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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일본

[현장] “모두가 힘들었지만, 내게 남은 생도 우토로서 살겠다”

등록 2022-05-01 13:44수정 2022-05-02 02:30

‘우토로 평화기념관’ 개관식
주민들·재일동포·한-일 시민 등 150여명 참석
“아픔과 차별 넘어 새로운 만남의 장소가 되길”
4월30일 오전 10시 일본 교토부 우지시 우토로에서 ‘우토로 평화기념관’ 개관식이 열렸다. 1980년대 중반까지 우토로에서 주거지로 사용되던 판잣집 ‘함바’도 해체해 기념관 옆(사진 오른쪽 건물)으로 옮겨왔다. 교토/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
4월30일 오전 10시 일본 교토부 우지시 우토로에서 ‘우토로 평화기념관’ 개관식이 열렸다. 1980년대 중반까지 우토로에서 주거지로 사용되던 판잣집 ‘함바’도 해체해 기념관 옆(사진 오른쪽 건물)으로 옮겨왔다. 교토/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30일 오전 10시 일본 교토부 우지시 우토로 51번지. 재일동포 집단거주지 우토로 마을에 아리랑이 울려 퍼졌다. 전날 폭우가 지나가 날이 맑게 갠 이날 주민들과 재일동포, 한-일 시민들, 정부 관계자 등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우토로 평화기념관’ 개관식이 열렸다. 기념관의 건립·운영 비용은 한국 정부 지원과 한-일 시민들의 모금을 통해 마련됐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참석한 우토로 주민 한금봉(83) 할머니는 “기쁘고 고맙다”며 “남은 생도 여기서 계속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오사카에 살다가 우토로에 왔고 여기서 결혼도 했다. 그가 우토로 아카이브에 쓴 글에는 “학교에 가면 ‘조선인은 싫어’라는 말만 들었다. 겨울 추위와 가난은 견딜 수 없이 힘들었고, 비가 오면 여기저기 침수로 야단이었다. 우토로의 사람들은 모두 이렇게 살아 왔다”고 적혀 있다.

재일동포 3세로 기념관 건립 운동 등에 나선 인권단체 ‘코리아 엔지오센터’ 곽진웅 대표도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곽 대표는 “한-일 시민들이 힘을 합쳐 이겨낸 역사가 우토로”라며 “우리가 미래를 생각하면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경험을 배울 수 있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30일 오전 10시 일본 교토에서 우토로 주민들과 재일동포, 한-일 시민들, 정부 관계자 등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우토로 평화기념관’ 개관식이 열렸다. 교토/김소연 특파원
30일 오전 10시 일본 교토에서 우토로 주민들과 재일동포, 한-일 시민들, 정부 관계자 등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우토로 평화기념관’ 개관식이 열렸다. 교토/김소연 특파원

지상 3층, 연면적 461㎡ 규모의 기념관에는 일본의 식민지배와 전쟁, 재일동포 차별, 삶을 지켜내기 위한 우토로의 투쟁, 한-일 시민들의 연대 등 사라질 뻔한 80년 동안의 치열한 역사가 고스란히 담겼다. 왜 조선인이 우토로에서 살아가게 됐는지 역사적 사실부터 꽹과리·장구·북 등 우토로 주민들이 고향을 생각하며 연주한 손 떼 묻은 악기들도 전시돼 있었다. 3층 기획 전시실에는 우토로 마을을 어렵게 일궈낸 조선인 1세들의 사진과 약력, 생전에 남긴 말들이 하얀 천에 적혀 있었다. 1980년대 중반까지 우토로에서 주거지로 사용되던 판잣집인 ‘함바’(건설 현장 등에 임시로 지어 놓은 식당)도 해체해 기념관 옆으로 옮겨왔다.

우토로는 일제강점기 때인 1941년 일본 정부가 교토 군사비행장 건설을 위해 조선인들을 대거 동원하면서 만들어진 집단거주지다. 해방 뒤 공사가 중단됐고,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거나 일본의 반출 재산 제한 등 여러 사정으로 고국에 돌아가지 못한 조선인들이 가난과 차별 속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살게 됐다.

지상 3층, 연면적 461㎡ 규모의 기념관에는 일본의 식민지배와 전쟁, 재일동포 차별, 삶을 지켜내기 위한 우토로의 투쟁, 한-일 시민들의 연대 등 사라질 뻔한 80년 동안의 치열한 역사가 고스란히 담겼다. 교토/김소연 특파원
지상 3층, 연면적 461㎡ 규모의 기념관에는 일본의 식민지배와 전쟁, 재일동포 차별, 삶을 지켜내기 위한 우토로의 투쟁, 한-일 시민들의 연대 등 사라질 뻔한 80년 동안의 치열한 역사가 고스란히 담겼다. 교토/김소연 특파원

2000년 일본 법원이 토지 소유주가 낸 소송과 관련해 주민들에게 퇴거 명령을 내리면서 새로운 시련을 맞았다. 삶의 터전에서 내쫓길 우려가 커진 우토로의 상황이 알려지고, 한-일 시민들의 모금과 한국 정부가 지원에 나서 토지를 매입해 우토로를 지킬 수 있게 됐다. 2018년 일본 정부가 주거개선사업으로 지은 시영아파트 1호에 40가구가 입주했고, 내년 봄 만들어지는 2호에 12가구가 들어올 예정이다. 20여년 전 320여명이던 우토로 주민 수는 현재 100여명으로 줄었다. 상당수는 홀로 사는 노인들이다. ‘우토로의 산증인’인 강경남 할머니(95)가 2020년 별세하면서 조선인 1세대는 이제 아무도 남지 않았다.

다가와 아키코 우토로평화기념관 관장은 “고 김군자 할머니의 ‘우토로였기 때문에 살아왔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아이들을 키우며 필사적으로 살아낸 우토로 1세대들이 저 하늘 위에서 기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가와 관장은 “한-일의 젊은 사람들이 기념관에 많이 올 수 있도록 다양한 기획 전시도 계획하고 있다”며 “아픔과 차별의 상징이던 우토로가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새로운 만남의 장소가 되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기념관 뒷벽엔 ‘우토로에서 살아가리, 우토로에서 만나리’라는 대형 현수막이 펄럭이고 있었다.

교토/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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