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국제테러 사건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던 일본 적군의 최고 간부였던 시게노부 후사코(60·사진)가 23일 살인죄 등으로 도쿄지법에서 20년형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일본 적군이 저지른 1974년의 네덜란드 헤이그 주재 프랑스대사관 점거사건(헤이그 사건) 등 3건에 대해 “자신들의 주의·주장·행동의 정당성을 절대시해 다수의 생명을 위험에 처하게 한 것에 개의치 않은 비열한 범행”이라면서도 시게노부가 “그룹의 중핵적 위치에 있었지만 직접 범행을 주도했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판결이 선고되자 시게노부는 방청석의 지지자들을 향해 오른손을 가볍게 흔들어 보이며 “감사합니다. 열심히 싸우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예전에도 지금도 자신은 테러리스트가 아니라고 주장해온 그는 판결 도중 변호인에게 건넨 메모에서 “법에 충실한 권위 있는 판결이 아니라 현재의 권력에 영합한 것”이라며 법정투쟁을 계속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분트(공산주의자동맹)의 마타하리’로 불리던 시게노부는 메이지대 재학 중에 적군파 활동을 하다 71년 2월 세계동시혁명의 국제거점을 중동지역에 마련한다는 목적으로 베이루트로 출국해 팔레스타인해방운동을 지원해왔다. 이후 일본 적군을 조직해 헤이그 사건과 이스라엘 베이루트공항 습격사건 등에 적극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수배를 받아오던 시게노부는 오사카 다카쓰키시에서 숨어 지내다 헤이그 사건 발생 26년 만인 2000년 경찰에 붙잡혔다. 검거된 지 몇달 뒤 그는 팔레스타인 남자와 사이에서 낳은 딸에게 일본 국적을 얻어주기 위한 탄원서를 모은 옥중수기 <사과나무 아래서 너를 낳으려 했다>를 펴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도쿄/박중언 특파원 park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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