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도쿄/AFP 연합뉴스
일본 정부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를 계기로 논의됐던 한-일 정상회담을 하지 않는 방향으로 조율 중이라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일본과 조기 관계 개선을 희망하는 윤석열 정부를 상대로 양국 간 핵심 현안에서 대폭 양보를 끌어내려는 속내를 읽을 수 있다.
<산케이 신문>은 14일 복수의 일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한국 쪽이 이른바 징용공(강제동원 피해자) 소송 등에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은 데다, 다케시마(독도) 주변에서 무허가 해양 조사 등도 벌이는 등 (한-일 정상회담을 할 만한) 여건이 안 된다고 판단했다”고 보도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이달 29~30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리는 나토 정상회의에 나란히 참석할 전망이다. 이를 계기로 한국 정부가 2019년 12월 이후 2년 반 만에 마드리드에서 대면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그러자 일본 정부가 정상회담을 하려면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 등 양국 간 ‘핵심 현안’에서 한국 정부가 해결책(양보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한발 뒤로 물러선 것이다.
박진 외교장관도 정상회담 준비 등을 위해 이달 중순 일본 방문을 추진했으나, 이 일정 역시 다음달 10일로 예정된 일본 참의원 선거 이후로 미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한-일 외교장관 회담이 이뤄지지 못하면 의미 있는 정상회담이 성사되기 쉽지 않다. 신문은 “(나토 회의를 계기로 한-일 정상이) 짧은 시간 면담이나 인사 가능성이 있지만, 일본 정부는 한국 쪽이 징용공 문제 등에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 한 정식 정상회담을 설정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전했다. 기시다 총리 주변 인사는 이 신문에 “한국은 지금까지도 약속을 지키지 않은 역사가 있다. 일본이 적극 나서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이런 움직임에 대해 한-일 관계 개선의 구체적인 방안을 놓고 두 나라 사이에 본격적인 ‘기 싸움’이 시작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윤석열 정부가 지난 5월 출범한 뒤 1965년 수교 이래 최악의 상태로 방치돼 있는 한-일 관계를 개선한다는 큰 방향에는 양국 정부 사이에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하지만, 일본은 양국 간 핵심 현안에 대해 한국 쪽이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더해 최근 독도 인근 해양 조사 문제나 4년 전 초계기 갈등까지 거론하며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일각에선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보수층을 결집을 시도해야 하는 자민당 입장에서 한국이 역사 문제에서 구체적인 해법을 마련하지 않은 가운데 한-일 관계를 개선하는 것이 선거에 도움이 안 된다는 분위기가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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