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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일본

‘엔저 공포’에 몸살 앓는 일본…45년간 10엔 국민과자도 손 들었다

등록 2022-04-20 14:55수정 2022-04-21 02:46

20일 엔·달러 환율 129엔대
14거래일 연속 내림세
기업·가계는 부담 늘어 고통 호소
해결책 마땅하지 않아
도쿄 한 증권사 전광판 모습. 20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이 129엔대로 2002년 5월 이후 20년 만에 엔화 가치가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도쿄/AFP 연합뉴스
도쿄 한 증권사 전광판 모습. 20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이 129엔대로 2002년 5월 이후 20년 만에 엔화 가치가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도쿄/AFP 연합뉴스
엔화 가치가 또 하락했다. 20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1달러에 129엔대를 기록해 2002년 4월 이후 20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최근 14거래일 연속 내림세로 속도도 빠르다. 일본의 심리적 마지노선이었던 ‘구로다 라인’(달러당 125엔)도 진작 무너진 상태다. 일본은 ‘엔저 공포’에 몸살을 앓고 있다.

일본의 대표적 ‘엔저론자’인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지난 18일 중의원 결산 행정 감시위원회에서 현재 상황에 해대 “큰 엔저와 급속한 엔저로 인해 (일본 경제가 받는) 마이너스 (효과)가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스즈키 슌이치 일본 재무상도 같은 날 “지금의 엔저가 어느 쪽이냐고 한다면 ‘나쁜 엔저’”라고 강조했다. 재무성과 일본은행 수장이 엔화 약세가 일본 경제에 좋지 못한 것이라며 견제하는 등 구두 개입에 나섰지만, ‘약발’이 먹히지 않고 있다.

급속한 엔저로 인해 기업과 가계에선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엔저가 수출을 늘려 일본 경제 전반에 긍정적 영향을 주던 기존의 경로는 제조업의 해외공장 이전 등으로 효과가 크게 줄었다. 이날 발표된 3월 무역수지는 마이너스 4124억엔(약 4조원)으로 8개월 연속 적자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반면 2년 넘게 계속되는 코로나19 펜데믹, 우크라이나 전쟁 등에 엔저까지 겹치며 원자재 등 수입 물가가 치솟아 기업의 부담은 커졌다.

일본의 3월 기업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9.5% 상승해 석유 위기 여파가 있던 1980년 12월(10.4%)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보였다. 포장재·물류비용 등 744개 품목 중 70% 가량인 526개의 가격이 올랐다. 유니클로를 운영하는 패스트리테일링 야나이 다다시 회장은 14일 결산 발표 자리에서 “일본은 전 세계에서 원자재를 매입하고 가공해 부가가치를 매겨 파는 업무를 하고 있다”며 “엔저는 일본 전체로 보면 단점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가계에 직접 영향을 주는 식품 등을 중심으로 소비자물가도 오르고 있다. 조사업체 ‘데이코쿠 데이터뱅크’ 자료를 보면, 이달 14일 기준으로 105곳의 기업이 라면·식용유·음료 등 4081개 품목에 대한 가격을 올린 것으로 집계됐다. 45년 동안 10엔을 유지했던 일본의 국민 과자 ‘우마이봉’도 이달부터 12엔으로 가격을 인상했다. 임금 인상이 더딘 속에서 물가가 오르고 있어, 소비 위축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문제는 엔저를 해결할 방안이 마땅하지 않다는 점이다. 미국은 인플레이션에 맞서 계속 금리를 올릴 예정이지만, 일본은 ‘제로금리’ 수준을 유지할 방침이다. 일본 경제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는 가운데 미국과 일본의 금리 차가 확대되면 엔화 가치 하락을 막을 수 없다. 일본의 한 은행 관계자는 <니혼게이자이신문>에 “환율을 위해 금리를 인상한다고 해도 미국 수준에 맞추지 않으면 효과가 거의 없을 것”이라며 “오히려 금리를 올리면 국가 재정에 상당한 타격만 준 채 엔저가 멈추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나라 빚’이 많은 일본 정부의 국채 잔액은 지난해 말 기준 1천조엔(약 9600조원)을 넘어, 금리가 오르면 원리금 상환 부담이 커지게 된다. 엔저가 계속될 경우 일본 정부가 ‘극약 처방’의 하나로 24년 만에 ‘엔 매수·달러 매도’ 개입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재임 기간 중 ‘아베노믹스’라는 대대적 양적완화 정책을 펼쳤던 아베 신조 전 총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크다. 우에노 쓰요시 닛세이기초연구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도쿄신문> 인터뷰에서 “엔화 약세는 아베노믹스의 부작용”이라며 “일본은행은 임금 인상을 수반하는 물가 상승을 목표로 강력한 금융완화 정책을 해왔지만 ‘낙수 효과’가 일어나지 않은 채, 완화 정책을 질질 끌 수 밖에 없게 됐다”고 비판했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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