월31일 연방의회대표위원회가 그 둘 담은 연방민주헌법이란 걸 내놨잖아?

“실행이 중요하다는 뜻이야. 여태 말이나 문서야 수없이 많았잖아.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고.”

―버마연방민족연립정부(NCGUB. 군부가 1990년 총선에서 압승한 아웅산수찌의 민족민주동맹한테 정권 이양을 거부하자 민주진영이 창설한 망명정부) 말인가?

“그렇지. 그때도 엄청 떠들었지만 결국 버마 안팎에서 인정도 못 받은 채 흐지부지 끝났잖아. 해서 이번에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그럼 그쪽과 함께할 명분은 뭔가?

“그야 땃마도란 공적을 지녔다는 건데, 진짜 연방제 만들 수 있다면 마땅히 함께 가야지. 그쪽이 우리한테 믿음 줄 수 있느냐에 달렸고.”

끄웨투윈은 “우린 꿈과 현실 헷갈릴 만큼 여유롭지 않다”고 한다. 다른 말로 버마 정국만 쳐다보고 휩쓸릴 수 없다는 뜻이다. 소수민족무장조직에 큰 기대를 걸어온 연방의회대표위원회의 만만찮을 앞날을 예고한 셈이다.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국제 많이 보는 기사

미국, 중국산 흑연 쓴 전기차 2년간 IRA 보조금 지급 1.

미국, 중국산 흑연 쓴 전기차 2년간 IRA 보조금 지급

중국은 왜 바다에 떠다니는 핵발전소를 지으려 할까 2.

중국은 왜 바다에 떠다니는 핵발전소를 지으려 할까

네타냐후 ‘전범 체포영장’ 기류, 교역 중단…더 조여오는 압박 3.

네타냐후 ‘전범 체포영장’ 기류, 교역 중단…더 조여오는 압박

중국 고속도로 붕괴…차량 20대 산비탈 추락, 최소 24명 사망 4.

중국 고속도로 붕괴…차량 20대 산비탈 추락, 최소 24명 사망

10년 지기 ‘반려 악어’ 잃고…‘틱톡’서 도움 청한 할아버지 5.

10년 지기 ‘반려 악어’ 잃고…‘틱톡’서 도움 청한 할아버지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