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엔화 가치(엔-달러 환율)가 한때 달러당 140엔대까지 하락해 1998년 이래 24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도쿄/AFP 연합뉴스
일본 엔화 가치(엔-달러 환율)가 한때 달러당 140엔대까지 하락해 1998년 이래 24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원자재 가격 인상에다 엔저 흐름이 계속되면서 일본에서도 물가가 뛰고, 무역적자가 이어지는 등 경제적 어려움이 이어지고 있다.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2일 오전 1달러당 140.26엔까지 떨어졌다. 엔-달러 환율이 140엔대를 뚫은 것은 1998년 8월 이후 처음이다. 엔화 가치는 올 들어서만 18%나 떨어졌다. 이는 1979년(19%) 이후 43년 만이다. 보다 못한 스즈키 슌이치 일본 재무상은 이날 기자회견에 나서 “급속한 변동은 바람직하지 않다. 최근 변동은 다소 크다는 인상이다. 정부는 높은 긴장감을 갖고 주시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원화와 마찬가지로 최근 엔화 약세가 이어지는 것은 외부 요인 때문이다. 미국이 자국의 물가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지난 6~7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두 번 연속 금리를 0.75%포인트 올린데 이어, 지난달 26일 ‘잭슨홀 미팅’에서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지금까지 통화정책 기조를 유지할 것이란 방침을 밝혔다. 그 여파로 미국으로 돈이 몰리며, 세계 주요 통화 중 하나인 엔화 약세도 가속화되고 있다.
하지만, 엔저로 인한 무역수지 개선 효과 등은 관찰되지 않는다. 일본의 무역수지 적자는 벌써 12개월 연속 이어져 지난 7월에는 무려 1조4367억엔(약 14조원)를 기록했다. 역대 7월 적자액으로는 사상 최대 수준이다. 미국·중국 등 주요국 경제가 코로나19 여파에서 깨어나지 못한데다, 일본 제조업 공장의 해외 이전 등으로 엔저가 예전만큼 수출 증가에 기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반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가격 폭등과 수입 물가 상승으로 경제의 어려움은 가중되고 있다. 조사업체 ‘데이코쿠데이터뱅크’가 7월 일본 기업(응답 1만1503곳)을 상대로 실시한 조사를 보면, 61.7%가 “엔화 약세가 기업 실적에 마이너스 영향을 줬다”고 응답했다.
서민들의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식품·외식 등 생활 물가도 계속 오르고 있다. 빵·과자·라면·맥주 등 올해 식품에서만 2만개 품목의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도쿄상공리서치는 7월 조사에서 외식업체 120개 중 올해 가격 인상을 표명한 곳이 절반 가량인 53곳이라고 밝혔다.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은 “엔저가 과거만큼 경제적 이점이 크지 않다. 엔화 약세로 외국인 관광객이 늘어날 수 있지만 코로나19로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지금의 엔저는 단점이 큰 나쁜 엔저”라고 지적했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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