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9월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오른쪽)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사상 첫 양자 정상회담에서 ‘조일 평양선언’에 서명한 뒤 악수를 하고 있다. 평양/일본사진공동취재단
북일 교섭 30년의 평행선을 돌아보다
와다 하루키 지음 l 길윤형 옮김 l 서해문집 l 2만2000원 지난 5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북일정상회담 조기 실현을 위한 고위급 협의”를 북한에 제안했다. 북일 교섭은 순항할까. 지한파 역사학자인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가 쓴 ‘북일 교섭 30년’은 이를 가늠해보는 데 좋은 길잡이가 된다. 북일 국교 교섭은 1991년 시작됐다. 이듬해까지 8차례 회담이 이어졌지만 결렬됐고, 2000년 9차 회담이 열렸다. 같은 해 북일 국교 정상화를 목표로 하는 ‘북일국교촉진국민협회’가 설립됐다. 식민 지배에 대해 사죄한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가 회장을, 와다 교수가 사무국장을 맡았다. 2002년 평양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면서 양국 관계는 급진전의 전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일본인 납치를 인정하고 사과하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납치 문제가 ‘사실’로 확정되면서 일본 국민의 분노가 폭발했기 때문이다. 일본 보수세력은 이러한 대중의 정서를 놓치지 않았다. 와다 교수는 “국교 정상화에 반대하는 이 세력이 일본의 정부·여론을 제압한 것이 2002년의 결과였다”고 평가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 일본 역사에 향수를 갖고 있는 보수세력과 침략에 사죄하며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를 추구했던 진보세력이 맞붙은 ‘북일 국교 정상화’라는 전선에서 보수 세력이 승리했다는 시각을 제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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