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민당 차원의 재조사 수용했지만 ‘강제성 부인하는 성격’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사실을 부인하고 사죄를 거부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발언 파문이 커지고 있다. 미국 내 비판 여론이 악화하면서 미 하원에서는 일본 총리의 사죄를 촉구한 결의안의 채택 움직임이 더욱 힘을 받고 있다.
미국 내 여론 악화=미 하원 아시아태평양·지구환경 소위원회의 에니 팔레오마베가 위원장은 “결의안이 이달 말 외교위원회에서 표결처리될 전망”이라며 “위원 50명 가운데 36명이 이미 찬성을 표시해 채택될 공산이 크다”고 밝혔다고 <요미우리신문>이 9일 보도했다. 그는 “일본 국회가 정식 사죄를 발표하고 총리가 승인하지 않는 한 이 문제는 언제든지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청회에서 유일하게 결의안 반대 의사를 공언했던 공화당의 데이나 로라바커 의원은 아베 총리 발언 이후 찬성으로 돌아섰다.
<니혼게이자이신문>도 “공청회 때만 해도 의회 전체로 확산될 분위기는 아니라는 전망이 우세했으나,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 등이 총리의 발언을 보도하면서 비판이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협의의 강제성을 입증할 게 없다’는 발언 직후인 2일 미 의회 관계자로부터 주미 일본대사관에 사실관계를 묻는 문의가 잇따랐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위안부 문제 재조사 추진=자민당 우파의 ‘일본의 앞날과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의원 모임’은 정부 차원의 재조사를 아베 총리에게 건의했다. 아베 총리는 정부의 재조사는 받아들이지 않는 대신, 자민당의 조사에 대해선 정부가 보유한 자료의 제출 등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기본적으로 고노 담화를 계승한다”면서도 담화 부정이 그 취지인 재조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이중적 태도를 취한 것이다.
극우 성향의 <산케이신문>은 아베 총리가 “고노 담화를 수정하고 싶은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며 “지금 당장은 한국·미국·중국 등에서 일본 포위망을 구축하려는 움직임이 있기 때문에 정부로서는 재조사를 단행하기가 시기적으로 나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아베 총리는 위안부의 존재를 부정하는 데 가장 앞장서온 인물이다.
“원점은 고노 담화”=일본 우파가 무력화를 시도 중인 고노 담화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에 대해 나름대로 전향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93년 8월4일 당시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 이름으로 발표된 이 담화는 일본군과 정부 차원의 강제동원임을 분명히 인정했다. 담화는 “위안부의 모집은 주로 업자들이 담당했지만 그 경우에도 감언과 탄압 등 본인들의 의사에 반해 모집된 사례가 많았고, 관헌 등이 직접 그것에 가담하는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고 못박고 일본 정부의 사죄를 발표했다. 하시모토 류타로에서부터 고이즈미 준이치로까지 역대 총리들이 네 차례 위안부 희생자들에게 사죄 편지를 보낸 것도 이 담화에 근거한 것이다.
이 담화는 1991년 12월부터 1년8개월간 위안부 희생자 면담조사, 일본 정부의 각종 자료 수집·분석을 토대로 위안소 설치 경위 등 8개 항목에 걸쳐 관련 사항을 비교적 소상히 밝혔다. 고노 담화를 지지하는 국제 서명운동을 펼치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행동네트워크’는 “고노 담화는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일본 정부의 원점이자 기준”이라고 강조했다.
도쿄/김도형 특파원 aip2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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