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제1원전 부지에 보관 중인 오염수 탱크들. 도쿄전력 제공
한국 전문가 시찰단이 24일 이틀에 걸친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전 현장 점검을 끝내며 21일 시작된 전체 일정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시료 채취’ 등 독자 검증의 길이 막힌데다 앞서 현장을 다녀간 대만에 비해서도 크게 내용이 미흡한 것으로 드러나 급조된 부실한 시찰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한국 시찰단은 이날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다핵종제거설비(ALPS·알프스)로 제거가 어려운 삼중수소(트리튬)를 바닷물로 희석하는 설비와 해양 터널 등 오염수 방류시설을 집중적으로 둘러봤다. 한국 시찰단 단장인 유국희 원자력안전위원장은 현장 점검을 마친 뒤 기자들을 만나 희석 설비와 관련해 “충분히 희석될 수 있는 만큼 펌프의 역량이 있는지,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는지 이런 부분들을 중점적으로 살펴봤다”고 말했다. 이들은 전날엔 다핵종제거설비, 오염수를 방류하기 전 방사성 물질을 측정하는 ‘K4’ 탱크군, 오염수를 옮기는 이송설비 등을 확인했다.
대만 행정원 원자력연구소 등 전문가로 구성된 시찰단은 지난해 3월23~27일과 11월27~12월1일 두 차례 일본을 방문했다. 후쿠시마 제1원전 현장 점검은 1차(3월25일), 2차(11월28일)를 합해 이틀에 걸쳐 이뤄졌다. 이후 나온 대만 시찰 보고서를 보면, △알프스 △‘K4’ 탱크군 △오염수 희석 및 방류시설 △분석화학실험동 △해양생물사육장 등을 점검했음을 알 수 있다. 한국 전문가 시찰단이 둘러본 시설과 거의 같다. 시찰 대상을 놓고 한-일 정부가 몇 차례 치열한 협의를 하는 듯 보였지만, 결국 일본 정부가 보여주고 싶은 장소에만 접근을 허용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방류가 임박한 시점에 허겁지겁 시찰에 나선 한국과 달리 대만은 지난해 봄과 늦가을 두 차례 일본에 와 다양한 관계자들을 만나는 등 폭넓은 조사를 했다. 특히 2차 방문 때엔 후쿠시마현 어업협회를 찾아 어민들과 직접 만났다. 이를 통해 △오염수 방류에 대한 어민들의 생각 △방사선 검사 내용 △수산물 출하 상황 등을 점검할 수 있었다. 이 면담 결과를 근거로 대만 시찰단은 보고서에서 “알프스 처리수가 바다로 방류되면 (일본 어민뿐 아니라) 대만 어민들의 생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또 일본분석센터, 해양생물환경연구소, 전력중앙연구소 등 민간 연구소도 방문해 의견을 구했다.
물론, 대만 전문가들도 ‘시료 채취’ 등을 요구했지만 일본 정부가 거부해 이뤄지지 못했다. 이런 한계로 인해 대만 시찰단은 보고서에 오염수의 안전성 문제에 대해선 명확한 의견을 담지 못했다. 그 대신 △알프스 장비 및 오염수 모니터링 상태를 계속 검증하고 △대만 해역의 방사선 감시를 정밀하게 추진하며 △일본 어획물의 모니터링을 지속해야 한다는 제안을 중심으로 결론을 내렸다.
대만은 일본 정부가 2021년 4월 후쿠시마 오염수 바다 방류를 공식 결정할 때만 해도 ‘방류 반대’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지난해 2월 3·11 후쿠시마 원전 참사 이후 11년 동안 유지해왔던 후쿠시마 등 5개 현의 농수산물 수입 금지를 해제했다. 지금은 버섯류 등 일부 품목에 대해서만 수입을 금지하고 있다. 대만해협을 둘러싼 안보 위기가 커지는 가운데 일본의 협력이 절실해지자 과감한 결단을 내린 것이다.
23일 후쿠시마 제1원전 현장 점검 결과를 설명하는 한국 시찰단 단장인 유국희 원자력안전위원장. 연합뉴스
5월 현재 후쿠시마산 농수산물에 대해 수입 금지 조처를 취하는 국가·지역은 대만을 포함해 한국·중국·홍콩·마카오 등 5곳이다. 대만을 제외한 4곳 가운데 3곳이 중국 정부의 영향력 아래 있다. 일본 입장에선 한국이 수산물 수입을 재개하면, 후쿠시마산 수산물의 수입을 막고 있는 것은 중국뿐이라고 주장할 수 있게 된다.
결국, 한국 전문가 시찰단이 현장 점검 이후 오염수 방류에 대해 똑 부러진 결론을 내놓지 않을 경우 일본 정부는 이를 ‘오염수의 안전성을 인정한 것’이라 받아들이고 집요하게 수산물 수입 금지 조처 해제를 요구해올 것으로 보인다. 실제 노무라 데쓰로 농림수산상은 23일 “한국은 후쿠시마 등 8개 현의 수산물 수입을 중단하고 있다”며 “수산물 수입 제한 해제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