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현지시각)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시민들이 이스라엘 공습으로 파괴된 알 쇼루크 타워의 잔해를 살펴보고 있다. EPA 연합뉴스
이스라엘에서 유대계와 아랍계 주민들이 폭력 충돌하며, 이스라엘 내부의 ‘민족 분규’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10일 동예루살렘의 알아크사 사원에서 팔레스타인 주민과 이스라엘 경찰이 충돌하면서 시작된 이스라엘군과 하마스(팔레스타인 무장정파)의 무력충돌이 새 국면을 맞으며, ‘가자 전쟁’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은 양쪽 군의 충돌이나, 팔레스타인 지구 내에서 주민들의 인티파다(반이스라엘 저항운동) 형식으로 분출됐다. 이스라엘 내부 도시에서 유대계와 아랍계 주민들 간에 폭동이 벌어지는 건 새로운 사태 전개다.
지난 11일부터 이스라엘 거리에서 주민 충돌이 격화됐다. 텔아비브 남쪽의 교외인 바트얌에서는 수십명의 유대계 극단주의자들이 한 아랍계 주민을 발로 차는 등 구타했다. 이들은 피해자가 땅바닥에 누워서 움직이지 않는데도 구타를 이어갔고, 이 장면을 담은 영상이 이스라엘 텔레비전에 방영됐다.
북부 해안 도시인 아크레에서도 아랍계 군중이 몽둥이와 돌멩이로 한 유대계 주민을 때려 중태에 빠뜨리는 동영상이 공개됐다. 탐라에서도 아랍계 주민들이 한 유대계 주민을 공격해 거의 사망에 이를 정도로 때렸다고 그를 구출한 아랍 의료진이 밝혔다.
주민 간 폭력 사태가 번지던 중부 도시 로드에서는 이스라엘 당국이 봉쇄령을 내렸다. 폭력 사태로 인한 봉쇄령 조처는 수십년 만에 처음이다. 로드에서는 지난 10일과 11일 밤 사이 아랍계 폭동이 일어나 유대교 회당, 학교, 차량이 파괴됐다. 팔레스타인계 주민이 유대계 주민이 쏜 총에 맞아 사망하기도 했다. 이스라엘 경찰은 아랍계 군중들이 유대계 주민들을 집에서 끌어내 죽이려 했다고 주장했다.
아크레에서는 유대계 해산물 식당이 불 탔다. 이스라엘 남부 네게브 사막에서는 베두인계 주민들이 경찰서와 지나가는 차량들을 공격했다. 아랍계 군중은 유대계 소유 호텔을 약탈했다.
아랍계 군중들의 폭동에 맞서, 유대계 주민들도 12일부터 대응을 시작했다. 유대계 주민들이 아랍계 가정에 침입하거나, 아랍계가 운영하는 상점의 유리창을 부수고, 아랍계 운전사를 잡기 위해 거리를 막는 영상이 이스라엘 텔레비전에 방영됐다. 오르 아키바, 티베리아스 등 도시에서도 유대계 주민들은 아랍계 주민들이 탄 차량, 호텔 등에 돌을 던졌다. 차량 방화도 목격됐다.
이스라엘 경찰 발표를 보면, 거리에서 발생한 폭력 충돌로 전국에서 374명 이상이 연행되고, 경찰관 36명이 다쳤다고 영국 <비비시>(BBC)가 전했다.
12일 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폭력 사태가 번지는 도시에서 경찰의 치안 유지를 돕기 위해 군병력을 파견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네타냐후는 비디오 성명에서 최근 거리 폭력 사태가 ‘무정부 상태’에 이르렀다며 “그 어떤 것도 유대인을 공격하는 아랍 군중이나, 아랍계 주민들을 공격하는 유대계 군중들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밝혔다.
<뉴욕 타임스>는 “이스라엘 도시에서 새로운 전선이 열렸다”며 수십년간 지속된 ‘이-팔 분쟁’이 새로운 영역으로 돌진하고 있다는 우려를 전했다. 팔레스타인과의 평화협상 수석대표를 지낸 트지피 리브니 전 외교장관은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이-팔 분쟁’ 해결 실패가 결국 이스라엘 국가 내부의 싸움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것이 바로 현재 벌어지는 일”이라며 “수면 아래에 있던 것이 지금 폭발해 정말로 끔찍한 복합적 사태를 만들어냈다”고 우려했다. 이어 “내전이라는 말을 쓰고 싶지 않다”면서도 “그러나 이것은 새로운 것이고, 견딜 수 없는 것이어서, 정말로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이스라엘에서 양쪽 주민 간 폭력 충돌이 번지는 가운데 이스라엘군과 하마스의 교전도 더욱 격화되고 있다. 이스라엘은 사흘간 공습을 퍼부었던 가자 지구의 접경에 지상군을 배치했고, 하마스도 이스라엘 도시들을 향해 로켓포 발사를 멈추지 않았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텔아비브 인근의 한 빌딩은 하마스가 쏜 로켓포를 맞고 전파돼, 5명이 부상당했다. 하마스의 로켓포 공격으로 이스라엘 남부에서는 비상사태를 알리는 사이렌이 울렸고, 수천명이 방공호로 대피했다.
이스라엘은 이날 공습을 강화해, 가자지구 중심가의 6층 주거건물을 파괴했다.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가자지구에서는 나흘동안 72명이 사망했다. 이스라엘의 공습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이미 피폐해진 가자지구의 의료시설을 마비 상태로 만들고 있다.
하마스의 공격으로 이스라엘에서는 7명이 사망했다고 군 당국이 밝혔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대상으로 “다양한 단계의 지상군 작전”도 준비중이라고 군 대변인이 밝혔다. 지난 2008~2009년과 2014년의 ‘가자 전쟁’ 때처럼 가자지구를 침공하는 지상전이 벌어질 수 있음을 시사하는 발언이다.
박병수 정의길 선임기자
su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