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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일본

[특파원리포트] 고이즈미의 ‘오자와 컴플렉스’

등록 2006-04-14 22:10

지난 7일 일본 제1야당 민주당의 ‘얼굴’이 오자와 이치로로 바뀐 이후 일본 정치권이 팽팽한 긴장감에 휩싸여 있다. ‘제왕적 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직접 ‘전당 비상경계령’을 내리고 적개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중의원 선거의 압승으로 296석(전체 480석)의 초거대 여당을 거느린 데다, 전후 세번째 장수 총리의 영예를 차지했고, 퇴임을 불과 5개월밖에 남겨놓지 않은 고이즈미는 왜 초조해 할까? 오자와가 뭐길래.

잠깐 옆길로 새서 두 사람의 이름을 살펴보자. 발음은 다르게 들리지만, 비슷한 데가 많다. 고이즈미(小泉)의 뜻풀이는 ‘작은 샘’이다. 오자와(小澤)는 ‘작은 연못’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일본 언론들은 둘의 대결을 ‘小 vs 小’로 표현한다. 이치로(一郞)는 맏아들에 흔하게 붙이는 이름이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한국인들의 ‘꼭지가 돌게’ 만든 스즈키 이치로 역시 맏아들이어서 그 이름이 붙었다. 큰아들이라는 뜻으로 다로(太郞)라는 이름도 많이 쓴다. 고이즈미는 아버지 이름 준야(純也)에서 따온 ‘준’자만 하나 더 붙인 게 다를 뿐이다. 아마 작명가라면 “샘물이 흘러 연못에 이르니 고이즈미가 오자와에 먹힐 운명” 쯤으로 풀이하지 않을까 싶다.

두 사람은 똑같이 1942년생이다. 고이즈미가 1월생이어서 64살인 데 비해, 오자와는 5월생이어서 아직 63살이다. 둘은 명문 게이오대 경제학부를 졸업했다는 공통점도 갖고 있다. 니혼대학 대학원을 중퇴한 오자와 쪽이 ‘가방끈’은 조금 더 길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선거구를 물려받은 세습 정치인이란 점도 같지만, 오자와는 대학원 재학 중인 27살에 곧바로 뱃지를 달아 현재 13선이다. 첫 선거에서 낙선의 고배를 마신 고이즈미는 72년에야 중의원에 진출해 11선이다.

출발점은 비슷해 보이지만 두 사람의 처지는 천양지차였다. 고이즈미의 말처럼, 자신은 늘 비주류에 머물러 있은 반면, 오자와는 장래 총리로 촉망받는 자민당 최대 파벌 다케시타파의 ‘황태자’였다. 89년 오자와가 47살의 최연소 간사장으로 자민당 2인자 행세를 할 때, 고이즈미는 처음 각료에 등용됐을 뿐이다. 오자와가 사실상 주도하는 다케시타파에 맞서 고이즈미는 72년에 첫 당선된 동기생인 가토 고이치, 야마사키 다쿠와 함께 ‘YKK 연대’를 구축했다. 이 때도 가토가 주역이었고, 고이즈미는 조역에 지나지 않았다. 오자와가 정치개혁을 내세우며 소선거구제 도입을 강력히 주장했을 때, 고이즈미는 거세게 저항하는 쪽에 섰다.

이런 ‘악연’에 대한 기억 내지는 오자와에 대한 ‘컴플렉스’가 고이즈미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오자와에 대한 경계심 또는 적개심이 솟구치게 하는 원천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물론 93년 ‘오자와의 정변’ 이후 지난 10여년 동안 두 사람의 처지는 정반대로 바뀌었다. 오자와는 탈당한 뒤 자민당 장기집권을 종식시키고 비자민 연립정권을 수립했다. 자신이 직접 총리로 나서지 않았을 뿐 실권은 그의 손에 들어 있었다. 그러나 그 기간은 길지 않았다. 오자와는 94년 자민당이 사회당과 연립해 정권을 되가져간 이후 고달픈 야당 신세를 면할 수 없었다. 몇개 야당의 창당·파괴를 되풀이하면서 ‘파괴자’라는 오명도 얻었고, 오부치 정권 때는 자민당과 연립정권을 꾸리기도 했으나 역시 오래가지 못했다.

자민당 안에서 실력을 키운 고이즈미는 95년부터 총재직 도전에 나서 두차례 고배를 마신 뒤 2001년 마침내 꿈에 그리던 총리의 자리에 올랐다.

고이즈미의 캐치프레이즈는 “자민당을 부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정치개혁을 내걸고 자민당을 부순 사람은 오자와다. 당시 대형 부패추문으로 파벌 회장이 잇따라 낙마한 다케시타파의 후계 다툼에서 패한 게 직접적 원인이 되기는 했지만 ‘자민당 파괴’는 오자와의 창작품이다. 정치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결단력과 추진력, 카리스마의 측면에서도 고이즈미와 오자와는 엇비슷하다.

고이즈미가 ‘한 문장’으로 대변되듯이 각론에 약하고 이미지로 승부를 거는 데 비해, 오자와는 정치적 비전 제시와 조직력에서 앞선다. 고이즈미가 집권 5년 내내 구조개혁과 우정민영화에 매달려 끙끙댔지만, 오자와는 이미 93년에 <일본개조계획>이라는 책을 통해 정치·안보·사회 분야의 개혁방안을 제시했다. 이 책은 70만부 이상이 팔려 정치인의 책으로 드물게 베스트셀러가 됐고, 그 안에는 한국에도 잘 알려진 ‘보통국가론’이 들어 있다.

오자와는 누구보다 먼저 자위대의 해외파병을 주장한 대표적 우파 정치인으로, 잔혹한 정치술수, 금권정치, 측근정치라는 부정적 수식어가 늘 따라다닌다. 그렇지만 2003년 민주당 합당 이후 독선적이고 힘을 앞세워 밀어붙이는 기질이 많이 줄어들었는 평가를 듣고 있다. 또 유엔 중심주의를 더욱 분명히 하는 등 개헌·안보 문제에서도 소장우파들에 비해 우파 성향이 덜한 편이다.

오자와가 전면에 등장한 이후 고이즈미가 한 첫마디는 그가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것이다. 오자와는 정권을 얻기 위해 뭐든 할 사람이란 얘기다. 고이즈미는 구체적 시나리오까지 얘기했다. 민주당 좌파인 옛사회당계를 잘라내고 반고이즈미·아베 성향의 자민당 온건파와 대연립정권을 꾸리는 방식이다. ‘무지개 정당’으로 불릴 만큼 이념적 스펙트럼이 다양한 민주당에서 좌파가 사라지면 이념이나 정책 면에서 자민당 주류우파와 큰 차이가 없는 게 사실이다. 자민당 내부의 균열이 커지면 충분히 현실성을 띨 수 있다. 이것이 지난 총선에서 참패를 당해 쪼그라든 민주당이 절대 다수 의석을 가진 자민당을 흔드는 ‘터무니없는 상황’이 벌어지는 이유다.

고이즈미의 반응은 전임 마에하라 세이지 대표가 선출됐을 때와 판이하다. 당시에는 젊은 마에하라에게 “열심히 하라”고 격려도 하고 “곧 장관도 할 수 있다”며 민주당과 연립정권 구상을 비치기도 했다. 그 때는 마에하라를 ‘갖고 놀면서’ 민주당을 흔들어대고, 민주당 우파와의 연대도 추진했던 것이다. 그렇게 여유를 보이던 고이즈미가 지금은 정반대 상황으로 바뀌어 민주당의 흔들기 공세를 방어하는 데 급급한 실정이 됐다.

일부에선 오자와의 등장이 고이즈미의 승부사 기질을 자극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저항세력이 힘의 원천”이라는 자신의 말대로 모처럼 승부욕을 불러일으키는 적수를 만났다는 것이다. 자민당 관계자는 “총리는 뿌리부터 권력투쟁적 인간”이라며 “총리는 오자와 얘기를 하는 동안은 생기가 넘친다”고 말했다. 우정반대파 낙선을 위해 자객을 투입해 ‘고이즈미 극장’의 흥행몰이를 한 고이즈미는 오자와의 등장을 “고이즈미 극장의 마지막을 장식할 무대”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게 주변의 얘기다.

그렇지만 고이즈미의 최근 태도에선 승부욕보다는 위기의식이 더 많이 배여난다. 그는 “다음 총재는 큰 일”이라고 드러내놓고 염려하기도 했으며, 오자와를 경계하는 말을 며칠째 계속 해오고 있다. 그만큼 오자와에 대한 부담이 크다는 얘기다.

두사람은 서로의 실력을 인정하면서 날카로운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 고이즈미는 오자와가 “자민당을 누구보다 잘 아는 만만찮은 상대”라고 평가하면서도, 그에게 돈, 공천, 파벌의 후광으로 당을 주무른 ‘낡은 자민당’의 상징이라는 딱지를 붙여 맹공을 가했다.

오자와는 고이즈미에 대해 “권력투쟁에 뛰어난 인물이다. 그래서 이렇게 장기간 국민적 인기를 누릴 수 있는 것 아니겠다. 나는 그런 면에선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고이즈미의 언동은 내용물이 없는 퍼포먼스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특히 경쟁지상주의를 외치는 고이즈미에 대해 “인간성의 본질이 결여돼 있다”며 ‘공생’을 앞세운 ‘뉴오자와 노선’을 강조하고 있다. 일본 사회에서든, 주변국 관계에서든 경쟁은 중요하지만 공생이 전제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두 거물은 오는 23일 지바7구 보궐선거에서 ‘진검승부’를 펼치게 된다. 다케베 쓰토무 자민당 간사장의 차남이 최근 몰락한 라이브도어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엉터리 폭로로 민주당이 괴멸적 타격을 입은 터여서, 애초 이 선거는 이미 끝난 게임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오자와 체제가 들어선 뒤 급속히 접전 양상으로 바뀌고 있다. 만약 민주당 후보가 완패하면 오자와 바람은 상당히 퇴색하게 될 것이다. 역으로, 민주당이 승리하거나 선전을 하게 되면 자민당에서 ‘오자와 위협론’의 수위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8월 고이즈미의 중의원 전격 해산 이후 일본 정치권은 심하게 요동쳐왔다. 오자와의 등장은 정권교체 가능성까지 포함해 일본 정치의 역동성을 한층 더해준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관심을 끈다. 도쿄/박중언 특파원 park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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