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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거리 투사였던 버마 신세대, 소수민족해방구로 몰려든다

등록 2021-06-14 04:59수정 2021-06-14 15:38

[버마-타이 국경 소수민족해방구 르포-상]
민족통합정부 국방장관 첫 인터뷰

군부 맞서 무장투쟁 선포
그동안 ‘비폭력 평화운동’ 펼쳐온
“아웅산수찌 시대는 끝났다” 평가
각 정당들 ‘민족통합정부’ 띄우고
시위대 중심 ‘민중방위대’ 만들어
미얀마 민족통합정부(NUG)가 공개한 민중방위대(PDF·People’s Defence Force)의 훈련 모습. 민족통합정부 제공
미얀마 민족통합정부(NUG)가 공개한 민중방위대(PDF·People’s Defence Force)의 훈련 모습. 민족통합정부 제공

버마 -타이 국경 , 까렌민족해방군 (KNLA) 제 7여단을 끼고 흐르는 모에이강 둑에 앉아 버마 사람들이 입에 달고 살아온 “킨야스웨묘 , 마인야힌까웅 ”을 떠올린다 . “사람을 깊이 생각하면 가장 맛난 먹을거리를 나눌 수 있다 .” 찾아온 벗들한테 마음을 다해 저녁을 대접하는 버마 문화의 자부심이기도 .

쿠데타 넉달이 지난 6월 들머리 , 숱한 버마인이 소수민족 까렌 해방구로 넘어오고 있다 . 마침내 이 땅에는 1988년 민주항쟁에서 태어나 33년째 국경 무장혁명전선을 달려온 버마학생민주전선 (ABSDF)과 2021년 도시 무장투쟁을 꿈꾸는 민족통합정부 (NUG)가 뒤섞였다 . 그러나 까렌 사람들은 아직 저녁거리를 장만하지 못한 채 그 벗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

국경 해방구에 감도는 의문을 좇아 버마학생민주전선 의장 탄케를 만난 데 이어 , 지하로 숨어든 민족통합정부 국방장관 이이몬을 찾아냈다 . 시간과 장소를 세번씩이나 바꾼 끝에 이이몬이 민족통합정부 지도부 가운데 처음으로 기자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

“피로 진 빚 피로 갚는 굳센 아들, 싸우는 공작
몸 바쳐 나아가는 거룩한 동지들, 싸우는 공작
더러운 역사를 씻어내는 새 손들, 싸우는 공작
계급 없고 차별 없는 오직 한 몸, 싸우는 공작”

하나가 부르면 이내 열이 되고 백이 되는 전선 노래야말로 혼이고 정신이고 삶이고 투쟁이었다. 버마학생민주전선(ABSDF) 제601연대 루보(타웅지대학 출신)가 지은 이 노래는 포성 속에서 태어난 <싸우는 공작>이다.

1988년 민주항쟁 뒤 군부의 학살 진압에 쫓겨 타이, 중국, 인디아 국경으로 빠져나온 학생들이 까렌민족해방군(KNLA) 꼬무라기지에서 버마학생민주전선 깃발을 올렸으니, 어느덧 33년이 흘렀다. 그날 겁에 질린 핼쑥한 얼굴로 낯선 국경 땅을 밟은 학생들은 소수민족해방군으로부터 목숨 건 시험을 당한 뒤에야 비로소 총을 얻었다. 그로부터 버마학생민주전선은 어엿한 버마민주동맹(DAB) 일원으로 소수민족해방군과 함께 반독재 무장투쟁 전선을 갔다. 그렇게 버마학생민주전선은 국경 산악 민주혁명전선에 꽃다운 청춘을 바쳤고, 1천 웃도는 이들이 산화했다. 그사이 버마학생민주전선은 세계 게릴라전사에 학생군 이름 아래 최장기 투쟁과 최대 희생 기록을 새겼다.

그러나 버마 현대사는 이 학생군을 눈여겨본 적 없다. “나는 그 학생들한테 국경으로 가라고 한 적도 없고, 총을 들라고 한 적도 없다. 무장투쟁은 내 비폭력 평화 노선과 어울리지도 않는다.” 1995년 가택연금에서 풀려난 아웅산수찌가 첫날 나와 단독 인터뷰 자리에서 모질게 쏘아붙였듯이.

속절없는 세월이 흘러 2021년 6월, 여전히 뜨거운 땡볕이 버마-타이 국경 소수민족 해방구를 쪼아댄다. 이 땅에는 33년 전 그날처럼 다시 숱한 젊은이들이 몰려든다. 미장이, 땜장이, 약장수, 고기잡이, 백수, 교사, 학생, 가수, 의사, 군인, 경찰, 공무원…. 저마다 업은 달라도 지난 2월 쿠데타를 거부하는 마음은 하나다. 오롯이 되풀이되는 역사의 현장을 아스라한 눈으로 바라본다. 버마 현대사는 또 얼마나 많은 젊은이를 잡아먹을지!

“우린 학살 진압과 체포령에 쫓겨 국경으로 빠져나왔다. 애초 무장투쟁을 생각했던 건 아니다. 무장투쟁은 국경 생존을 위한 최후의 선택이었다.” 33년 전을 되돌아보는 버마학생민주전선 의장 탄케는 신세대 후배들을 맞느라 정신이 없다. “우린 도망쳐 온 게 아니다. 국경 소수민족 해방구에서 군사훈련 받고 도시로 되돌아가 싸울 것이다.” 두어달 전 버마학생민주전선 진영으로 넘어온 랭군 출신 우틴(연예기획사 직원)은 말투부터 헌걸차다.

1988년과 2021년을 가르는 이정표가 나온 셈이다. 그땐 ‘탈출’이었고 지금은 ‘출발’이다. 그 종착역이 어디가 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르지만.

다만, 33년 간극에 새긴 세대 차이만큼은 또렷하다. “우리 세대는 태어나면서부터 군인한테 짓밟혀 두려움을 안고 살았다면, 신세대는 2011년부터 그나마 준민주정부 아래 자유를 경험했다.” 한달 전 소수민족 해방구로 빠져나온 88세대 지도자 소툰은 두 세대의 본질적 차이를 몸이 반응하는 두려움으로 짚었다. “겁에 질렸던 우리는 시위 때 도망치기 바빴지 무장은 상상도 못했다. 신세대는 말 그대로 겁 없는 전사들이다. 수제 무기까지 들고나와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게릴라식 시위를 벌였다. 컴퓨터 게임이나 영화에서 본 가상현실을 거리낌 없이 도심에 펼쳐냈다.” 소툰 말마따나 민주화를 향한 열망이야 하나지만 그사이 표현법은 크게 달라졌다. 그 거리의 투사들이 진짜 전사를 꿈꾸며 오늘 소수민족 해방구로 몰려들고 있다.

겁없는 신세대 전사들
“우리는 도망온 것이 아니다
훈련받고 도시로 가 싸울 것”
33년 전 ‘버마학생민주전선’처럼
소수민족해방구서 전사 꿈 키워

1994년 살윈강 전선을 가는 버마학생민주전선 학생군.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1994년 살윈강 전선을 가는 버마학생민주전선 학생군.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이제 정치가 답할 때다. 2월1일 쿠데타로 쫓겨난 정당들이 연방의회대표위원회(CRPH)를 만들어 반군부 깃발을 올린 데 이어 4월16일 지하에서 민족통합정부(NUG)를 띄웠다. 그리고 지하정부는 거리의 투사들을 밑천 삼아 5월5일 민중방위대(PDF)를 창설했다. 군부에 맞서 무장투쟁을 선포했다는 뜻이다. 그동안 비폭력 평화를 신줏단지처럼 떠받든 아웅산수찌가 이끌어온 민족민주동맹(NLD)이 민족통합정부 줏대고 보면 정치적 노선에 엇박자가 났다. 그러나 여전히 아웅산수찌를 앞세운 지하정부는 이 중대한 대목을 건너뛰며 국경과 불협화음을 예고했다. 비폭력 평화와 무장투쟁이라는 두 극단적 노선을 한 몸에 지니고는 전쟁 중인 국경과 함께 갈 수 없는 까닭이다. 본디 그런 헷갈리는 정치적 노선이란 건 존재하지도 않고.

버마 안팎 민주진영에서조차 “이젠 아웅산수찌의 시대도 끝났다”는 말이 나돈다. 이건 지도력에 한계를 드러낸 아웅산수찌에 대한 실망감이기도 하지만, 달리 유효기간이 끝난 비폭력 평화를 가리킨다. 애초 간디를 본뜬 아웅산수찌의 비폭력 평화가 내전 중인 버마 정국에 어울리지 않는다며 적잖은 이들이 부정해왔지만, 어쨌든.

현실을 보자. 당장 민족통합정부는 아웅산수찌가 부정했던 버마학생민주전선한테 손 벌리며 스스로 모순을 드러냈다. 버마학생민주전선이 국경에서 유일한 버마인 중심 무장 민주혁명 조직인데다, 소수민족무장조직들(EAOs)이 그동안 함께 싸운 버마학생민주전선을 유일한 버마인 동지로 여겨온 사실을 이제야 깨닫고 그 쓰임새에 눈뜬 까닭이다. 이 소수민족무장조직이란 건 2015년 버마 정부와 전국휴전협정(NCA)에 서명한 까렌민족해방군을 비롯한 10개 소수민족해방군(버마학생민주전선 포함)과 현재 전쟁 중인 까친독립군(KIA) 같은 9개 소수민족해방군을 모두 아우르는 느슨한 협의체다.

“지금은 적전분열로 비칠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니다. 우린 조건 없이 민족통합정부 지원한다.” 버마학생민주전선 의장 탄케의 말이 해묵은 분을 삭인 끝에 나온 순정이란 사실을 지하정부가 눈치챘는지는 알 수 없다.

민족통합정부가 대수롭잖게 넘겨온 정치적 노선과 입장을 또렷이 다듬고 밝혀야 할 까닭은 무엇보다 자신들 운명이 달린 국경 소수민족무장조직들과 거래를 위해서다. 독자적 해방구도 없는 이 지하정부가 현실적으로 기댈 구석은 국경뿐이다. 근데 1948년 버마 독립 때부터 소수민족 해방을 외치며 싸워온 국경은 도시 정치인들 생각처럼 호락호락하지 않다. 해방투쟁이라는 자존심을 먹고 산 국경 소수민족무장조직은 저마다 지하정부를 “아기”라 부르는 프로페셔널들이다.

“지하정부의 정치적 입장이 흐릿해 민중방위대도 아직 뭐가 될지 알 수 없다. 우리가 지원하더라도 먼저 협정이 필요하다. 군사조직이나 무장투쟁을 말로만 때울 수 있는 게 아니다.” 소수민족 까레니 해방투쟁을 이끌어온 까레니민족진보당(KNPP) 의장 에이벌 트윗 말을 귀담아들어볼 만하다. 민중방위대 지원에 협정서를 달 만큼 깐깐한 정치를 해온 게 국경이다.

“지하정부도 민중방위대도 더 따져봐야 한다. 게다가 우리 까렌 헌법이 까렌 해방구에서 제3세력의 군사활동 금지를 못박아 민중방위대 지원도 쉬운 일이 아니다. 대의원대회 결정도 지켜봐야 하고.” 까렌민족연합(KNU) 부의장 끄웨뚜윈 말처럼 국경 해방구에는 저마다 다른 국경 헌법이 있다. 더구나 까렌은 민주제도가 작동하는 곳이라 지도부가 맘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민족통합정부가 정교한 정치 없이 ‘반군부’ 동의 하나로 어물쩍 넘어갈 수 없다는 뜻이다. 지하정부는 “소수민족무장조직들 지원 약속을 받았고 함께 연방을 향해 간다”고 거듭 밝혔지만 정작 국경 쪽 분위기가 여태 싸늘한 까닭이다. 그동안 지하정부가 비밀스레 선을 달고 공들여온 상대는 까렌민족해방군, 까레니군(KA), 까친독립군(KIA), 친민족군(CNA), 샨주남부군(SSA-S)을 꼽을 만한데 아직 어느 진영도 민중방위군 지원을 공개적으로 밝힌 적 없다.

국경뿐 아니라 버마 안쪽 민주진영에서도 지하정부가 덜컥 던져놓은 민중방위대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보는 이들이 적잖다. “소수민족무장조직들의 확고한 지원 약속도 못 끌어낸 상태에서 제대로 준비도 없이 너무 나간 게 아닌가 싶다. 시민 지원이 절실한 민족통합정부가 마치 선거운동 하듯 민중방위대를 내건 느낌이다.” 88세대 골수 운동가 소툰이 무장투쟁에 의문을 달았듯이.

실제로 민중방위대는 민족통합정부가 체계적으로 준비해온 군사조직이 아니다. 시위대가 사제 무기로 진압군에 맞서자 달아오른 민족통합정부가 지역 공동체 무장시위대를 하나로 묶겠다는 발상에서 비롯되었다. 말하자면 이 지하정부가 무장시위대에 떠밀려 민중방위대를 띄운 꼴이다. 그사이 국경 소수민족 해방구로 빠져나온 젊은이들과 일부 공동체 무장시위대가 민중방위대 참여 뜻을 밝혔을 뿐, 아직 지하정부의 또렷한 계획이나 전략은 드러난 게 없다.

“누굴 위해 싸울 것인가? 우리 어머니와 아이들, 아니면 독재자….” 1992년 버마전선 최대 격전지였던 ‘잠자는 개’(Sleeping Dog) 고지를 쩌렁쩌렁 울린 버마연방민족연립정부(NCGUB) 총리 세인윈의 전선 독려용 녹음 메시지를 기억한다. 버마연방민족연립정부가 한 일은 거기까지였다. 전선을 향해 메시만 날렸을 뿐, 어떤 도움도 준 적 없고 아무 책임도 진 적 없다. 그리고 사라져버렸다. 그 버마연방민족연립정부는 1990년 총선에서 승리한 아웅산수찌의 민족민주동맹이 정부 이양을 거부하는 군부에 맞서 창설한 망명정부였다. 2021년판 민족통합정부의 전신인 셈이다. 민족통합정부가 내놓은 민중방위대를 아직은 의심스레 바라보는 까닭이다.

33년 전 국경전선으로 내몬 젊은이들을 아직도 전장에 남겨둔 채, 이제 흉포하기로 소문난 35만 중무장 버마 정규군과 도시전선에서 싸우겠다고 한다. 전투 경험은 고사하고 군사훈련마저 제대로 못 받은 민중방위대의 희생은 불 보듯 뻔하다. 혹독한 훈련을 거쳐 중무장한 버마학생민주전선 전사들마저 막대한 희생을 치렀다. 지하로 들어간 민족통합정부는 여태 유령일 뿐인데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지하정부는 한마디 말도 없다. 자생적 시민 무장조직과 정부의 군사조직은 같을 수 없다. 

정치가 답을 할 때다
통합정부쪽 “연방 건설” 밝혔지만
소수민족무장조직은 아직도 ‘의심’
“무장투쟁은 말로만 하는 게 아냐
우리가 지원하더라도 협정 필요”
버마중심-소수민족간 불신 넘어야

버마(미얀마) 민족통합정부(NUG)가 공개한 민중방위대(PDF)의 교육 모습. 민족통합정부 제공
버마(미얀마) 민족통합정부(NUG)가 공개한 민중방위대(PDF)의 교육 모습. 민족통합정부 제공

굳이 따지자면 민족통합정부가 그 책임과 보상을 염두에 두고 “버마연방 창설에 민중방위대를 연방군의 바탕으로 삼겠다”고 밝힌 게 아닌가 싶다. 근데 이 대목이 또 본질적 문제에 휘말렸다. “민중방위대, 총만 들면 군대인가? 정치는 아무 말이나 해도 되지만 군사는 그러면 안 된다. 수십년째 싸워온 소수민족무장조직만 해도 스무개가 넘는다. 민족통합정부가 말로는 연방을 외치지만 심장엔 버마중심주의 피가 흐른다는 뜻이다. 버마 사람들은 필요하면 손 벌리고 지나면 그뿐이다.” 까렌민족연합 부의장 끄웨뚜윈의 헛웃음 속엔 소수민족해방군 진영에 흘러내린 해묵은 대버마 불신감이 배어 있다. 이 불신감을 걷어내지 않고는 지하정부의 무장투쟁이 공염불에 그칠 수밖에 없다. 소수민족 문제라는 사회적 기본모순을 안고 온 버마 현대사가 그 증거다.

국경 소수민족 해방구에는 2012년 정국과 판박이처럼 빼닮았던 1988년이 아직도 고스란히 뻗어 내린다. “1988년의 실패와 실수에서 배워야 한다. 2021년 정국 해법도 1988년에 고스란히 담겼다.” 탄케의 말은 곧 국경 소수민족 해방구 사람들의 믿음이기도 하다. 그 ‘1988년’은 버마 정치가 소수민족과 함께 가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공식적으로 135개 소수민족이 인구의 40%를 웃도는 버마에서 오직 길은 그 하나뿐이다. 오늘, 33년 전 기억을 좇아 소수민족 해방구를 돌아보는 까닭이다.

버마-타이 국경 소수민족 해방구/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의 요청으로 외래어 표기법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지난 5월26일(현지시각) 버마-타이 국경 소수민족 해방구에서 이이몬 버마 민족통합정부 국방장관.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지난 5월26일(현지시각) 버마-타이 국경 소수민족 해방구에서 이이몬 버마 민족통합정부 국방장관.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민중방위대 3천명…1만5천명으로 키울 계획”
[이이몬 민족통합정부 국방장관 첫 대면 인터뷰]

지난 5월26일(현지시각) 버마-타이 국경 소수민족 해방구에서 이이몬 버마 민족통합정부 국방장관.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파웅도우 보리수 둥지를 떠난 뻐꾸기가
타삐애차웅 윗물에 다시 나타났다
일곱 산맥을 질러, 일곱 강을 건넌 끝에

놈은 아침마다 내 머리맡에서 노래한다
노래 속에 삶이 있다
노래하는 새들한테 국경은 없다”

2월1일 쿠데타 뒤, 넉달째 도피 중인 민족통합정부(NUG) 지도부를 통틀어 국방장관 이이몬이 처음 기자 앞에 모습을 드러내며 닷새 전 지은 시 ‘국경은 없다’로 처지를 갈음한다. 필명 마웅띤팃(Maung Tin Thit)으로 더 잘 알려진 시인 이이몬은 뻐꾸기처럼 먼 길을 날아왔다. 만달레이의대 학생으로 1988년 민주항쟁을 이끌었던 그이는 21년형을 받고 감옥살이하다 7년 만인 2005년 풀려난 뒤 문예지 <빠다욱쁘윈팃>을 창간해 시인으로 내공을 다지는 한편, 환경투쟁가로 현장을 누비다 민족민주동맹(NLD)을 통해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이어 이이몬은 2015년 총선 때 군인 7천과 경찰 2천이 도사린 수도 네피도에서 국방장관 출신 군부 후보 와이르윈을 꺾고 하원의원이 되었다. ‘시인과 군인의 결투’로 큰 상징성을 얻은 그이는 2020년 총선에서 다시 승전보를 올렸으나, 이젠 군인들한테 쫓기는 신세다.

이이몬이 경계심을 풀고 말문을 열기까지는 주거니 받거니 제법 많은 담배를 죽였다. “군사 경험도 없고 개헌특위에서 일한 당신이 국방장관이다. 몬민족해방군(MNLA) 출신 제1차관 아잉까웅유앗 대령도 도시게릴라전 경험이 없고, 제2차관 킨마마묘는 평화·안보 연구자다. 지하정부 안에 군대를 이끌 만한 인물이 없는데, 당장 민중방위대(PDF) 사령관은 누가?” “우린 이런 상황 대비해 오래전부터 준비해왔다. 사령관은 아직 밝힐 수 없고.” 이이몬은 끝내 입을 안 열지만, 현재 까렌민족해방군 제7여단 출신 한 장군 이름이 지하에서 오르내린다. 다만, 상위 정치조직인 까렌민족연합이 정치적 부담을 안고 받아들일지는 의문이다.

“민중방위대 병력 수는?” “지금 3천인데, 앞으로 1만5천으로 키울 계획.” “편제는?” “아직 마을 공동체 단위이지만, 버마 전역을 중부와 동서남북 5개 사단으로.” “재원은?” “재외 버마인들 도움 받아 군사훈련 비용 정도는 이미 마련했다.” “무기는?” “소수민족해방군과 상의 중이다.” “까렌이나 까레니 쪽은 쉽지 않을 것 같고, 민족통합정부 부통령 드와라쉬라가 까친 출신인데다 지금 그쪽에 피신 중이라 까친독립군(KIA) 지원은 끌어낼 수 있을 듯한데?” “우리도 그렇게 보고 있다. 다른 몇몇 진영과도 잘 풀릴 것 같고.” “까친독립군이 한동안 멈췄던 무기공장을 다시 돌릴 것 같다는 말도 나돈다. 민중방위군과 관계 있겠지?” 이이몬은 가타부타 말없이 고개만 끄덕인다.

“민중방위대가 기댈 곳은 소수민족해방군이고, 소수민족해방군은 국제사회 분위기에 따라 움직일 것 같다. 결국 정부 간 협상이 고갱이일 텐데?” “그동안 버마 민주화운동 지지해온 체코 정부가 맨 먼저 민족통합정부 인정할 것 같고, 며칠 전 터키 정부도 긍정적인 답을 보내왔다. 곧 좋은 소식 있을 듯.” “군사 문제는 어디와?” “영국과 미국 대사관 통해.” “민족통합정부가 지하에서는 무장투쟁도 외교도 힘들다. 국방장관과 외무장관 둘쯤은 지상으로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잖아도 내부에서 고민 중이다.” “아무튼, 오늘 용기 내줘서 고맙다.”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다운타만 학생군 기지에서 탄케 버마학생민주전선(ABSDF) 의장. 정문태 분쟁지역 전문기자
다운타만 학생군 기지에서 탄케 버마학생민주전선(ABSDF) 의장. 정문태 분쟁지역 전문기자

“신세대한테 국경 무장투쟁 안 물려준다…길은 도시 투쟁뿐”
[탄케 버마학생민주전선 의장 인터뷰]

다운타만 학생군 기지에서 탄케 버마학생민주전선(ABSDF) 의장. 정문태 분쟁지역 전문기자 “다 우리 탓이다. 우리 88세대가 제대로 못 싸워 젊은이들을 다시 길바닥으로 내몰았다. 참 미안하고…,” 감성적인 이 반군 지도자는 끝내 목이 메어 말끝을 흐린다. 예나 이제나 탄케는 눈물이 잦다. 흔히들 한이라고 하지만, 내가 봐온 전선 눈물은 투쟁 동력이었다. 동티모르 독립투쟁을 이끈 샤나나 구스망도, 아프가니스탄의 전설적인 대소항쟁 지도자 아흐맛 샤 마수드도 툭하면 눈물이 고였다. 어쩌면 혁명전선은 예민한 감성을 지닌 이들 몫인지도 모르겠다.

“소설은 나왔나?” “표지 디자인까지 마쳤는데, 출판사가 지하로 들어가는 바람에 아직.” “제목은?” “<소설 속 일기, 일기 속 소설>로.” “자전적?” “응.”

무장투쟁과 소설, 탄케는 얼핏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두 종목을 지독하게 쫓아왔다. 본디 탄케는 버마 전역 고등학교를 통틀어 1등부터 480등까지 날고 긴다는 아이들이 자동으로 가는 랭군과 만달레이 두 의과대학 가운데 만달레이 출신이다. 그이는 1988년 민주항쟁 끝에 한 학기를 남기고 국경 혁명전선에 뛰어들었다. “애초 나는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1988년에 멈춰버린 쉰여섯 먹은 이 ‘아이’의 꿈이 이뤄지는가 싶더니 2월1일 쿠데타로 물 건너갔다.

“그나저나 민족통합정부의 민중방위대(PDF)와 버마학생민주전선 관계는?” “우린 소수민족해방군과 같이 가야 하니 두 쪽 다 보고 있는 중이지. 직접 개입하기는 힘들고.” “군사 경험 없는 민족통합정부가 자네들과 머리 맞댔을 게 뻔한데?” “조직 차원은 아니고, 개인적으로 좀 돕는 정도.” “속살 꺼내 봐라. 자네가 배후 노릇 하는구먼?” “그런 건 아니고.” 탄케는 손사래 치지만, 소수민족해방군과 서먹서먹한 민족통합정부가 기댈 구석은 달리 없다. 더구나 민족통합정부 국방장관 이이몬이 탄케의 만달레이의과대학 1년 후배이기도. 여기까지.

“민중방위대 돕고는 있나?” “넘어온 이들 피난처 마련해주고 기초 군사훈련쯤.” “무기야 상상도 못할 테고?” “우리도 얻어 쓰는 판에. 총값도 너무 뛰었고.” 실제로 100달러쯤 하던 AK나 M16 중고 소총이 요즘 1500달러까지 치솟았다. 버마 쪽 수요를 눈치챈 탓이다.

“맘과 달리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탄케는 길게 한숨을 뿜는다. 독자적 해방구 없이 소수민족해방군에 더부살이해온 버마학생민주전선 현실이 숨 막히는 듯. 게다가 2015년 전국휴전협정에 서명한 뒤 까렌민족해방군 쪽에 자리잡은 학생군 본부는 휴전상태인데, 전쟁 중인 까친독립군 쪽에 진 친 북부 학생군 400여명은 여전히 전선을 갈 수밖에 없는 기형적 현실도 탄케한테는 큰 골칫거리다. “신세대한테는 이 거친 국경 무장투쟁을 절대 안 물려준다. 길은 도시 투쟁뿐이다. 33년 동안 뼈저리게 느꼈다.” 탄케 얼굴에 쓸쓸함이 묻어난다. “이게 마지막이다. 또 쓰러지면 다시는 못 일어난다. 나도 시민도 모두 마지막을 준비할 때다. 88년 실패도 여기서 끝내야 하고.”

버마 역사는 탄케를 호락호락 놔주지 않을 듯. 탄케의 소설이 더 깊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는 1990년부터 타이를 발판 삼아 아프가니스탄·이라크·코소보를 비롯한 40여개 전선을 취재해왔고 최근 <국경일기: 타이·버마·라오스·캄보디아 편>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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