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국제 일본

[특파원 리포트] 일본 호황 뒤편 굶어죽는 비극

등록 2007-07-15 18:17수정 2007-07-15 23:47

5년전과 비교한 개인별 소득격차
5년전과 비교한 개인별 소득격차
“오니기리(주먹밥)가 먹고 싶다.”

지난 10일 일본 후쿠오카현 기타큐슈시 자신의 허름한 집에서 굶어죽은 채 발견된 52살 남성이 죽기 직전인 6월 초 남긴 일기의 내용이다.

알코올성 간 장애, 당뇨병, 고혈압 등을 앓던 이 남성은 지난해 12월6일 다니던 택시회사를 그만두고 생활보호를 신청해 대상자가 됐다. 그는 올 4월 보호 대상자 신청을 자진 철회한 뒤 외롭게 죽어갔다. 시청 쪽은 이 남성에게 5차례에 걸쳐 ‘취업지도’를 했다고 <요미우리신문>은 보도했다. 이 남성은 일기에다 “일을 할 수 없는데 일하라고 한다”라고 ‘절규’를 남겨놓았다.

전후 사상 최대 경기확대 국면의 그늘에서 굶어 죽어가는 ‘역설적 비극’이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다. 지난해 5월23일 기타큐슈에서는 56살의 전직 택시 운전사가 자신의 시영주택에서 굶어죽은 지 넉 달 만에 발견됐다. 생활보호를 신청했으나 두 번이나 거부당했다. 도와줄 아들이나 친척이 있다는 이유였다. 2004년 12월 가장 가난한 현으로 꼽히는 아키타현 농촌에서는 현금 수입이 끊긴 50대 형제가 굶어죽은 채 발견됐다.

‘1억 총중류화’라는 말이 구가될 정도로 ‘평등사회’였던 일본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 이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권 이후 6년간 지속된 구조개혁과 무관하지 않다.

부실채권 정리, 국제경쟁력 강화 정책 등 구조개혁은 경제회복의 기반을 마련했으나 한편으론 ‘복지보다는 자립’ 노선을 채택하면서 사회적 약자를 위한 안전망은 허물어져 갔다. 기타큐슈시처럼 행정기관이 생활보호 대상자 선정을 강화하고, “일을 하라”고 집요하게 강요한 배경이다. 지난해 기타큐슈시의 생활보호 대상자 인정 비율은 12%에 불과했다.

100만가구를 헤아리는 생활보호 대상자는 외려 나은지도 모른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생활보호 대상 이상의 수준을 유지할 수 없는 수많은 ‘워킹 푸어’는 일본 사회에 ‘새로운 빈곤 문제’를 낳고 있다. <엔에이치케이>가 지난해 7월, 12월 두 차례 방송된 내용을 최근 책으로 펴낸 <워킹푸어-일본을 좀먹는 병>은 경기회복의 그늘을 낱낱이 보여준다. 4년 전 일자리를 찾아 상경한 후루타 유이치(가명·35)는 단기 아르바이트나 날품팔이로 근근이 연명하며 24시간 문을 여는 인터넷·만화카페를 숙소 삼아 생활했다. 일거리가 떨어지면서 2006년 4월 그는 노숙생활 중 34살 생일을 맞이했다.

“후루타와 같이 단기계약과 비정규고용 외엔 취업 경험이 없고 특별한 기능도 없는 경우 30살이 넘으면 취업의 벽은 상상 이상으로 높아진다. 일단 워킹푸어 상태에 빠지면 그곳에서 간단히 빠져나올 수가 없는 게 현실이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든다며 고용 규제를 마구 푼 결과 1996년 20.9%였던 비정규직은 2006년 33.2%로 높아졌다. 연간 200만엔 이하의 급여소득자는 1996년 17.9%에서 10년 만에 21.8%로 늘어났다.


29일 실시되는 참의원 선거에서도 격차나 빈곤 문제는 쟁점에서 뒤로 밀렸다. 격차 문제를 주요 쟁점으로 삼으려던 제1야당 민주당은 최근 부각된 연금관리 기록부실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 일본 공산당만이 ‘스톱 빈곤·개헌’을 주요 정책으로 내세우고 있다. 야마다 마사히로 일본학예대학 교수는 지난 4월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그 배경을 이렇게 경고했다.

도쿄/김도형 특파원
도쿄/김도형 특파원
“일본에서 젊은층의 빈곤은 그 심각성에 비해 사회·정치 문제화되지 않은 경향이 있다. 비정규직 젊은이 가운데 상당수는 부모와 같이 살고 있어, 당장은 큰 문제가 아니다. 선거에서 정치쟁점이 잘 안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부모세대가 사라지는 10~15년 뒤 이들의 문제는 엄청날 것이다.” 도쿄/김도형 특파원 aip209@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국제 많이 보는 기사

트럼프 ‘호주 관세 예외’에 일본 “우리 철강·알루미늄도” 기대감 1.

트럼프 ‘호주 관세 예외’에 일본 “우리 철강·알루미늄도” 기대감

‘누가 뭐래도 내가 실세’...트럼프 앉혀두고 오벌오피스에서 브리핑 2.

‘누가 뭐래도 내가 실세’...트럼프 앉혀두고 오벌오피스에서 브리핑

트럼프, 요르단 국왕에 대놓고 “미국이 가자지구 가지겠다” 3.

트럼프, 요르단 국왕에 대놓고 “미국이 가자지구 가지겠다”

D-30, 트럼프 철강 관세 실행 …BBC “한국도 영향 불가피” 4.

D-30, 트럼프 철강 관세 실행 …BBC “한국도 영향 불가피”

“이혼해도 가족”…데미 무어, 치매 브루스 윌리스 매주 찾아가 5.

“이혼해도 가족”…데미 무어, 치매 브루스 윌리스 매주 찾아가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