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이 16일(현지시각)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18세기 고택인 ‘빌라 라 그랑주’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하기 앞서 악수하고 있다. 제네바/타스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각) 제3국인 스위스 제네바에서 첫 대면 정상회담을 했다. 두 정상은 러시아의 미 대선 개입과 연방기관 등에 대한 사이버 해킹 의혹, 러시아의 인권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 탄압 등 인권 문제 등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핵 군축 문제와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 분쟁 등도 다뤄진 것으로 전해진다.
정상회담에 상습 지각하는 것으로 유명한 푸틴은 이번에는 지각하지 않았다. 푸틴은 미-러 정상회담장인 제네바의 18세기 고택인 ‘빌라 라 그랑주’에 회담 예정 시간인 이날 오후 1시35분(한국시각 저녁 8시35분)이 되기 전인 1시4분 도착했고, 바이든은 푸틴보다 15분 뒤에 도착했다. 미·러 양쪽이 사전 조율한 대로, 바이든이 먼저 도착해 기다리는 일이 벌어지지 않은 것이다. 두 정상은 각각 기 파르믈랭 스위스 대통령의 환대를 받았고, 악수를 나눈 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회담은 두 대통령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만 참석하는 소인수회담에 이어, 양쪽에서 4명씩 추가로 투입되는 확대회담 순서로 진행됐다. 매우 어색한 분위기로 시작했다. 언론에 사진 촬영이 잠시 허용된 소인수회담에서 두 정상은 다정한 환담 없이 딱딱한 표정을 유지했다. 푸틴은 “미-러 관계에는 최고위급 회담을 요구하는 많은 사안들이 쌓여있다”며 “우리의 회담이 생산적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얼굴을 마주보며 만나는 것이 항상 더 좋다”며 양국 지도자가 협력과 상호 관심 분야를 결정하는 데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미 당국자는 회담 뒤 푸틴이 먼저 기자회견을 하고, 그 뒤 바이든이 따로 기자회견을 할 예정이라고 설명해왔다. 이와 관련해 <액시오스>는 바이든이 유럽으로 출발하기 전 미-러 정상회담에 관해 전문가 그룹의 조언을 들었는데, 전문가들은 공동 기자회견을 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고 14일 보도한 바 있다.
이번 정상회담은 바이든이 먼저 제안해 이뤄졌다. 바이든은 푸틴을 ‘살인자’로 부르고, 미 대선 개입이나 사이버 공격의 배후로 러시아를 지목하며 제재를 부과하는 등 인권, 사이버 안보 등의 영역에서 러시아에 강공을 취해왔다. 그러면서도 “러시아와 갈등이 아니라 예측 가능성과 안정성을 원한다”며 관계 정상화도 함께 요구해왔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미·러 양쪽은 이번 회담에 대한 기대치가 높지 않다고 밝혀왔다. 미 당국자는 회담에 앞서 기자들에게 “우리는 이번 회담에서 큰 결과물을 기대하지 않는다”며 “세가지 기본적인 것들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 국익 증진과 더 안전한 세계를 위한 협력 △러시아가 대항할 경우 상응 조처를 부를 미국의 핵심 이익 분야 △미국의 가치와 국가 우선순위에 대한 바이든의 비전 설명을 꼽았다. 미국의 이익을 침해하는 영역에서 푸틴에게 경고하고 일정한 협력을 모색하는 정도가 바이든의 초점이라는 것이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도 16일 기자들에게 “회담이 역사적인 것이 될 수는 없다”며 “하지만 두 대통령이 만나서 공개적으로 문제에 관해 얘기를 시작하기로 한 사실 자체가 성과”라고 말했다.
♣️H6s워싱턴/황준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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