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량 학살에도 유엔 등 방관만
유엔은 1995년 자체 조사로 작성한 ‘스레브레니차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스니아에서 수천명의 이슬람계 주민들이 세르비아계 민병대에 의해 학살되는 것을 막지 못한 것을 자성하고 같은 실책을 다시 저지르지 않겠다고 유엔은 이 보고서에서 다짐했다. 하지만 수단의 참상에서 보듯, 이 약속은 공허한 메아리로 흩어져 버렸다.
인류의 비극에 뒷짐만 지는 국제사회의 모습은 매우 낯익은 광경이다.
1994년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후투와 투치족의 갈등으로 100일 동안 무려 80만명이 학살된 대참상에서도 유엔과 강대국은 방관자였다. 다수 부족 후투족(85%)에 의한 소수파 투치족(14%) 학살이 자행됐을 당시, 이 나라엔 유엔평화유지군 2500명이 주둔하고 있었다. 하지만 반군과 정부군의 평화협정 이행 감시를 위해 주둔한 평화유지군은 종족간의 잔인한 살육을 막을 능력이 없었다.
유엔은 투치족 20만명이 학살당하는 등 대재앙이 본격화될 무렵인 1994년 4월, “감시 활동이 무의미하다”며 270명을 제외한 전 병력을 철수시켰다. 이후 양 부족간의 보복이 지속되면서 50만명의 학살자가 추가로 발생했다. ‘세계의 인권 경찰’을 자처해온 미국은 개입을 극력 회피했다. 미국은 르완다 학살을 종족 근절을 위한 학살(제노사이드)로 인정하는 것 마저 거부했다.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은 최근 르완다를 방문해 당시 르완다 사태를 수수방관한 것에 대해 사죄했다. 미국과 국제사회의 소극적인 태도로 1994년 6월 르완다에는 프랑스 병력 2500명만이 사태 수습을 위해 파병됐다.
1992년 3월 옛 유고연방에 대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독립 선언으로 촉발된 보스니아 내전에서도 유엔은 사태 해결자의 모습을 보여 주지 못했다. 유엔은 같은 해 4월 세르비아계와 이슬람계의 충돌이 유혈내전으로 치닫고 있는데도 직접적인 군사행동을 취하지 못했다. 내전이 본격화된 뒤인 1992년 8월에야 3만명의 평화유지군 파견을 결정했다. 하지만 이들의 구실도 미미했다. 평화유지군에 의해 안전지대로 보호받던 이슬람계 거주지역 스레브레니차에 1995년 7월 세르비아계 민병대가 치고 들어와 단 5일 동안 8천명의 이슬람계 남자를 대량 학살한 것이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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