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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일본

‘신의 손’ 일본펀드의 귀재 무라카미 은퇴선언

등록 2006-06-05 22:19

일본 증시에서 ‘신의 손’으로 통해온 펀드의 귀재 무라카미 요시아키(46)가 5일 은퇴를 선언했다.

무라카미는 이날 오전 도쿄증권거래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니혼방송 주식 매매과정에서 내부자거래를 했다는 혐의를 시인하고 사죄했다. 그는 “여러분에게 폐를 끼쳐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이고, 검찰의 비공식 조사에서 내부자 정보를 들었다는 점을 인정했다고 밝혔다. 도쿄지검은 이날 오후 무라카미를 체포해 본격 수사에 들어갔다.

그는 2004년 9월~2005년 1월 세차례에 걸쳐 몰락한 ‘벤처의 총아’ 호리에 다카후미(34)가 이끄는 라이브도어와 니혼방송 주식 매입을 둘러싼 협의를 했다고 밝혔다. 그는 주식 대량매입에 나설 것이라는 라이브도어 쪽의 얘기를 듣고 주식을 사들인 뒤 되팔아 큰 시세차익을 올렸다. 그는 “그런 정도의 얘기가 내부자 정보인지에 대해 많이 고민했으나 결국 프로 중의 프로로서 실수가 있었다고 인정했다”면서도 결코 시세차익을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고 되풀이해 주장했다. 앞으로의 거취에 대해선 “이 세계의 헌법(증권거래법)을 어긴 이상 (업계에서) 물러날 것”이라며 일선에서 은퇴할 뜻을 밝혔다.

도쿄대 법학부, 통산성 관료 출신인 무라카미는 일본 경제계의 최고의 이단아다. 후지텔레비전 경영권 인수에 나서 일본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호리에 또한 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로부터 평생 용돈 대신 한꺼번에 1백만엔을 받아 주식을 시작했다는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통산성(현 경제산업성)에서 기업 인수합병과 관련한 법률 정비를 담당한 그는 일본 경제계가 얼마나 인수합병의 무풍지대인지를 깨달은 뒤 펀드업계로 뛰어들었다. 그는 99년 경찰 관료 출신의 동창생, 노무라 증권맨과 함께 벤처기업 등에서 40억엔 정도를 조달해 펀드를 설립했다.

무라카미는 주주의 이익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경영권 방어가 느슨한 알짜 기업들을 대상으로 적대적 인수합병(M&A) 등 공격적 투자를 일삼아 기업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해온 인물이다. 기업의 경영권을 뒤흔드는가 하면 주주의 이익배당을 늘리기 위해 경영진과 정면충돌을 서슴지않은 그의 투자행태는 일본 사회에서 늘 물의를 빚어왔다. 또 최근에는 언론에 큰 화제가 될 만한 기업들을 건드리는 이벤트성 투자를 통해 단기에 차익을 남기는 펀드로 변질됐다는 지적도 받았다. 그렇지만 그에 대해선 기업의 처분만 기다리는 전통적 일본 주주와는 180도 다른 ‘이의를 제기하는 주주’의 전형을 확립하고, 일본 기업경영자들에게 주주 가치를 인식시키고 긴장감을 갖도록 했다는 긍정적 평가도 없지 않다.

그가 “마음대로 장소를 골랐다”며 이날 기자회견을 연 도쿄주식거래소는 일반 펀드와는 질적으로 다른 ‘무라카미펀드’의 출발점이다. 2000년 1월 바로 이 자리에서 그는 도쿄증시 2부에 상장된 부동산·전자부품 회사 쇼에이에 대해 공개 주식매수(TOB)를 선언했다. 일본기업끼리의 첫 적대적 인수합병의 시도다. 이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무라카미는 토지 등 풍부한 자산을 갖고 있으면서도 주가가 낮은 기업들에 투자를 집중했다.

이를 통해 올린 무라카미펀드의 평균 수익률은 20~30% 수준을 웃돌았다. 그 실적을 평가받아 해외의 연금기금 등도 펀드로 들어와 운용자금이 지난해 12월 기준 3842억엔에 이르렀다. 2003년 말에 비해 7배 가까이 급증했다.

무라카미가 본격적으로 세간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은 라이브도어와 후지텔레비전 사이의 경영권 공방 때였다. 후지의 지주회사 격인 니혼방송의 주식을 18.57%나 보유했던 무라카미는 경영권 공방으로 주가가 폭등하는 사이에 대부분을 매각해 막대한 차익을 챙겼다. 이후 오사카증권거래소 주식을 10% 사들여 경영권을 노리는가 하면, 라쿠텐과 티비에스방송의 경영권 공방의 와중에 역시 보유주식을 매각해 큰 차익을 남겼다. 유명 프로야구단 한신타이거스의 모회사인 한신전기철도에 적대적 매수를 시도하고 구단의 상장을 추진하다 한신 야구팬들의 격렬한 반발을 사기도 했다. 한신전기철도의 최대주주인 무라카미펀드는 이번 파동의 직격탄을 맞아 47%에 이르는 보유 주식을 모두 공개매수에 나선 민간 철도기업인 한큐홀딩스에 넘길 예정이다.


무라카미는 지난 3월 일본에선 규제와 세금이 많고 언론도 소란스럽다며 싱가포르에 투자고문회사를 설립한 뒤, 지난달 일본의 운용자산과 사업을 싱가포르로 옮겨 다시 한번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5일 기자회견 전 무척 긴장된 표정이었던 무라카미는 1시간20분 남짓 회견 동안 손동작을 해가며 강한 어조로 자신의 주장을 펴는가 하면, 기자들에게 “(좁아서) 취재가 힘들지요”라며 웃음을 유도하는 등 무라카미 특유의 여유를 잃지 않았다. 도쿄/박중언 특파원 park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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