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한 지도자들이 회의 개막일인 11일(현지시각) 영국 콘월의 카비스베이 호텔 해변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부터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샤를 미셸 유럽평의회 의장,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콘월/AP 연합뉴스
주요 7개국(G7) 정상들이 13일(현지시각) 영국 콘월에서 정상회의를 폐막하며 채택한 공동성명에서 전례 없이 강도 높은 중국 비판을 쏟아냈다. 중국과 전략적 경쟁을 벌이고 있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요구가 상당 부분 반영된 것이다. 참가국들 사이에 중국 위협론에 대한 온도차는 여전하지만, 미-중 패권 경쟁 구도가 체계화하면서 전세계로 확산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주요 7개국 정상들은 공동성명에서 중국을 인권, 영토, 코로나19 등 다방면에 걸쳐 정면으로 비판했다. 정상들은 “중국에 신장(자치구)의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를 존중할 것과 홍콩 반환협정과 홍콩 기본법이 보장하는 홍콩의 권리와 자유, 고도의 자치를 지키라고 촉구함으로써 우리의 가치를 증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남중국해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일방적인 행위를 강력하게 반대한다”고 밝혔다. 정상들은 또한 중국의 “비시장 정책”을 지적하고, 코로나19의 기원에 대한 재조사도 촉구했다. 중국이 민감하게 여기는 주제들을 망라한 것으로, 주요7개국 공동성명에 ‘중국’을 적시하지도 않았던 최근 몇년과 비교해 엄청난 변화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존 커튼 토론토대 G7연구그룹 국장을 인용해 이번 공동성명이 “1989년 중국 천안문(톈안먼 민주화 운동 유혈진압) 사태 이후 주요 7개국 정상들이 중국에 대해 한 가장 날카로운 발언이자, 1975년 이 정상회의가 시작된 이래 가장 포괄적으로 비판적인 발언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짚었다.
미국·영국·독일·프랑스·캐나다·이탈리아·일본 등 7개국 정상들은 또 중국의 육상·해상 실크로드 구상인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맞서는 글로벌 인프라 투자 계획인 ‘더 나은 세계 재건’(B3W) 구상도 출범시키기로 했다. 10억회분 이상의 코로나19 백신을 저소득국가에 기부하기로 한 것 또한 중국의 백신 외교에 대항하는 성격을 띄고 있다.
중국에 대한 이같은 강도 높은 표현은 바이든 대통령의 요구에 따른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뒤 첫 대면 다자회의인 이번 회의를 통해 전임자인 도널드 트럼프 시절 망가졌던 동맹을 복원하고 ‘미국의 귀환’을 알리면서 중국·러시아 포위망을 강화하려 했다. 그는 이번 회의를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가장 깊이 있는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함께 미국이 세계를 이끄는 일에 다시 돌아왔다. 미국이 테이블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지난 12일 바이든 대통령과 회담 뒤 기자들에게 “클럽에 소속돼있고 협력할 의지가 많은 미국 대통령이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반겼다.
바이든 대통령은 동맹 규합의 지향점을 중국 견제로 명확히 했다. 바이든 정부는 트럼프 시절의 대부분의 정책을 뒤집고 있지만 대중 강경 기조는 계승해 오히려 안보, 경제, 기술, 가치의 문제로 확장시키고 있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은 ‘민주주의 대 독재’의 경쟁 관점에서 중국·러시아와의 대결을 인식하고 있다. 그는 코로나19 등 전세계적 위기 해결에 민주주의가 독재 국가보다 더 유능하다는 점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해왔다. 그는 13일 기자회견에서도 “빠르게 변화하는 21세기에 민주주의가 중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독재자들, 독재정부들과 경쟁할 수 있느냐의 대결을 하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차 영국을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각) 영국 콘월 카비스베이 양자회담장 앞에서 참가국 정상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남아공 시릴 라마포사 대통령,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영국 보리스 존슨 총리, 문재인 대통령, 미국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두번째 줄 왼쪽부터 일본 스가 요시히데 총리,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 캐나다 쥐스탱 트뤼도 총리, 호주 스콧 모리슨 총리. 세번째 줄 왼쪽부터 UN 안토니우 구테흐스 사무총장,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이탈리아 마리오 드라기 총리,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콘월/연합뉴스
이같은 인식 아래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공동성명에 중국에 대해 더 강경한 표현을 담기를 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중국과 경제 관계가 상대적으로 강한 독일과 이탈리아 등은 지나치게 세게 나가는 것을 주저했다고 <워싱턴 포스트>는 전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전날 오전 중국 관련 논의를 마친 뒤 신장, 홍콩 관련 중국의 인권 문제를 비판한다면서도 “우리는 또한 기후, 생물다양성, 자유무역 등 많은 사안들에서 (중국과) 협력적 유대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공동성명은 전반적으로 중국에 날카로우면서도 이같은 온도차를 반영한다. 신장·홍콩에서의 인권 문제 대목에는 ‘중국’을 적시했지만, 글로벌 공급망에서의 강제노역에 반대한다는 내용을 담은 문단에서는 중국을 명시하지 않은 채 “모든 형태의 강제노역 사용을 우려한다”고 포괄적으로 처리했다. <뉴욕 타임스>는 이 점에 더해, △중국의 전력생산에 석탄 사용을 중단할 시간표를 정하지 않은 점 △‘더 나은 세계 재건’ 구상에 얼마씩 지원할 것인지 정하지 않은 점 등을 들어 “주요 7개국 정상들이 (대중국) 연합전선을 내놨지만 균열이 명확하다”고 지적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공동성명에 만족하느냐’, ‘더 강하길 원했느냐’는 두 질문에 모두 “그렇다”고 대답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출장 기자단과 브리핑에서 비슷한 질문에 “그들은 (중국의) 도전의 깊이에 대해 다른 수준의 확신을 갖고 있다”고 인정하고, “오늘 우리가 앉은 자리가 얘기의 끝이 아니라 앞으로 그 위에 쌓아갈 좋은 플랫폼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수년간 터프한 경쟁이 될 것을 향해 동맹과 동반자들을 결집할 준비가 돼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과의 장기전을 위해 동맹들과 협력의 저변을 꾸준히 넓혀가겠다는 얘기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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