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미투 운동’의 상징인 이토 시오리는 지난해 7월 성폭력 관련 손해배상 소송에서 최종 승소했다. 이토는 당시 승소 기자회견에서 “동의하지 않은 성행위가 강간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며 “이것을 바꿔나가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고 밝혔다. 도쿄/AP 연합뉴스
일본 정부가 형법의 ‘강제 성교죄’(강간죄)를 ‘비동의 성교죄’로 죄명을 바꾸기로 했다. 포괄적인 비동의 강간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동의 없는 성행위가 처벌 대상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려는 의도다.
일본 법무성은 24일 성범죄 규정 개정과 관련해 죄명을 ‘비동의 성교죄’로 바꿀 방침이라고 자민당에 보고했다. ‘강제추행죄’는 ‘비동의 추행죄’로 변경된다. 일본 정부는 3월 중순 각의(국무회의)를 열고 이런 내용의 형법 개정안을 최종 결정해 이번 국회에서 통과시킬 방침이다. <교도통신>은 “피해자단체 등이 동의 없는 성행위가 처벌돼야 한다는 메시지를 사회 전체에 공유할 수 있도록 죄명을 변경해 달라고 요구했다”고 전했다.
일본 정부는 죄명 변경과 함께 성범죄의 적용 범위도 대폭 확대한다. 법제심의회(법무상 자문기관)는 지난 17일 폭행·협박이 없었더라도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명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성행위를 하면 강간죄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개정안을 사토 겐 법무상에게 전달했다.
법제심의회는 강간죄 구성요건으로 폭행·협박을 포함해 △알코올·약물 복용 △학대 △거절할 틈을 주지 않는 행위 △공포 조장 △경제·사회적 지위 이용 등 모두 8가지를 제시했다. 이런 행위로 인해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명하기 곤란한 상태가 된 피해자를 상대로 성행위를 하면 처벌 대상이 된다. <요미우리신문>은 “처벌 대상 행위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해 엄격한 처벌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피해자 쪽은 의사에 반하는 성행위를 좀 더 포괄적으로 처벌하는 방안도 정부에 요구했지만, 처벌 대상이 모호해질 수 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울러 법적으로 성행위에 동의할 능력이 있다고 인정되는 ‘성관계 동의 연령’도 종전 13살에서 16살로 올라간다. 성범죄 공소시효도 10년에서 15년으로 5년 늘어난다. 18살 미만은 신고가 쉽지 않을 수 있어, 공시시효에 포함하지 않기로 했다. 18살 미만의 피해자의 경우 33살까지 죄를 물을 수 있다.
한국의 경우 여성가족부가 지난달 ‘제3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에서 형법상 강간죄 구성 요건을 ‘폭행·협박’에서 ‘동의 여부’로 개정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밝혔지만 법무부가 반대하면서 9시간 만에 철회 한 바 있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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