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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일본

일본, 전방위 가격 인상에 “아침도 부담”…‘나쁜 인플레이션’ 시름 커져

등록 2022-05-02 17:33수정 2023-03-04 22:22

식빵·잼·마요네즈 가격 올라, 라면·맥주도 예고
전기·가스 8~10개월 연속 인상
“월급 그대로인데 한꺼번에 가격 올라 부담”
“허리띠 졸라매자” 온라인선 ‘절약 비법’ 공유
도쿄 시나가와구 한 슈퍼에서 손님들이 물건을 사고 있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
도쿄 시나가와구 한 슈퍼에서 손님들이 물건을 사고 있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
“이렇게 한꺼번에 가격이 오른 것은 처음인 것 같아요. 월급은 그대로인데, 부담이 크죠.”

일본 도쿄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는 야마다(35)는 최근 물가 상승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매일 먹는 아침 메뉴부터 줄줄이 값이 올랐다. 나카무라는 아침에 식빵·커피·소시지·샐러드 등을 먹고 출근한다. 지난해부터 밀값이 오르면서 슈퍼에서 싸게 살 수 있는 식빵 가격이 인상됐다. 야마자키제빵이 7.3%, 후지빵이 8% 올랐다.

빵과 같이 먹는 잼 값도 인상됐다. 식품회사인 아오하타는 9년 만에 가정용 잼 등 35개 품목의 가격을 3~7% 올렸다. 소비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아오하타 55 딸기’(150g) 잼은 지난 2월부터 251엔에서 262엔으로 11엔 비싸졌다. 샐러드에 곁들여 먹는 마요네즈와 케첩 가격도 인상됐다. 한국에서도 유명한 큐피 마요네즈가 402엔에서 436엔으로 34엔 올랐다. 가고메 역시 4월부터 가정용 토마토케첩 등 조미료 총 125개 품목의 값을 3~9% 올렸다. 토마토케첩의 인상은 7년 만이다. 커피(네슬레일본 10~20%), 소시지(닛폰햄 5~12%), 치즈(유키지루시 메그밀크 슬라이스치즈 22엔 인상)도 가격 인상 대열에 동참했다. ‘잃어버린 30년’ 동안 인플레이션 없이 살아온 평범한 일본인들의 눈에 최근 변화는 청천벽력이나 다름없다.

야마다는 “품목 하나씩만 보면 인상 액수가 적어 보일 수 있지만, 식품 가격이 전반적으로 오르고 자주 먹는 것이다 보니 생활에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나카무라는 싱글이지만, 자녀가 있는 3~4인 가구의 경우 상당한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 일본 총무성의 ‘가계조사’(2인 이상 가구)를 보면, 지난해 소비지출 중 식료품 비중이 28%로 가장 높았다.

조사업체 ‘데이코쿠 데이터뱅크’는 4월 기준으로 105곳의 기업이 라면·식용유·음료 등 4081개 품목에 대한 가격을 올렸다고 집계했다. 식품업계라고 값을 올리고 싶어 올리는 것은 아니다. 가격 인상 없이 사업을 계속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퍼지고 있다. 한 식품기업 간부는 <니혼게이자이신문>에 “값을 올리지 않으면 머지않아 상품의 안정적인 공급이 어렵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식빵과 커피, 소시지, 샐러드 등 매일 먹는 아침 메뉴들의 값이 줄줄이 올랐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식빵과 커피, 소시지, 샐러드 등 매일 먹는 아침 메뉴들의 값이 줄줄이 올랐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가격 인상 흐름은 그야말로 전방위적이다. 일본 서민들의 대표적인 먹거리인 컵라면, 캔맥주 가격도 인상될 예정이다. 일본 라면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닛신식품’이 6월부터 컵라면, 봉지라면을 비롯해 180개 제품의 값을 5~12% 올린다. 전체 판매 제품의 70% 정도에 해당한다. 컵라면 값을 올리는 것은 3년 만이다. 다른 라면회사인 묘조식품, 도요수산, 산요식품도 6월부터 라면 가격을 6~12% 인상한다.

아사히맥주는 올 10월부터 캔맥주 값을 6~10% 올리기로 했다. 캔맥주의 가격 인상은 14년7개월 만이다. 편의점에서 217엔 정도에 팔리는 대표 상품 ‘슈퍼드라이’(350㎖)가 10~20엔가량 오른다. 맥주기업은 점유율 경쟁이 치열해 그동안 가격 인상에 신중했는데, 더 버티기 힘든 상황에 이른 것이다. 기린, 산토리, 삿포로 등 다른 맥주업체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값을 올리면 제품의 판매 감소로 이어질까 두려워 용량을 줄이는 기업도 생겨났다. 이를 ‘스텔스 가격 인상’이라고 한다. 레이더 탐지가 어려운 스텔스 전투기처럼 소비자들이 가격 인상을 눈치채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은 과자나 냉동식품에서 주로 이뤄진다. 가루비는 85g 감자칩을 5g 줄였고, 젊은층에게 인기가 많은 자가리코 샐러드 과자도 60g에서 57g으로 내용량이 감소했다.

식품 가격만 요동치는 게 아니다. 외식 비용과 전기·가스, 교통비도 인상되는 등 월급 빼고 다 오르고 있다는 말이 빈말이 아닌 상황이다. 패스트푸드의 대표 주자인 맥도날드는 3월부터 치즈버거, 빅맥 등 일부 햄버거 가격을 10~20엔 인상했다. 스타벅스도 16년 만에 가격 인상 대열에 올라탔다. 4월부터 커피 원두는 90~300엔을 올리는 등 가격이 껑충 뛰었으며 드립·라테·카푸치노 등 커피 종류는 10~55엔 인상됐다. 미스터도넛도 10엔에서 최대 50엔까지 가격 인상에 나섰다.

도쿄 시나가와구 한 슈퍼에서 손님들이 물건을 사고 있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도쿄 시나가와구 한 슈퍼에서 손님들이 물건을 사고 있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전기와 가스 등 공공요금도 계속 오르고 있다. 대형 전력회사 10곳 중 도쿄·홋카이도 등 5곳은 전기요금을 4월 기준 8개월 연속 인상하고 있다. 5~6월에도 요금을 올릴 것이라고 예고한 상태다. 가스도 도쿄·오사카 등 4대 회사가 10개월 연속 요금을 올리고 있다. 공공요금 인상은 가정뿐만 아니라 세탁소·목욕탕 등 자영업자들에겐 타격이 크다. 도쿄 시나가와구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다나카(가명) 사장은 “3월 전기와 가스 요금을 합쳐 약 11만엔이 나왔다. 지난해 같은 달보다 2만엔쯤 올랐다”며 “플라스틱 옷걸이, 세탁 용제 등 꼭 필요한 물품들의 가격도 줄줄이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드라이 등 요금 인상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교통비도 상승 흐름이다. 항공기(일본항공 운임 8%), 철도(교토선 등 8개 노선 10~40엔), 고속도로(상한제 630엔) 요금은 이미 올랐고, 도쿄 직장인들의 발 역할을 하는 제이아르(JR) 야마노테선 등 전철 요금도 내년 3월 요금 인상을 예고한 상태다.

일본의 물가가 전방위적으로 오르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코로나19로 공급이 아직 원활하지 않은 가운데 미국·유럽 등의 경제활동이 재개되며 원유를 비롯해 원자재 가격이 치솟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2월 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원유·천연가스·곡물 등의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이에 더해 엔화 가치가 2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하락하며 원자재 등 수입 비용이 추가로 늘어나 기업을 한층 압박하고 있다.

일본의 3월 기업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9.5% 상승해 석유 위기 여파가 있던 1980년 12월(10.4%) 이후 40여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보였다. 같은 달 소비자물가지수(신선식품 제외)도 100.9로 전년 동월 대비 0.8% 상승했다. 수치는 아직 적지만 상승폭은 2월(0.6%)부터 점점 커지면서 2020년 1월 이후 2년2개월 만에 가장 높다. 정부의 강력한 요구로 지난해 봄부터 휴대전화 요금이 인하된 영향을 제외하면 상승률은 2%를 넘을 것이란 관측이다.

패스트푸드의 대표 주자인 맥도날드는 3월부터 치즈버거, 빅맥 등 일부 햄버거 가격을 10~20엔 인상했다. 맥도날드 매장 모습. 도쿄/김소연 특파원
패스트푸드의 대표 주자인 맥도날드는 3월부터 치즈버거, 빅맥 등 일부 햄버거 가격을 10~20엔 인상했다. 맥도날드 매장 모습. 도쿄/김소연 특파원
일본에선 ‘나쁜 인플레이션’이란 말이 연일 등장하고 있다. 임금 인상으로 소비가 살아나 일본 경제를 좀먹는 고질적인 ‘저물가’를 탈피하는 선순환을 기대했는데,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가계와 기업에 부담만 주고 있기 때문이다.

임금 인상은 더딘 가운데 물가 상승이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것이란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소비자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기 시작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전문가들이나 소비자들이 자신의 경험담을 소개하며 ‘절약 방법’을 소개하는 글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내용은 대략 이렇다. 큰 슈퍼의 요일별 품목 할인을 이용하거나 ‘자체 브랜드’(PB) 상품을 구매하라는 것이다. 피비 상품은 평소에도 가격이 저렴한데, 유통 대기업 ‘이온’은 피비 제품의 가격을 6월 말까지 유지하기로 발표했다.

쇼핑 방법 등에 대한 조언도 있다. 화장지·식용유 등 유통기한이 긴 제품은 가격이 오르기 전에 미리 사두고, 매일 슈퍼를 가면 무심코 사는 경우가 많으니 ‘3일에 1회’로 줄이라는 조언도 있다. 식재료가 낭비되지 않도록 냉장고에 영수증을 붙여 뒀다가, 다 사용했으면 지워 나가라는 글도 올라왔다. 주부인 니시하라(49)는 “요즘 가격이 많이 오르다 보니, 에스엔에스에 올라온 절약 정보나 물건을 저렴하게 살 수 있는 슈퍼의 특매일을 꼼꼼하게 살피고 있다”며 “소비를 갑자기 줄이긴 힘들지만, 쓸데없는 곳에 돈을 쓰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졌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도 팔을 걷어붙였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지난달 26일 기자회견을 열고 물가 급등에 따른 긴급대책을 발표했다. 휘발유 가격 억제를 위한 보조금 지급을 계속 이어가고, 아이가 있는 저소득 가구를 대상으로 자녀 1인당 5만엔을 지급하기로 한 것이 핵심 내용이다. 물가 대책에는 국비 6조2천억엔(약 60조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기시다 총리는 “이번 대책은 1단계다. 7월 참의원 선거 뒤 종합적인 대응책을 구체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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