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바회의 합의 강조점 달라…북 소식통은 “서로 같은 얘기”
지난 1~2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진행된 제2차 북-미 관계정상화 실무그룹회의 논의 결과를 놓고, 북-미 양쪽에서 얼핏 보기에 서로 다른 얘기가 나오고 있다.
톰 케이시 국무부 부대변인은 4일(현지시각)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키로 한 시점이나 방법이 정해지지 않았다”며 “미국의 법률적 기준이 충족되고 북한 비핵화가 더 추진되어야 가능한 일”이라고 밝혔다. 6자회담 미국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도 전날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 문제는 북한의 비핵화에 달려 있다”며 여지를 뒀다.
앞서 3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제네바 북-미 협의에서 “연내에 우리의 현존 핵시설을 무력화(불능화)하기 위한 실무적 대책을 토의하고 합의했다”며 “미국은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우리나라(북)를 삭제하고 적성국교역법에 따르는 제재를 전면 해제하는 것과 같은 정치경제적 보상조처를 하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북한은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 등 관계정상화 쪽을, 미국은 올해 안 불능화 등 비핵화 수순을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이와 관련해 뉴욕의 북한 고위 소식통은 4일(현지시각) “서로 자기쪽의 입장을 얘기한 것이지만, 서로 같은 얘기를 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의 평가는 신고·불능화에 대해 테러지원국·적성국교역법 해제 문제가 동시행동 또는 ‘행동 대 행동’으로 맞물려 진행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이해된다.
워싱턴의 한 외교소식통은 “북한 외무성 대변인의 발언은 미국이 요구한 연말까지 불능화·전면신고에 대해 조건을 못박은 것으로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조지아대학의 박한식 교수도 “문제는 북한이 아니라 부시 행정부가 상응 조처들을 취할 정치적 의지가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지적했다.
케이시 부대변인이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와 관련해 ‘법률적 기준’을 언급했지만, 2·13합의 이후 이 문제를 검토해 온 조지 부시 행정부는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치적 보상인 테러지원국 해제는 행정부 재량 사항이다. 부시 행정부가 제재 해제를 비핵화의 진전에 달렸다고 거듭 밝히는 이유는 의회의 양해와 여론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납치문제를 중시하는 일본한테 ‘명분’을 줘야 한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류재훈 특파원 hooni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