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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일본

[특파원리포트] ‘2만여명 남은’ 재일동포 1세

등록 2008-11-09 21:37

김도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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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이 할머니는 이바라키현에서 아마 가장 행복한 재일동포 노인네일거야”

7일 저녁 일본 이바라키현 미토시의 한국음식점. 이곳에서 만난 어느 재일동포 할머니는 “자신은 두번째로 행복한 할머니”라며 옆자리의 박옥희(83) 할머니를 가리키며 부러움을 표시했다. 그의 말대로 박 할머니는 남부러워할 것이 없는 재일동포 1세의 노년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매주 토요일이면 주변에 사는 슬하의 네 아들 내외를 불러 국수를 삶아먹일 정도로 여전히 가정의 중심이다. 네명의 며느리들도 살갑게 대하며 따른다. 함께 사는 둘째아들 김정출(62)씨는 홋카이도 의대를 나온 뒤 미토시에 종합병원을 비롯해 양로원, 노인의료복지시설 등 20개가 넘는 사회복지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직원만 400명이 넘는 지역사회 유지이다.

하지만 현재의 행복한 노년에 이르기까지 박할머니의 ‘일본살이’는 다른 재일동포 1세와 마찬가지로 신산한 삶의 연속이었다. 11살 때 일본에 건너와 16살에 아오모리현으로 시집간 뒤 온갖 고생을 했다. 돼지키우기, 밀주, 행상, 불고기식당 운영 등을 하며 가정을 꾸려갔다. “시어머니의 구박에 밥상머리에서 제대로 밥을 먹지 못하고 서서 먹어야 하는 세월이었다.”

남편은 재일조선인총연합회 일을 한다며 허구한날 밖으로 나돌았다. 남과 북의 대립이라는 역사의 소용돌이속에서 허우적거리기도 했다. 그도 1960년대 아오모리현조선민주여성동맹위원장을 지내고, 둘째 아들을 제외한 아들 세명을 모두 총련 산하의 조선대학에 보낼 정도로 총련조직에 열성이었다. 그러다 북한의 세습체제와 북송한 시동생의 소식을 듣고 정치운동에 손을 떼고 국적도 조선적에서 한국적으로 바꿨다. 아들도 모두 한국적을 취득했다.

최근 출판된 <재일동포 1세의 기억>(슈에이샤)은 ‘또 다른 박할머니들’의 육성언어가 오롯이 담겨있다. 식민지 백성으로서 온갖 핍박과 배고픔, 죽음의 공포를 이기고 살아남은 재일동포 1세 52명의 파란만장한 일생이 ‘살아있는 역사교과서’로 읽힌다. 기획기간을 포함해 5년간에 걸친 증언채록을 통해 피폭자, 해녀, 화가, 불고기점 주인, 총련 활동가, 시인 등 유무명 ‘자이니치’의 삶이 781쪽의 두툼한 책으로 묶였다.

그중에서 철도인부를 모집한다는 말에 속아 홋카이도탄광에서 강제연행당한 성주팔(92) 할아버지의 사연은 특히 가슴 아프다.

2006년 12월 64년만에 귀향해 한국전쟁 중에 처자가 행방불명됐다는 소식을 듣고, 나흘만에 나고야로 돌아가는 비행기안 화장실에서 그는 “누구의 책임이냐”고 외치며 혼자 울었다. 현재 일본에서 살고 있는 재일동포는 59만명이다. 그중에서 재일동포 1세는 4%로 세월의 흐름과 함께 급격히 줄고 있다. 누가 그들을 역사의 뒤안길의 존재로 남겨두고 잊자고 했던가? 성 할아버지는 그렇게 절규하는 듯하다.


미토(이바라키현)/ 김도형 특파원

aip2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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