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쿠니 신사 합사에 대한 히로히토 일왕의 발언을 적은 도미다 아사히코 궁내청 장관의 수첩 메모.
참배중단 결심한 이유는…
1988년 발언 메모서 확인…아베 장관 언급 회피
1988년 발언 메모서 확인…아베 장관 언급 회피
히로히토 전 일왕이 A급 전범의 야스쿠니 신사 합사에 강한 불쾌감을 나타냈다는 메모가 발견돼 일본 사회가 술렁이고 있다.
일본 사회에서 차지하는 일왕의 무게에 비춰 이번 메모로 참배 반대론과 분사론이 힘을 얻을 전망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8·15 참배와 9월 자민당 총재 선거에도 상당한 영향이 예상된다.
일왕의 발언을 기록한 사람은 도미다 도모히코 전 궁내청 장관(고인)이다. 궁내청 차장 시절부터 히로히토 일왕과 주고받은 대화를 꼼꼼히 기록해, 일기 1권과 수첩 20여권을 남겼다. 수첩의 1988년 4월28일치 메모를 보면, 히로히토 일왕은 A급 전범 합사에 강한 불쾌감을 나타낸 뒤 “그래서 나는 그 뒤 참배하지 않고 있다. 그것이 내 마음이다”라고 밝혔다. 히로히토는 패전 뒤 75년까지 8차례 야스쿠니를 참배하다가, A급 전범이 합사된 78년 이후 참배를 중단했다. 아키히토 현 일왕도 89년 즉위 이후 참배하지 않았다.
히로히토의 참배 중단 이유로는 △A급 전범 합사 △75년 미키 다케오 전 총리의 참배(75~76년) 성격을 둘러싼 정치문제화라는 두 가지 분석이 제기돼 왔다. 이 메모를 통해 A급 전범 합사가 원인이었음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전문가들은 정치색이 적은 도미다 전 장관의 사람됨을 들어 메모의 신뢰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메모 발견 사실이 전해진 20일 정치권에선 참배 반대파들은 일제히 목소리를 높였다. 규마 후미오 자민당 총무회장은 “합사는 하지 않았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가토 고이치 전 자민당 간사장은 “야스쿠니 신사가 자발적으로 분사를 결정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지적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이번 메모가 자신의 참배에 영향을 줄 것인지에 대한 기자들의 물음에 “마음의 문제이므로 (영향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8월15일 참배라는 ‘마지막 공약’ 강행을 저울질하는 고이즈미 총리에게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최근 북한 미사일 발사 이후 대북 문제로 옮겨간 총재선거의 최대 쟁점도 다시 야스쿠니 참배를 비롯한 아시아 외교로 이동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 시점에 메모가 발견된 것은 급속히 세를 얻고 있는 강경 우파에 대한 온건파의 견제 조처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0일 “야스쿠니에 모셔지는 의의와 거기에 특별한 인물이 참배하는 의미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쇼와(히로히토 일왕의 연호) 천황”이라며 “그 입장에서 판단한 A급 전범 합사의 타당성 여부는 천황 개인의 생각을 넘어선 무게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도쿄/박중언 특파원 park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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