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안보대화에서 제안 ‘패권주의’ 의심 커져
일본 정부가 대규모 자연재해 때 효율적 구조와 복구를 위해 각국의 군부대가 연계해 활동하는 체제를 구축할 것을 제안했다.
누카가 후쿠시로 방위청장관은 3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5차 아시아안보대화에 참석해 한 연설을 통해, 자연재해 구호활동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나라들이 서로 협력하기 쉬운 분야”라며 “지진과 쓰나미 등 재해가 닥쳤을 때 각국 군대들이 신속하게 대응하도록 하기 위한 전략과 절차 등을 만들자”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인도네시아 자바 중부 지진 현장에 자위대를 파견한 것과 관련해 “우리는 재해구호 분야에서 주도권을 쥐고 싶다”며 일본 정부의 의지를 강조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20여개 국가 국방장관 등이 참석한 자리에서 한 누카가 장관의 이런 발언은 재해구호를 앞세워 일본의 역내 영향력을 확대하고 자위대의 해외파병을 촉진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누카가 장관은 “군 조직의 재해복구 활동은 앞으로 내전 뒤의 재건지원이나 평화구축 등의 분야로 확대될 수 있다”고 말해, 해외파견 자위대의 역할 증대도 염두에 두고 있음을 내비쳤다. 이에 따라 일부 나라에선 이번 제안에 대해 “자위대 해외파병의 공식화 기도”라며 ‘일본 패권주의 경계론’을 제기하기도 했다고 〈교도통신〉은 전했다. 일본은 2004년 말 동남아를 휩쓴 지진해일(쓰나미) 발생 뒤 인도네시아에 자위대 925명을 파견해 의료·수송·구조활동을 펴는 등 1998년부터 자위대의 재해구호 활동을 확대해 왔다. 지난달 27일 강진으로 6천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인도네시아 자바에도 현재 자위대 100여명을 파견해 구조작업을 펼치고 있다.
누카가 장관은 이와 함께 일본 방위청이 해상교통의 요충인 말라카 해협의 해적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연안국 사이의 협력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은 그동안 외무성과 해상보안청을 중심으로 연안국들과 협력해 왔으나, 자위대가 참여하는 군사적 차원으로 협력을 확대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일본 우파들 사이에선 해상 안전보장을 위해 자위대 활동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일본의 대표적 강경 우파인 마에하라 세이지 전 민주당 대표가 지난해 말 워싱턴을 방문해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일본 주변 1천해리 바깥의 ‘시레인’(전략물자 해상 수송로)도 일본이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도쿄/박중언 특파원 park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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