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나카 히토시 전 외무성 심의관(60·일본국제교류재단 선임연구원)
‘2002 평양선언’ 산파역 다나카에게 듣는 대북 해법
고이즈미 방북 성사시킨 대북한 협상론자
“후쿠다, 외교 통한 해법 추구…아베와 달라” “북한과 합동으로 조사위원회와 같은 조직을 만들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여기에 유엔의 대표도 포함해 일본인들이 납치된 이후의 경위나 현재 어디에 있는지 최후의 한사람까지 철저하게 조사하는 것이다.” 2002년 9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의 전격적인 방북과 뒤이은 평양선언의 일본쪽 산파역을 맡았던 다나카 히토시 전 외무성 심의관(60·일본국제교류재단 선임연구원)은 북-일 국교정상화의 최대 걸림돌인 납치문제에 대해 이런 해법을 제시했다. 지난 6일 도쿄 일본국제교류재단에서 만난 다나카 전 심의관은 “후쿠다 야스오 총리의 포괄적인 대북정책은 북한과 협상을 통해 궁극적으로 한반도의 평화를 이끌어내겠다는 2002년 평양선언의 정신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시 고이즈미 총리의 방북은 북한을 악의 축이라며 대화 상대로 여기지 않았던 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를 다국간 대북 협상의 틀 속에 포함시켜 북핵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한 측면이 있었다고 밝혔다. 일본 외무성의 대표적 대북협상론자였던 그는 ‘평양선언’ 이후 일본인 납치 피해자 귀국문제로 대북 여론이 급격하게 악화돼 2003년 우익단체의 테러 위협을 당하는 등 상당한 곤욕을 치른 끝에 2005년 36년간의 직업 외교관 생활을 마쳤다. 그러나 그는 아베 신조 전 정권의 강경일변도 대북정책의 불가피한 측면에 이해를 나타내고 인터뷰 내내 ‘일본의 국익’이라는 말을 강조하는 등 노련한 일본 외교관의 면모를 보였다. - 후쿠다 정권의 대북 외교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 2002년 고이즈미 총리의 방북 때 당시 관방장관이었던 후쿠다 총리와 함께 협의해 정책을 만들고 실행했다. 후쿠다 총리는 기본적으로 당시의 접근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본다. 납치 문제만이 아니라 과거 식민지 청산, 핵·미사일·마약 등 일본에게 중요한 안전보장 문제를 포함해 포괄적으로 해결해 북한이 다른 나라에 위협이 되지 않는 존재로 만드는 게 기본 정책이다. 우리들이 생각하는 대북정책의 기본은 어디까지나 한반도의 평화 만들기다.
- 후쿠다 총리는 대북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는데. = 후쿠다 총리도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 국제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행동에 대해서는 제재가 필요하다는 견해다. 그러나 아베 정권과 다소 접근방식이 다르다. 제재는 일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한반도 평화 만들기에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협상에 의해 외교적으로 문제를 풀려고 한다는 것이다. - 후쿠다 총리의 포괄적 대북정책과 관련해 2002년 평양선언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 당시 북한은 핵과 미사일은 미국과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며 줄기차게 일본과 협상하기를 거부했다. 그럼에도 우리가 확실히 한 것은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미국을 포함한 다국가간 외교적 협의라는 틀이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평양선언에도 한반도 핵 문제의 포괄적 해결을 위해 모든 국제적 합의를 준수할 것을 확인한다는 점이 적시돼 있다. 고이즈미 총리가 평양선언 이후 부시 대통령에게 대북협상을 촉구한 것도 다국간 틀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6자회담이라는 틀이 생겼고, 올 초부터 미국이 북한과 진지하게 협상하게 됐다. 6자회담 결과는 2002년 일본이 매우 바라고 있었던 시점으로 돌아왔다고 할 수 있다. - 아베 정권의 부정적인 유산으로 일본의 대북 강경여론이 오히려 납치 문제 해결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 나는 부정적 유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베 정부가 북한의 미사일 발사, 핵실험에 대해 강경정책을 편 것은 단순히 북한이 괘씸하다고 생각했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본다. 백주에 어린 아이가 납치돼 여론이 상당히 격앙된 것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면도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 국가에서 여론이 강경하다고 해서 여론대로 정책을 펴면 중우정치가 되고 만다. 모든 정보를 가지고 사안마다 국익에 따라 정책을 펴는 것은 국민이 아니라 정부다. 그 결과는 선거를 통해 심판을 받으면 된다. 따라서 대북강경 여론 때문에 대북협상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 구체적 해결 방안은? = 유감스럽게도 현재 북한 정부가 얘기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따라서 일-북이 공동위원회를 만들어 납치피해자를 검증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적대적 관계에서는 불가능하다. 일-북은 두 나라의 협조관계를 다시 확인해야 한다. 이는 상당히 높은 차원에서 이뤄져야 할 것 같다. 도쿄/글·사진 김도형 특파원 aip209@hani.co.kr
“후쿠다, 외교 통한 해법 추구…아베와 달라” “북한과 합동으로 조사위원회와 같은 조직을 만들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여기에 유엔의 대표도 포함해 일본인들이 납치된 이후의 경위나 현재 어디에 있는지 최후의 한사람까지 철저하게 조사하는 것이다.” 2002년 9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의 전격적인 방북과 뒤이은 평양선언의 일본쪽 산파역을 맡았던 다나카 히토시 전 외무성 심의관(60·일본국제교류재단 선임연구원)은 북-일 국교정상화의 최대 걸림돌인 납치문제에 대해 이런 해법을 제시했다. 지난 6일 도쿄 일본국제교류재단에서 만난 다나카 전 심의관은 “후쿠다 야스오 총리의 포괄적인 대북정책은 북한과 협상을 통해 궁극적으로 한반도의 평화를 이끌어내겠다는 2002년 평양선언의 정신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시 고이즈미 총리의 방북은 북한을 악의 축이라며 대화 상대로 여기지 않았던 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를 다국간 대북 협상의 틀 속에 포함시켜 북핵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한 측면이 있었다고 밝혔다. 일본 외무성의 대표적 대북협상론자였던 그는 ‘평양선언’ 이후 일본인 납치 피해자 귀국문제로 대북 여론이 급격하게 악화돼 2003년 우익단체의 테러 위협을 당하는 등 상당한 곤욕을 치른 끝에 2005년 36년간의 직업 외교관 생활을 마쳤다. 그러나 그는 아베 신조 전 정권의 강경일변도 대북정책의 불가피한 측면에 이해를 나타내고 인터뷰 내내 ‘일본의 국익’이라는 말을 강조하는 등 노련한 일본 외교관의 면모를 보였다. - 후쿠다 정권의 대북 외교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 2002년 고이즈미 총리의 방북 때 당시 관방장관이었던 후쿠다 총리와 함께 협의해 정책을 만들고 실행했다. 후쿠다 총리는 기본적으로 당시의 접근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본다. 납치 문제만이 아니라 과거 식민지 청산, 핵·미사일·마약 등 일본에게 중요한 안전보장 문제를 포함해 포괄적으로 해결해 북한이 다른 나라에 위협이 되지 않는 존재로 만드는 게 기본 정책이다. 우리들이 생각하는 대북정책의 기본은 어디까지나 한반도의 평화 만들기다.
- 후쿠다 총리는 대북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는데. = 후쿠다 총리도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 국제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행동에 대해서는 제재가 필요하다는 견해다. 그러나 아베 정권과 다소 접근방식이 다르다. 제재는 일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한반도 평화 만들기에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협상에 의해 외교적으로 문제를 풀려고 한다는 것이다. - 후쿠다 총리의 포괄적 대북정책과 관련해 2002년 평양선언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 당시 북한은 핵과 미사일은 미국과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며 줄기차게 일본과 협상하기를 거부했다. 그럼에도 우리가 확실히 한 것은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미국을 포함한 다국가간 외교적 협의라는 틀이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평양선언에도 한반도 핵 문제의 포괄적 해결을 위해 모든 국제적 합의를 준수할 것을 확인한다는 점이 적시돼 있다. 고이즈미 총리가 평양선언 이후 부시 대통령에게 대북협상을 촉구한 것도 다국간 틀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6자회담이라는 틀이 생겼고, 올 초부터 미국이 북한과 진지하게 협상하게 됐다. 6자회담 결과는 2002년 일본이 매우 바라고 있었던 시점으로 돌아왔다고 할 수 있다. - 아베 정권의 부정적인 유산으로 일본의 대북 강경여론이 오히려 납치 문제 해결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 나는 부정적 유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베 정부가 북한의 미사일 발사, 핵실험에 대해 강경정책을 편 것은 단순히 북한이 괘씸하다고 생각했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본다. 백주에 어린 아이가 납치돼 여론이 상당히 격앙된 것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면도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 국가에서 여론이 강경하다고 해서 여론대로 정책을 펴면 중우정치가 되고 만다. 모든 정보를 가지고 사안마다 국익에 따라 정책을 펴는 것은 국민이 아니라 정부다. 그 결과는 선거를 통해 심판을 받으면 된다. 따라서 대북강경 여론 때문에 대북협상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 구체적 해결 방안은? = 유감스럽게도 현재 북한 정부가 얘기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따라서 일-북이 공동위원회를 만들어 납치피해자를 검증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적대적 관계에서는 불가능하다. 일-북은 두 나라의 협조관계를 다시 확인해야 한다. 이는 상당히 높은 차원에서 이뤄져야 할 것 같다. 도쿄/글·사진 김도형 특파원 aip2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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