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연설하고 있다. 워싱턴/ AFP 연합뉴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는 노조원이 있는 가구들로부터 43%의 지지를 받았다. 민주당 후보 힐러리 클린턴의 51%에 비해 8%포인트만 뒤졌다. 이는 백인 노동자층이 많은 중부 내륙 접전주에서 트럼프의 우세에 결정적으로 작용해, 대선 승부를 갈랐다. 조시 홀리 공화당 상원의원은 “우리는 이제 노동계급 정당이다. 그것이 미래다”라고 공언했다.
‘노동계급 정당’의 대통령이 된 트럼프는 전국노사관계위원회의 규정을 실질적으로 만드는 책임자인 법무총괄에 반노조 성향으로 유명한 변호사 피터 로브를 임명했다. 그는 외식업체·돌봄업체 등 민간분야 노동자들의 노조 결성을 어렵게 하도록 법령을 고쳤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2020년 대선에서 다시 노조원 가구의 40% 지지를 얻었다.
노조와 정당 관계의 이런 착종 상태는 사회 의제에서 노조와 노동권의 실종을 드러내는 단면이다. 미국의 노조 조직률은 1950년대 노동자의 3분의 2에서, 1983년 23%를 거쳐 2020년 12%로 떨어졌다. 노조 조직률 12%는 전년인 2019년에 비해 2%포인트 늘어난 것인데, 코로나19로 실업자가 늘면서 비율상 노조 조직률이 높아진 것뿐이다.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의 보수혁명 이후 미국에서 노조와 노동권은 주인이 사라진 ‘장물’이 됐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그 주인을 다시 찾는 작업에 돌입했다. 취임 첫날 피터 로브를 전격적으로 해임하는 조처를 시작으로 전후 미 대통령 중 가장 친노조적인 행보를 시작했다. 노동장관에 노조운동을 했던 마틴 월시 전 보스턴 시장을 지명했다. 노동장관에 노조운동가가 임명된 것은 1960년대 존 케네디 행정부 이후 처음이다. 바이든 정부는 취임 첫날 발동한 행정명령 등으로 노조와 노동권 강화를 위한 야심적인 계획을 내놓고 있다.
첫째, 지난 3월9일 하원을 통과한 ‘(노동)조직권보호(PRO)법’ 등 노동 관련법 개정을 통해 노동자의 단체교섭권 및 노조결성을 방해하는 경영주에 대한 처벌을 강화할 방침이다.
둘째, 아마존이나 우버 등 거대 첨단 플랫폼 기업 배달노동자의 노동자성 인정이다. 이들 기업에 의해 독립 사업자로 취급받는 이들을 노동자로 인정해, 최저임금 등 법적 보호를 받게 할 예정이다. 실질적인 고용 노동자를 독립 계약자로 분류해 임금과 세금을 탈루하는 모든 기업을 대상으로 적용된다.
셋째, 일용직이나 임시직 처우를 받는 하청 노동자 보호다. 실질적으로 노동조건과 고용을 통제하는 원청 회사를 ‘공동 고용주’로 정의해, 하청 노동자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지운다.
넷째, 연방 최저임금 인상이다. 2009년 이후 시간당 7.25달러에 머문 최저임금을 점진적으로 15달러까지 인상한다. 캘리포니아 등 많은 주들은 이미 15달러 최저임금을 시행하고 있다. 바이든 정부는 더 나아가 최저임금을 중간소득에 연계하는 방안도 지지하고 있다.
이 사안들은 한국에서도 핵심적인 노동 현안이다. 바이든 정부는 이 밖에 작업장 안전 대책이나, 노조비 징수를 용이하게 하는 방안 등 친노동자 정책들도 추진하고 있다.
미국 최대 노조인 미국노동연맹-산별노조협의회 의장 리처드 트럼카는 지난 2월 노조 지도자들과 함께 바이든 대통령을 면담한 뒤 “그가 꿰뚫고 있다”고 <뉴욕 타임스>에 전했다. “그런 모임에 갈 때마다, 왜 단체교섭이 중요한지 등 기본부터 시작해 그 목적이 뭔지를 말해야 했지만, 그들은 알아먹지 못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런 것이 필요 없었다. 그는 이미 그 문제를 파고들고 있어서, 우리는 해결책만 얘기했다.”
지난 3월 초 미국 노동계 최대 현안은 앨라배마 베서머의 아마존 집하물류센터 노동자들의 노조 결성 시도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를 지지하는 동영상을 발표하고, “노조를 조직하는 권리는 미국 전역의 건강한 노동력에 필수”라고 말했다. 빌 클린턴 행정부 때 노동장관을 지낸 진보적인 노동경제학자 로버트 라이시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해리 트루먼 이후 어떤 대통령도 노조를 지지하는 강력한 성명을 낸 적이 없다”며 “바이든은 단순히 노동자가 노조를 조직할 권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을 말한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가 전국노동관계법이 고용주들에게 부과하는 일련의 책임들을 거론하는데, 이는 정말로 새로운 지적”이라고 덧붙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실제로 취임 이후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빈번히 친노조 발언을 내놓는 한편, 대책 마련을 지시하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4월30일 ‘바이든은 뉴딜 이후 가장 친노조적인 대통령처럼 말한다’라는 기사를 통해, 그가 취임 99일 동안 친노조 발언을 62차례나 했다고 분석했다. 버락 오바마는 임기 내내 89회, 도널드 트럼프는 58회, 조지 W. 부시는 33회였다.
그는 임기 첫날 노조가 있는(유노조) 일자리 창출을 행정부의 최고 우선순위 중 하나로 설정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코로나19 구호, 사회간접자본 및 산업경쟁력 강화, 가족 계획 분야 총 6조달러 규모의 세 차례 대형 지출안의 세부 항목에도 유노조 일자리 창출이 들어갔다. 4월26일에는 노조 조직률 제고를 위한 태스크포스팀 구성도 발표했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팀장으로 하고, 노동·재무·국방 장관 등 주요 각료들이 참가하는 이 태스크포스는 의회의 승인을 거치지 않더라도 연방정부의 권한만으로 노조 조직원 확대를 위한 각종 방안을 강구한다.
바이든 정부가 노조와 노동권 강화를 국정의 우선순위로 강력히 추진하는 배경은 복합적이다.
첫째, ‘일자리 없는 성장’ 추세로 악화돼온 소득양극화에 대한 대처다.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의 보수혁명 이후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임금 인상과 노조 강화가 일자리를 줄인다’는 거시경제 교리가 고착됐다. 하지만 이런 거시경제 교리는 ‘성장은 이뤄지나, 일자리는 늘어나지 않는’ 현실로 귀착됐다. ‘일자리 없는 성장’이 1984~2007년 대안정기 동안에 벌어진 현상이었다.
미국 노동통계청의 자료를 보면, 2000년부터 2019년까지 임금 인상률은 7.49%였던 반면에, 주거비가 24.92%, 대학교육비 58.21%, 의료비는 61.08% 인상됐다. 저학력 중하류층들의 일자리 상태는 악화됐다. 1990년대 고교 졸업 남성의 취업률은 73%였는데, 2001년에는 70% 이하로 떨어졌고, 2008년 금융위기를 겪고서는 65% 이하로 내려갔다. 코로나19 위기 앞에서는 55%까지 추락했다.
둘째, 심각한 사회 갈등과 분열의 동력이 중하류층들의 소외와 불만에서 기인한다는 판단이다. 양질의 일자리에서 소외된 중하류층들이 도널드 트럼프의 주요 지지층이 됐다. ‘세계화와 자유무역협정으로 미국 내 산업이 파괴되고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트럼프의 반세계화 포퓰리즘에 공감한 것이다.
반면, 진보·자유주의 진영은 대중들의 사회·경제적 지위 향상보다는 인종·젠더 등 소수 및 약자 집단에만 주력하는 정체성 정치에 치중했다는 평가다. 이는 보수적인 중하류층들의 문화적 반발을 초래했고, 결국 트럼프 지지층으로 돌아서게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바이든 행정부는 그 어느 역대 정부보다도 소수인종 및 여성을 각료로 많이 임명했으나, 인종·젠더·총기·이민 문제 등에 대해서는 두드러지지 않게 대응하고 있다. 반면, 노동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한다. 바이든 정부는 출범 직후 총기 안전, 성소수자 권리, 이민, 투표권 확대 등 미국의 평등과 공정, 안정을 향한 12개 법안에 우선순위를 둔다고 밝혔다. 그중에서도, 미국의 사회 지형 개조를 위해 노조 결성을 쉽게 하고 노동권을 강화하는 조직권보호법과 최저임금 인상법에 가장 역점을 두고 있다. 그 결과가 지난 3월 조직권보호법의 하원 통과다.
바이든 정부는 노조를 통한 일자리 안정으로 중산층을 회복하겠다고 명확히 밝히고 있다. 바이든은 지난 2월4일 트위터를 통해 “모든 미국인은 노조를 조직하고 단체교섭을 할 권리에서 나오는 존엄과 존경을 받아야 한다. 우리 정부의 정책은 노조 조직화를 장려하는 것이고, 사용자들은 노동자들에게 노조에 가입할 자유롭고 공정한 선택권을 가질 수 있도록 보장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1조9천억달러 규모의 ‘미국 일자리 계획’에서 “우리의 사회기반시설과 경쟁력을 강화하고, 좋은 임금을 받는 미래의 유노조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투자하는 것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정부는 기후변화 등에 대처하는 미래 산업과 양질의 일자리를 연계하고 있다. 그는 1월27일 기후변화 대응 행정명령에서 “현대적이고 지속가능한 사회기반시설들을 건설하고, 공평하고 깨끗한 에너지 미래를 만드는 좋은 임금의 유노조 일자리를 창출할 기회”를 기후변화 대처에서 찾자고 제안했다. 취임 100일을 맞은 상·하원 합동연설에서도 “기후변화 대응이 유노조 일자리를 만들고, 유노조 일자리가 중산층 재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바이든 정부의 야심찬 계획이 넘어야 할 현실의 벽은 여전히 높다. 대표적으로 하원을 통과한 조직권보호법이 상원을 통과할지 의문이다. 결사항전 태세를 보이는 공화당의 반대를 넘으려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무력화할 60표가 필요하다. 하지만 민주당은 의장인 해리스 부통령을 포함해, 51석에 불과하고 민주당 내에서도 보수 성향 의원들은 반대한다. 15달러 최저임금 인상도 마찬가지다.
바이든 정부는 이 법들이 상원의 벽을 넘지 못하면, 차기 중간선거에서 선거공약으로 내걸고 정면승부를 하겠다는 전략이다. 또 15달러 최저임금은 연방정부 업무에 적용하는 한편 연방정부의 사업을 수행하는 회사들에도 강제하는 조처를 발동했다.
상황은 좋은 편이다. 갤럽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인의 65%는 노조 조직화에 대한 전반적인 지지를 보였다. 이는 17년 만에 최고치다. 금융위기로 인한 2009년 대경기침체 때는 48%에 불과했다. 비영리단체인 전국고용법프로젝트의 조사를 보면, 노스캐롤라이나, 펜실베이니아, 조지아 등 내년 중간선거 격전지 선거구에서 유권자의 3분의 2가 최저임금 인상을 지지했다. 지난 대선 때 바이든을 지지한 유권자의 82%, 대학교육을 안 받은 백인의 63%가 지지했다. 저학력 백인층은 트럼프의 주요 지지층이다.
바이든 정부가 추구하는 큰 정부, 확대 재정, 증세 정책에서 노동과 노동권 강화는 그 상징이다. 민주당과 진보·자유주의 진영이 소수 및 약자에 주력하는 정체성 정치에서 벗어나 대중 전반을 포괄하는 사회경제적 의제로 노선을 전환한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조직권보호법이야말로 민권법이다. 단체협약을 하면 모두가 같은 임금을 받는다. 남녀, 흑인과 백인 사이에 차이가 없다. 성소수자(LGBTQ), 여성에 대한 보호도 있다. 법만으로는 그들을 항시 보호할 수 없다. 그들의 단체협약이 그들을 보호한다.” 트럼카 미국노동연맹-산별노조협의회 의장이 조직권보호법 하원 통과 뒤 한 말이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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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획은 배규식 전 한국노동연구원 원장의 자문과 자료제공 도움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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