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16일(현지시각) 연쇄 총격사건이 벌어진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마사지 업소 앞에 경찰들이 서 있다. 애틀랜타/AP 연합뉴스
미국에서 아시아계에 대한 혐오와 폭력이 심각하다는 언론 보도가 잇따르지만, 실제로 당국에 인종 등을 이유로 한 ‘증오범죄’로 신고되거나 처벌로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체감보다 적다. 미 연방정부와 대부분의 주가 증오범죄를 다루는 법을 갖고 있으면서도 이를 쓰려 하질 않는다는 평가마저 나온다. 지난 3월 조지아주에서 아시아계 여성 6명을 포함해 8명의 목숨을 앗아간 총격범 로버트 에런 롱(22)에 대해 검찰이 지난 11일(현지시각) 증오범죄를 적용하겠다고 밝히자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안도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피해자들이 현실에서 겪는 증오범죄와 당국의 공식 처리 사이의 간극을 보여주는 정확한 통계는 없다. 하지만 몇가지 자료로 유추해볼 수는 있다. 미 법무부의 법무통계국 자료를 보면, 2013~2017년 설문조사에서 인종, 민족, 종교, 성별 또는 성적 정체성 등을 이유로 증오범죄 피해를 입었다는 응답 건수는 연평균 20만4600건에 이르렀다. 이 가운데 피해자들이 경찰에 증오범죄라고 신고한 건수는 절반 이하인 10만1900건, 경찰이 증오범죄라고 확인한 것은 이 중에서 다시 약 15%인 1만5200건에 그쳤다. 이와는 별도의 자료지만, 경찰이 연방수사국(FBI)에 증오범죄라고 보고한 건수는 가장 최신 자료인 2019년의 경우 미 전역에서 7314건뿐이다. 최근 아시아계에 대한 폭행 사건 보도가 자주 나오는 뉴욕시의 경우, 2020년 한해 동안 증오범죄 신고 265건 가운데 체포로 이어진 것은 35%인 93건뿐이다. 아시아계 혐오 철폐 운동을 벌이는 단체 ‘아시아·태평양계 혐오를 멈춰라’(Stop AAPI Hate)가 지난해 3월부터 올해 3월까지 1년 동안 신고받은 아시아계 증오 폭력 건수만 6603건이라는 점을 봐도, 실제 체감과 사법체계의 괴리를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우선, 모든 언어·물리적 증오 행위가 당국에 신고되지 않는다. 여기에도 영어 소통능력이 부족하거나, 신고·진술 등의 절차를 번거롭다고 여기거나, 가해자로부터의 보복이 두렵거나, 그저 일을 키우고 싶지 않다는 등 다양한 이유가 있다. 공권력에 대한 불신도 한 요인이다. 인권단체인 반명예훼손연맹(ADL)의 스티브 프리먼 부회장은 유색인종, 이민자들과 법집행관 사이의 뿌리 깊은 신뢰 부족 때문에 경찰에 전화하기를 조심스러워하는 경향이 있다고 <워싱턴 포스트>에 말했다.
증오범죄로 신고되더라도, 경찰과 검찰이 사건을 증오범죄로 다루는 데 소극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경찰에 증오범죄에 특화된 조직이 없고, 이와 관련한 교육도 부족하다. 특히 증오범죄 입증의 장벽이 높다. 인종이나, 국적, 성별, 종교 등에 따른 증오가 범행동기라는 점을 밝히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지난 2월 뉴욕의 차이나타운에서 중국계 남성이 예멘 출신 20대 남성으로부터 갑자기 등 뒤에서 칼에 찔렸지만 가해자는 증오범죄가 아닌 살인미수로 기소됐다. 인종 혐오와 관련된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증오범죄 증거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지난달 텍사스주의 한 미용용품점에서 “빌어먹을 중국인”이라며 한인 여성 업주를 폭행한 20대 흑인 여성은 증오범죄로 기소됐다. 조지아주 애틀랜타 일대에서 한인 여성 4명 등을 총기난사로 살해한 롱을 두고 경찰이 초기에 ‘성 중독’을 언급하면서 증오범죄에 선을 그은 이유도 명확한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범행을 저지르면서 “나는 네가 ○○라서 싫다”고 표현하거나, 소셜미디어나 특정 집단에 명확한 증거를 남기는 경우는 드물다. 이 때문에 수사기관 안에는 살인이나 폭행 등 기본 혐의에다 굳이 입증하기 힘든 증오범죄 혐의까지 일거리로 추가하기 꺼리는 분위기가 있다고 한다.
뿌리 깊은 인종차별적 문화를 갖고 있으면서도 구조적 인종주의의 존재를 부정하려는 풍토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에이비시>(ABC) 방송의 분석가이자 변호사인 서니 호스틴은 “사람들은 인종주의 자체보다도 인종주의자라고 불리는 것을 더 걱정한다”며 “누군가 ‘증오범죄’라고 말하면 판사들은 가끔 인종주의적 반감 말고 다른 데서 이유를 찾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사실, 아시아계 증오범죄를 응당하게 처리하는 것보다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증오를 없애는 일이다. 아시아계에 대한 미국의 ‘황색 공포’는 1882년 중국계의 미국 입국을 금지한 중국인배제법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역사가 깊다. 최근의 아시아계에 대한 폭력 증가를 코로나19를 “중국 바이러스”, “쿵 플루”라고 조롱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는 얘기다.
보스턴대학교 반인종주의연구소의 레이철 리 매니저는 <한겨레>에 “트럼프는 사람들에게 인종주의자가 되어 아시아계를 공격할 수 있는 반가운 허가증을 준 것일 뿐, 지금 벌어지는 일들은 새로운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 정책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면서도, “미 정부 안에 있는 인종주의자들이 정권 교체와 함께 사라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수십년 된 반아시아계 인종주의를 조 바이든 정부가 마법처럼 없애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트럼프 때에 이어 바이든 들어서 심화하는 미-중 경쟁은 미국 내에 아시아계 혐오 분위기를 지속시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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